[뉴스&뷰] "부작용 주의 항우울제 처방 실태조사 필요" 지적...노인 우울증 치료 편견 조성할까 우려

[라포르시안] "요양병원 내에서 어르신들에게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항우울제 처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보건당국의 면밀한 실태조사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요양병원에서 항우울제 처방이 급증한 것과 관련해 보건당국의 실태파악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난 11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5년간 요양병원의 항우울제 처방 건수 증가 현황과 함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근거로 '요양병원에서 부작용 우려가 큰 항우울제 처방을 남발한다'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런데 전혜숙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관련 기사: 의사단체 vs 국회의원 ‘돔페리돈 부작용’ 논란 공방…정말 위험한 약물인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이미지 갈무리.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보도자료 이미지 갈무리.

첫 번째로, 최근 5년간 요양병원에서 항우울제 처방이 급증했다는 게 옳은 판단인가 하는 점이다.

전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요양병원의 항우울제(정신신경용제) 처방 현황' 자료를 근거로 항우울제 처방 건수가 지난 2012년 10만3,000건에서 2016년에는 19만3,000건으로 5년 사이 2배가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단순 수치상으로 보면 요양병원의 항우울제 처방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게 맞다. 하지만 국내 요양병원 수는 2012년 1,103개에서 2016년 말에는 1,428개로 증가했다.

병원 수가 증가한 만큼 입원환자 수도 크게 늘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환자 수는 2014년 49만6,034명에서 2016년에는 54만3,753명으로 9.6% 늘어났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요양병원 및 입원환자 수의 증가를 고려하면 이 기간 동안 항우울제 처방 건수가 급증했다고 분석하기는 어렵다. 

단위: 개수, 자료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표 제작: :라포르시안
단위: 개수, 자료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표 제작: :라포르시안

게다가 요양병원 입원환자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다양한 질환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장기입원에 따른 우울증, 무기력증 등의 다양한 정신적 질환이 동반되기 쉽다. 

앞서 심평원이 지난 2006년 장기요양 노인환자의 우울증 평가도구 개발을 위해 요양병원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입원환자 중  약 30%가 우울증으로 추정됐다.

그만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환자의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항우울제 처방 건수의 증가 수치를 제시하면서 보건당국의 면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한 지적이다.

전 의원은 또 이 기간 동안 요양병원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항우울제의 부작용 우려가 높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전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요양병원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항우울제는 아미트리프틸린염산염 성분의 '에나폰정'과 트라조돈염산염 성분의 약물이다.

전 의원은 "에나폰정은 고령자에게서 기립성 저혈압, 비틀거림, 배뇨곤란, 변비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쉬워 신중히 투여해야 하는 약제"라며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항우울제(정신신경용제)에 대한 연령대별 부작용 보고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5년간 보고된 부작용 중에서 60대와 70대의 보고 건수가 총 8,629으로 전체의 40%를 차지할 만큼 노인 대상 항우울제 처방은 관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표 출처: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감 보도자료
표 출처: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감 보도자료

다빈도 처방된 항우울제의 실제 적응증은?

지난 5년간 요양병원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아미트리프틸린염산염 및 트라조돈 성분의 항우울제는 사실 우울증 보다는 다른 적응증으로 더 많이 처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환계 항우울제(TCA)인 에나폰정의 경우 우울증보다는 통증치료를 위한 처방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또 트라조돈 성분의 항우울제는 노인환자의 숙면을 유도하기 목적으로 처방되는 경우가 많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요즘은 우울증 치료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 약물을 주로 처방한다"며 "아미트리프틸린염산염이나 트라조돈 성분의 약물은 저용량 등으로 처방해 통증 완화나 수면유도 등의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용시 입마름이나 어지러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치료상의 유익성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의 항우울제 처방 급증을 우려할 게 아니라 노인 입원환자의 적극적인 우울증 치료가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구축하는 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항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우울증을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1~2015년까지 65세 이상 노인 우울증 진료 인원은 17만5,000명에서 22만4,000명으로 약 28% 증가했다. 노인 우울증 진료 인원이 많은 연령구간은 65~74세였고, 진료 인원이 많이 증가한 연령대는 75~84세였다.

노인 우울증은 치매와 달리 약물치료로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항우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정신질환 자체에 대한 편견이 겹치면서 우울증을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경과 전문의인 양현덕 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전 원광대학교 의대 교수)는 "신체적인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요양병원 장기입원 자체가 우울증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노인 입원환자의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항우울제 처방건수 통계를 근거로 요양병원에서 처방이 급증했으니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 우울증 치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 원장은 "이런 문제 제기보다는 오히려 요양병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우울증 치료가 이뤄질 있도록 효과가 좋은 항우울제의 처방을 제한하는 요양급여기준 규제 등을 완화하는 쪽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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