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성희롱·성폭력 피해신고 접수...병원 조직내 '젠더 감수성' 부재

[라포르시안] 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병원에서 '미투 운동'이 전개된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세계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 병원사업장을 대상으로 '성희롱·성폭력 ZERO'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사업장의 '이제는 내가 당한 성희롱 말할 수 있다 - 미투(#MeToo)'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우선 이달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을 성희롱·성폭력 피해신고 기간으로 정하고 각 지부에서 신고서를 접수한다. 오는 8일에는 조합원이 참여하는 피켓 캠페인도 펼칠 예정이다.

앞서부터 병원 현장에서는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폭력 등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지난해 한림대의료원 산하 5개 병원에서 재단 행사에 간호사를 반강제적으로 동원해 춤 연습을 시키고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복장을 입게한 게 드러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특정 병원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는 점이다. 간호사 등의 여성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폭력이 병원계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의료노조가 공동으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여자 전공의 등 1,000여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건의료 분야 여성종사자의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당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2개월 동안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11.7%가 신체폭력을, 44.8%가 언어폭력을, 6.7%가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 전공의는 응답자의 14.5%가 신체폭력을, 55.2%가 언어폭력을, 16.7%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인권위가 간호사 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면접조사 내용을 보면 병원내 젠더 감수성이 얼마나 결여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층 면접조사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무슨 행사 때마다 항상 불려갔어요. 간호사들 오프자들이라든지 말로는 자원봉사라고 하는데 도우미라든지 그런 분들처럼 양 옆에 서 있고. 병원에 이사장이 외부 손님이 온다 그러면 협력업체가 온다고 하면 양 옆에 유닛 매니저들 수간호사들이랑 함께 또 얼굴 이쁜 애들만 데리고 가요. 양 옆에 일렬로 서가지고 오면은 '솔' 톤으로 꼭 '어서오십시오' 인사 하게끔 한다"고 증언했다.

회식 등의 자리에서 남성 의사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춤을 추거나 장기자랑을 하도록 동원되기도 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간호사는 "접대를 해야 되는 거였다. 젊은 애들. 젊은 애들 몇 명 모아놓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아이돌 댄스 추는 거다. 그래서 그걸 과외 업무를 해야 되는 거다”고 말했다.

환자나 보호자에 의한 성희롱 증언도 있었다.

한 간호사는 “병실에서도 뭐 환자나 보호자들이 술 먹고 와가지고 간호사들 신체부위 찍고. 몰카 찍고. 찍지 마라 이랬는데 계속 찍고. '뭘 그러나 그런 것 가지고 그냥, 웃고 넘기면 되는 일 가지고 왜 그러냐'”고 하더라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회식 자리에서 의사가 간호사를 성희롱한 사례에 대한 증언도 있었다.

한 간호사는 “회식자리가 정말 문제인 것 같다. 저는 총각이랑 뭐 둘이 꼭 러브샷을 하라고. '근데 걔가 총각은 아닐 것인데? 뭐 여기서 처녀 아닌 간호사가 있나?' 이런식으로 말하는 거랑, 그리고 술을 먹으면서 막 분위기를(만든다)"고 증언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작년 12월 18일부터 올해 2월 14일까지 약 2개월간 실시한 '의료기관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폭력을 경험한 간호사가 13.0%(794명)에 달했다.

병원내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를 개선하려면 조직 전반적으로 인권과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의과대학, 간호대학 등의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이슈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앞서 인권위는 "복지부는 의료기관 인증 평가 및 의료서비스 질 평가 체계에 관련 지표를 넣어 의료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성평등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도록 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권고했지만 아직 의료기관인증평가 기준에 성평등 지표가 반영되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는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2005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등 법 환경이 변화하고 젠더 민주주의의가 강화됐지만 여전히 병원현장에서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다"며 "권력에 기반한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2차, 3차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도리어 가해자의 협박을 받기도 한다.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보호장치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