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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연구실·수술실, 그리고 회식...일상적인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의사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2명 중 1명꼴 피해
성평등 감수성 결여된 병원 조직문화..."가해자가 더 힘든 사회 왔으면"

[라포르시안] "직접적인 신체 접촉뿐 아니라 여성의 외모, 연애 등에 대해서 대상화하는 것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의 외모를 농담거리로 삼는 것 자체, 심지어 예쁘다는 평가조차 일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은 부적절한 평가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길 바란다." (A 의사)

"회식자리에서 젊은 여자를 옆에 앉히는 문화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분위기가 좋으려면 여자가 옆에 앉아야 된다며 어린 여자 후배를 옆에 앉히는 직장선배들도 문제임을 느끼고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B 의사)

변호사나 의사, 교수, 회계사 등 전문직업 종사자도 직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성희롱·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 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직장내 성희롱·성폭력에서 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외부시선과 함께 피해사실이 알려졌을 때 입게 되는 불이익이 훨씬 클 수 있다는 불안감 등으로 오히려 피해를 숨기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최근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변호사, 의사, 교수, 기자, 회계사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추가로 조사 대상 중 50명을 심층면담했다.

설문조사 응답자를 직업별로 보면 변호사 373명(36.74%), 의료인 223명(21.97%), 언론인 220명(21.67%), 교수 65명(6.40%), 회계사 64명(6.31%), 기타 70명(6.89%, 변리사, 건축사 등) 순이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1,015명 중 138명(21(14%)이 '상대방이 강제로 성관계를 하거나 유사 강간 행위를 시도한 경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상대방이 고의로 신체 부위를 건드리거나 일부러 몸을 밀착시키는 등의 행위를 했거나 시도한 경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97명(49%)에 달했다. '상대방이 성기를 노출하거나 스스로 만지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103명(10%)이나 됐다.

성희롱 성폭력 · 행위 유형별 직접경험·간접경험의 응답자수. 표 출처: 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실태조사' 보고서

전체 응답자 중 444명(44%)은 '상대방이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 없이 말이나 몸짓으로 성적으로 괴롭히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상대방이 안마요구 포옹요구 입맞춤 요구 회식자리에서 블루스 요구 등 부당한 성적 요구를 하는 행위'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410명(40%)에 달했다. 

'상대방이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 비하 평가하는 행위'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541명(53%)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 직업군 중에서 의료인만 놓고 볼 때 병원 내에서 여자 의사도 성희롱·성폭력이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의료인 223명 가운데 '강제 성관계나 유사 강간'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31명이었다. 또 '상대방이 고의로 신체 부위를 건드리거나 일부러 몸을 밀착시키는 등의 행위를 하였거나 시도한 경우'를 경험했다는 의료인은 102명에 달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의료인 223명 중 112명은 '상대방이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 비하 평가하는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상대방이 성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행위'를 경험했다는 의료인도 109명으로 집계됐다.

의사의 피해사례는 대부분 의대생 시절이나 전공의 수련교육 때 발생했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인사권과 교육수련 관리를 직접 담당하기 때문에 조직에서 권력과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이며, 상대적으로 의사집단의 약자인 전공의나 의대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성희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간호사를 행사 도우미처럼 접대하게..." 병원계도 #미투>

심층면담에서 한 의사는 "전공의 시절에 어떤 교수님이 밥을 자주 사주고 친하게 지내더니 어느날 자기 연구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갑자기 나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고, 나는 황급히 나왔다"며 "그 뒤로도 2번 정도 '연구실로 오라, 좋아한다, 보고싶다'는 문자를 보내왔으나 다른 상급자에게 보여주었더니 답장하지 말라고 해 답장하지 않았고 그 뒤론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낮에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교수님이 외모평가를 하며 '너는 살을 몇 키로 빼야한다'라고 하거나 결혼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결혼하고도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 않냐?' 이런 얘기를 했다"거나 "인턴 시절에 마지막 회식 3차에서 가해자가 가슴을 만지고 집에 못 가게하고 집에 데려다 준다면서 끌려가다 도망쳤다"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례도 나왔다.

병원 내에서, 혹은 의사 간에 성희롱·성폭력이 끊이질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컸다.

한 의사는 "하급자는 상급자나 부서장이 성희롱 및 성추행을 했을 때 불이익이 있을까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어렵다. 실제로 회식자리에서 동기가 옆에서 추행을 당하는 동안 제가 악수하는 척 지속적으로 손을 떼어놓았지만 끈질기게 성추행을 지속했다. 소속 부서에 해당사항을 알렸지만 너희가 알아서 피하라는 조치 외에 아무런 처벌 없이 조용히 묻혀 지나갔다. 피해를 당한 동기나 나도 더 말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얘기를 못했다. 피해자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고를 하는데 한계가 있고 실제로 신고하면 피해자가 불이익만 당하고 아무런 조치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병원의 대응이 크게 미흡한 것은 물론 성평등 감수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의사는 "병원 징계위원회에서 피해자는 재심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어이없었다. 병원 징계위원회에 구성된 교수들이 딱 한명만 여자고, 그 여자 교수는 발언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징계위에서 사건 내용을 보다 자세히 묻기보다는 징계 결과에 따른 대응 능력, 변호사 선임 여부 등을 묻던 게 어이없었다"고 했다.

의사들은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책으로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힘든 상황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발생한 이후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2차 피해를 가하고, 가해자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문제 개선은 고사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더 힘든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여성이면 당연히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
"제 딸이 여성으로 살면서 이 같은 고통을 받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강력한 처벌규정과 피해자 보호 체계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저항하라든가 하는 소리는 현실을 전혀 볼 줄 모르는 말이다. 피해자가 성추행·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세상 말고 애초에 남자들이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하지 말아야 한다"
"직장 내 특히 병원에서 상사의 성희롱 예방 수업 필수로 듣게 하고, 주기적으로 관련 공문도 내려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신고자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실태조사' 보고서의 심층면담 내용 중에서>

최혜령 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팀 팀장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에서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여성 또는 남성에게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하고 고용상 불이익을 초래하는 노동권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관련한 문제"라며 "직장내 성희롱·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근절돼 서로가 존중할 때 그 긍정적 효과는 구성원 모두가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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