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지난 박근혜 정부는 보건의료를 비롯한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자주 들먹였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주면 관련 산업 활성화에 따른 새 일자리 창출이라는 '낙수효과'가 생긴다는 거였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규제완화를 통해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등이 이뤄지면 새로운 헬스케어 사업이 활성화 하면서 새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오히려 그 반대로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는 좋은 일자리는 없애고 나쁜 일자리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경제성장 담론인 낙수효과는 듣기에 그럴 듯하지만 그 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는 지 입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낙수효과에 기댄 성장정책으로 대기업에 부가 집중되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대기업이 골목상권마저 삼키려 하는 '빨대효과'만 키웠다.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례에서 이런 악결과가 확인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프란치스코 교황마저 "낙수효과 이론은 단 한번도 현실에서 증명된 바 없다. 현 체제를 신성화하고, 그 안에서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를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을까. 

하물며 보건복지 분야에서 낙수효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했던 각종 보건의료 규제완화 정책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기존 대면진료 방식과 달리 간호사 등의 보조 의료인력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 등의 규제완화가 이뤄지면 병원의 영리추구 경영이 더 심해져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신규채용 중단과 인력 감축,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진료과 폐쇄 등 일자리를 오히려 축소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병원의 본업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돈벌이를 활성화 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그 낙수효과로 새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오히려 의료체계의 왜곡과 붕괴를 가속할 게 자명하다.

의료관광산업 활성화란 명분으로 추진된 해외환자 유치 정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해외환자 유치에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의료서비스 분야는 성형과 피부미용 쪽이다. 국내 많은 병원들이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 정책에 기대를 걸고 이런 쪽으로 시설투자를 확대했다. 그 결과, 의료자원이 성형과 피부미용 쪽으로 몰리면서 필수의료 이용 문턱만 높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낙수효과는커녕 빨대효과만 키웠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방치한 탓에 수도권 대형병원이 몸집 부풀리기 경쟁으로 의료자원과 환자 쏠림현상은 점점 심해진다. 지방의 많은 중소병원이 저수가와 수도권 대형병원에 환자를 뻿기면서 심한 경영난에 몸살을 앓는 중이며, 경영상 생존을 위해 의료인력을 줄이고 있다. 그 결과 지방에서는 전반적인 의료의 질 하락과 함게 응급실과 분만실 등의 필수의료 공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규제 완화를 통한 낙수효과는 언감생심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박능후 후보자의 보건복지 인식에 기대를 건다. 박 후보자는 지난 3일 장관에 내정된 후 소감을 밝힌 글을 통해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축하는 데 진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소득주도 성장 패러다임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자가 강조한 소득주도 성장이란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확대되고 내수가 살아나 투자와 일자리가 늘면서 성장이 이뤄지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분수효과'의 선순환구조를 의미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예전부터 계속 강조해온 대목이고, 새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기조이기도 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의 전환에 깊이 공감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규제완화를 통한 낙수효과 보다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인력과 시설 등의 기준을 준수하고,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분수효과'를 기대하는 게 맞다. 지금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고, '상병수당' 제도마저 없다보니 큰 병에 걸리면 곧바로 소득 상실을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소득 감소는 다시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이는 소득양극화를 고착화 하는 지렛대로 작용해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뒤늦게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펴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정부가 직접 공공의료 확충에 나서지 않고 민간 주도의 의료서비스 공급체계를 조성한 탓이다. 

박능후 후보자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축하고 국민 누구나 필수적인 의료 혜택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의료체계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가려면 보건복지 강화를 통한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건의료 부문에서 국가의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에서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훨씬 높여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위상이 강화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더는 보건복지부가 경제 부처의 산업화 정책에 휘둘려선 안 된다. 포용적 복지국가로 가려면 보건복지와 노동, 고용 문제는 연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와의 정책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 박능후 후보자가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형평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복지 강화에 일관된 목소리를 내 왔다는 점에서 기대를 건다. 그렇게 해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소득양극화가 개선될 때 비로소 의료계가 바라마지 않는 ‘적정 부담-적정 급여'를 기반으로 한 '적정 수가'로의 건강보험 패러다임 전환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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