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완(서울아산병원 IT전략팀장)

[라포르시안] 인터넷에서 ‘스마트 병원’을 검색하면 다양한 정의와 함께 수많은 스마트 병원 구축 전략과 성과 및 정부 지원 활동 등에 대한 자료와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앞서 스마트 병원을 ‘혁신적 기술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다른 생태계와 디지털로 연결해 환자 중심 서비스 품질과 경영을 향상하면서 의료 비용은 감소시키는 병원’이라고 정의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0년 ‘디지털 시대 의료서비스 혁신을 위한 스마트 병원 육성 방안 연구’에서 국내외 문헌과 자료를 망라해 스마트 병원 개념과 주요 국가의 정책·기술 및 당면 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부 또한 일찍이 ▲인구 고령화 ▲만성 질환 위주의 질병 구조 ▲의료 비용 증가 ▲보건 의료 인력 부족과 같은 사회 경제적 이슈와 디지털 기술과 의료 융합을 통한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높게 점쳐 스마트 병원 구축을 필수적인 사안으로 판단했다.

이를 통해 2015년부터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 방안 수립을 시작으로 국가정보화 핵심 수요 산업으로 선정하고 2020년부터 6년간 스마트 병원 선도모델 개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계 역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디지털 혁신을 통해 스마트 병원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전략 수립과 실행을 통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병원의 투자 부담 ▲법적 제약 ▲의료진·환자의 심리적 저항 ▲기업과 의료 현장의 수요 불일치 ▲스마트 병원 솔루션 기업의 영세함으로 인한 협업 불안 등이 스마트 병원 구축의 난제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 병원 구축 이후 병원 내부의 기술 인력 부족으로 기술 내재화가 어려워 공급 업체에 대한 높은 의존과 운영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한계성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스마트 병원 운영을 중단하거나 현상 유지만 하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스마트 병원 도입 단계부터 솔루션이 적정하고 비용 효과적인지,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영향이 얼마인지, 병원정보시스템(HIS)과의 연계 용이성, 적용 이후 지속적인 서비스와 업무 향상을 위한 기술 내재화 필요성 등 다양한 요인을 분석하고 판단 내릴 수 있는 병원 내 기술적인 의사결정 조직과 IT 전문 인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병원은 정부의 스마트 병원 육성 및 데이터 활용 정책과 맞물려 ‘디지털 혁신’ 조직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의료정보기술 관련 내부 인력 충원은 그렇지 못해 아랫돌 빼서 웃돌 괴는 형태로 한정된 인력에 업무가 가중되면서 신기술 검토와 운용 역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상대적으로 자체 전담 인력 확보가 용이한 대형 병원이 이러한 실정이라면 중소 병원 사정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병원이 모든 직무 역량과 기술을 확보한 의료정보기술 조직을 자체 인력만으로 운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정보 서비스를 운영하는 일반적인 기술 역량은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하고 핵심적인 직무 역량을 선택·집중해 확보하는 것이 제한적 병원 인력 자원의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최선의 방안이다.

분명한 점은 병원이 전략을 수립하고 도입 이전 타당성을 검토하며 이후 성과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기획 역량을 가진 의료정보기술 조직을 보유하는 건 스마트 병원 구축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 중 하나다.

병원정보시스템은 앞으로도 내외부의 많은 시스템과 이해 관계자들이 연결돼 확장되는 환경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 기업은 쉽게 확보하지 못하는 병원 업무의 전산화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인적 자원을 기반으로 기획 역량을 확보한다면 다양한 솔루션과 연계해 최적화되고 지속 가능한 스마트 병원 구축과 유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실제로 모 병원에서는 2021년부터 자체 의료정보기술 조직의 역량 향상을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소프트웨어 기술자 역량평가체계(ITSQF) ▲정보전략계획(ISP)에서 정리한 약 60개 직무와 6400개 지식·기술을 기반으로 11개 직무군(Group)과 35개 직무 기능을 정의하고, 온오프라인 교육 커리큘럼과 연계한 직무 교육 체계를 수립해 운영 중이다. 

해당 병원은 충분한 예산과 교육 시간 확보나 교육 성과 측면에서 아직 부족하지만 교육에 소극적이었던 직원들의 마인드 변화와 정보기획·프로젝트 관리 등 역량이 향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프로그램 및 챗GPT를 이용한 기록 요약,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MSA) 프로젝트 등 교육과 프로젝트를 결합한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CoE)에 직원들의 높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로 병원 내 신기술 기반 요구사항에 대한 검토 및 수행·운영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안타까운 점은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의료정보기술 조직에 과감한 투자를 할 만큼의 의지와 여력이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병원마다 상이한 업무 절차와 어려운 업무 지식으로 인해 기업의 진입 장벽 또한 높은 편이다. 더욱이 많은 의료정보 기업이 영세한 수준이라 좋은 인재를 육성하고 역량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와 병원 그리고 관련 협회와 기업이 협력해 필요한 의료정보 직무를 정의하고 교육 체계를 수립해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면 병원 내부는 물론 외부 기업의 역량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스마트 병원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성공 확률 또한 그만큼 높일 수 있다. 

비록 체계를 수립하고 시행하기까지 여러 기관의 노력과 합의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정부의 스마트 병원 정책 내 인력 육성 계획이 포함돼 지원이 이뤄진다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대학의 의료정보 관련 학과와 연계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느 기업가는 “자원은 유한하지만 창의는 무한하다”고 말했다. 무한한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자원은 바로 ‘사람’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