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 총무이사)

[라포르시안] 의료기기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제조품질관리기준) 해설서가 도입된 것은 2010년이었다. 13년간 8번 개정을 거쳐 지난달 초 8개정 해설서가 배포됐다. 한국의 GMP 제도는 2011년 4월 의료기기법을 전면 개정해 품질관리 심사기관 지정 등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면서 전문성과 신뢰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2012년부터는 수입업자의 경우 해외 제조원에 대한 ‘현지실사’ 책임을 지게 돼 한국 정부가 제조공장을 직접 방문해 품질관리 체계와 공장 내 생산 시설 등을 점검하는 단계로 발전해 왔다.

물론 수입 제조원에 대한 현지실사는 시행 초기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첫째 대다수 단일 품목이 단일 공장에서 생산되는 식품·의약품과 달리 복잡하고 다양한 재료와 부품을 사용하는 의료기기는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연관된 제조소가 있었던 만큼 실사 범위에 대한 잡음이 있었다. 둘째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조소마다 공무원과 실사 인력을 파견해 점검하는 것이 경제적 또는 안전성 측면에서 얼마나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있었다. 셋째 대부분 의료기기 제조소가 이미 미국 FDA나 유럽 CE 인증을 받은 상황에서 현지실사를 통한 중복 점검이 유의미한 행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이후 관련 부처와 의료기기 업계 간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상당 부분 해소됐다. 우선 의료기기 특성으로 인해 주요 공정에 대한 특정이 모호하고 여러 조합이 모인 경우 결국 제조물 책임법에서 정한 법적 제조자의 개념과 최종 제품단계에서 허가상 사용 목적이 특정되기 때문에 법적 제조자의 품질관리 체계가 실제 공장에서 제대로 구현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그 범위를 법적 제조자와 대표되는 제조자를 정했다. 

또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민 안전을 위해 해당 의료기기가 어떤 공장에서 제조·생산되고 있으며,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데 부처와 의료기기 업체가 의견을 함께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이밖에 우리나라가 이미 품질관리를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제조소를 방문해 중복된 기준을 제시할 경우 정책상 어떤 이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의 기준을 높이기 위해 선진국의 품질 체계와 제조원을 보고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 목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현지실사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제는 초창기 현지실사 시행 때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을 일정 정도 성취했으며, 더욱 안전한 의료기기 관리체계가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떠한 목표를 갖고 엄청난 비용과 행정인력이 소모되는 현지실사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최근 의료기기 GMP 8개정 해설서를 살펴본 바로는 전체적으로 현지실사 범위는 확대되고 대상 또한 세분화했다. 해설서가 명기한 목적에 따르면 '의료기기 GMP 제도는 의료기기의 설계·개발, 생산, 시판 후 관리 등 전 과정에 대한 품질경영시스템 확보를 통해 안전하고 유효하며 의도된 용도에 적합한 품질의 제품을 일관성 있게 제조·판매됨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이라고 돼 있다.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확인하는 방법은 품질경영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서류심사와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현지실사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장을 가는 방법은 직접 가는 방법과 다른 기관이나 국가에서 실사한 결과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간접으로 확인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현장실사에 드는 자원을 절약하고 중복된 심사를 방지하기 위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에서는 국제조화를 통해 공통의 인정 기준을 만들고 상호 인정하는 기관 간 확인되는 경우 이를 인정하는 방법을 마련해 의료기기 단일심사프로그램(Medical Device Single Audit Program·MDSAP) 체제를 구축했다. 

유럽 CE 또한 인증기관별 상호 인정을 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품질 체계관리에 있어 국제조화를 따르기보다는 자체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의료수요 또한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계속되는 시장 수요와 적절한 의료보장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관리체계를 모색해야 한다. 

늘어나는 규제로 인해 민원이 적체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행정력을 한없이 늘릴 수 없듯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안전성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더욱이 정기적인 현지실사가 전반적인 의료기기 안전성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이미 대부분의 나라 혹은 현지 인증기관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확인 방법이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 위해 의료기기이거나 혹은 문제 발생 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제품 등을 중점적으로 관리하거나 필요한 곳에 인력을 집중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간 제도 개선이 고도화·세분화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거시적 관점에서 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제조업과의 차별을 보완하기 위해 수입 유통업자에게 부과된 현지실사 목적이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만 전개된다면 결국 의료공백 등으로 인한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조화를 통한 인증제도를 도입하고 위해 우려 제조소와 특정 최초 제조소에 대한 현지실사 방안이 조만간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출범 예정인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에서 논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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