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0월 23일 미국 전역에 31개 ‘기술 허브’(Tech Hubs) 지정을 발표했다. 미국 상무부 경제개발청(Economic Development Administration·EDA)을 통해 지정된 기술 허브는 경쟁력 향상 가능성이 높은 기술의 제조·상업화 및 배포를 위한 역량을 강화해 지역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술 허브는 과거 일부 지역, 가령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와 보스턴에 편중된 전통적인 혁신클러스터에서 벗어나 기술 부문에서 성장 잠재력이 큰 미국 전역에 직접 투자하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혁신센터로 변화시키기 위한 야심 찬 추진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은 현재의 기술 생태계가 몇 군데에만 집중돼 있어 美 전역의 모든 잠재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기술 허브는 바이든 대통령이 앞서 지난해 8월 서명한 미국 투자 의제의 핵심 부분으로 초당적인 ‘반도체 및 과학법’으로 알려진 ‘반도체 생산에 유용한 인센티브 창출 및 과학 법(Creating Helpful Incentives to Produce Semiconductors (CHIPS) and Science Act)’의 승인을 받았다. 

이를 통해 31개 기술 허브는 32개 주와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하며 도시·농촌 지역을 모두 아우른다. 특히 기술 허브의 투자 분야는 매우 광범위한데 ▲자율시스템 ▲양자 컴퓨팅 ▲생명공학 ▲정밀의학 ▲청정에너지 발전 ▲반도체 제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경제개발청(EDA)은 지역사회가 지역 조정과 계획수립 활동을 크게 늘릴 수 있도록 29개 전략개발 보조금(Strategy Development Grants·SDG)을 제공했다. 선택된 수혜자는 향후 기술 허브 자금조달 기회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술 허브는 지역 산업계, 학계, 주·지역 정부, 경제개발기관, 노동 및 인력 파트너가 참여하는 폭넓은 민관협력 파트너십(Public Private Partnership·PPP)을 기반으로 한 컨소시엄 형태로 구축된다.

각 컨소시엄은 미래 산업과 좋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가 창출·유지되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1단계 우승자가 400여 개 지역 컨소시엄 지원자 가운데 선정됐다. 특히 의료기기·제약을 비롯한 헬스케어 산업은 미국에서도 높은 성장률·고용률 및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기술 허브 지정 가운데 헬스케어 관련 컨소시엄도 포함돼 있으며, 생명공학 발전 의제의 ‘정밀성 및 예측’ 분야에서 ‘미네소타 의료기술 3.0’(Minnesota MedTech 3.0)이 스마트 의료기술(smart medical technologies) 영역에서 선정됐다.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 경제 개발 파트너십(Minneapolis Saint Paul Economic Development Partnership)이 주도하는 미네소타 의료기술 3.0은 ▲인공지능(AI) ▲기계학습 ▲데이터 과학을 의료기술에 통합해 미네소타주를 스마트 의료기술의 글로벌 센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미 잘 확보된 의료기술 생태계와 병원 및 연구기관·의료기기업체를 활용해 의료 데이터에 대한 공유 운영 프로토콜을 개발, 지역 정보 공유 및 혁신적인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국제 수준의 의료기술 지역 자산을 활용해 해당 부문에서 미네소타주의 세계 최고 지위를 더욱 성장시키고 확보한다는 목표다. 

미네소타주는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메드트로닉을 비롯해 애보트·보스톤사이언티픽·3M 등과 같은 세계 굴지의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이 소재하고, 메이오 클리닉(Mayo Clinic)으로 대표되는 우수한 의료기관도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료기술 분야에서 이미 국제적 리더십을 갖춘 미네소타주가 첨단 스마트 의료기술을 융합해 보다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창출하고자 하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미국의 기술 허브와 유사하게 한 단계 높은 혁신 도약을 위한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사실상 전 세계 의료기술 시장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미국의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을 쫓아가야 하는 우리 상황에서 미국이 진행하는 기술 허브 계획과 진행 상황을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자본이나 기술 부문에서 우리가 다소 뒤처질지라도 계획수립 및 실행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줄인다면 그 발전 여정을 보다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기술 허브 도입에 있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기술 허브가 자본과 기술 혁신을 위한 물리적 토대가 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성공적인 기술 허브를 육성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규제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해결해 나가는지 살펴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미국은 규제 설정·운영 부분에 있어 탁월한 혁신을 보여 왔으며, 많은 국가에서 미국 사례를 벤치마크하고 있다. 더욱이 헬스케어 산업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규제가 많은 산업이며, 규제는 혁신 기술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규제는 오히려 혁신과 산업 발전을 동시에 이끌어 내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기반한 기술 허브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논의해 해결책 도출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될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규제 분야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본과 기술 혁신의 협력은 강점을 보이지만 효과적인 규제를 마련하고 낡은 규제를 혁파하는 데 다소 약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산업적 특성으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자기중심적 이해 및 이견으로 좀처럼 의견일치를 보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따라서 혁신 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이해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혁신 속도를 높이는 규제 마련은 흡사 예술의 경지와도 비견될 만큼 요원한 일이다. 우리가 미국 기술 허브의 발전 방향을 살펴보면서 밖으로 드러난 실체와 함께 내부적으로 규제 이슈 문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뤄 나갈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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