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자회사·원격진료 등 기존 일자리 없애고 저질 일자리 양성 우려…“의료 본질 강화해 아래서 위로 분수효과가 정답”

▲ 2012년 1월 서울대학교병원과 SK텔레콤 헬스케어 합작사 ‘헬스커넥트(주)’가 공식 출범했다.

[라포르시안] 보건의료 등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에 정부여당이 사활을 걸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눈 딱 감고 화끈하게 전부 다 풀라"는 말로 정부 부처를 재촉했다.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제시하는 명분은 관련 산업 활성화에 따른 새 일자리 창출이라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다. 

지난달 12일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확정된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약 15조원 이상의 투자 효과와 약 18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치를 제시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규제완화를 통해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원격진료 활성화,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등이 이뤄지면 양질의 새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란게 정부의 주장이다.

정말일까. 시민사회단체나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들의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 등의 규제완화가 이뤄지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및 인수합병 허용, 법인약국 등이 허용되면 보건의료 분야의 일자리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좋은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로 바뀌게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외부 자본이 투입돼 영리추구가 더욱 심화되고, 병원은 인건비 축소를 통해 지출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허용되 기업의 자본이 유입되면 병원의 영리추구 경영이 더욱 심해져 비용 절감 차원에서 신규채용 중단과 인력 감축,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진료과 폐쇄 등 일자리를 오히려 축소할 것"이라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거나 파견고용을 확대하는 등 좋은 일자리를 나쁜 일자리로 바꾸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김태훈 정책위원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의 수혜 기업은'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은 광범위한 외주화와 단기적인 수익 추구 경향의 강화로 구조조정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노동자들에게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의사단체도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 새로운 의료시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낙수효과를 낼 것이라 전망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영리자법인 등 의료기관 부대사업 확대의 문제점과 정책권고 의견'을 통해 “투자활성화 대책은 새 시장과 산업을 찰출해 일자리를 늘리거나 부가가치를 제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일자리는 기존의 자리를 없애고 새로운 형태의 사업체로 이전하는 것이며, 부가가치 또한 기존의 사업주체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법인 영리자회사의 부대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의료법인의 고유목적사업에 재투입할 유인력이 거의 없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 ytn 뉴스 화면 캡쳐. 지난 3일 열린'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규제완화 이행이 더디다고 관련부처를 질책했다.

정부는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면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다시 의료기관 시설·장비, 종사자 처우개선에 사용하게 돼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연구소는 "의료법인이 자법인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고유목적사업인 의료시설·장비와 종사자 처우개선에 사용하게 한다면 의료법인의 영리추구 금지 목적에는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논리"라며 "특히 병원의 수익성이 좋아질 경우 건강보험 수가 인상 필요성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등 역효과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수익금 사용(처분)이 까다로운 의료법인으로 수익금 전입을 발생시킬 경영자는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허용 역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면 8,000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이란 예측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의사-환자간 원격진료가 활성화 되면 기존 대면진료 방식과 달리 간호사 등의 보조 의료인력 수요는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대신 원격의료 시스템을 확충하고 유지하기 위한 IT인력 창출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 관계자는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대면진료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대면진료에 투입됐던 보건의료 분야 인력은 갈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며 “다만 원격진료 허용으로 스마트케어센터와 같은 원격진료 전문센터의 서비스를 관리하고 이를 운영하는 인력은 확충될 수 있지만 이는 보건의료 분야의 인력이 아닌 관리직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의료 확충·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통한 '분수효과'가 효과적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보건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새 일자리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규제완화 방식이 아니라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료기관 내 적정인력을 유지할 수 여건을 조성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공공의료 확충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내 병원들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난에 시달린다.

특히 지방의 중소병원은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적정 의료인력 확충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OECD 2013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환자는 15~20명으로 일본(7.0명), 미국(5.0명)보다 3배 이상 많았고 이는 OECD국가 중 최다 수준이다.

간호사가 매 시간 돌봐야 하는 급성기병상 1개당 간호사 수는 0.28명에 불과해 OECD 평균인 1.13명의 1/4에도 못 미쳤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는 OECD국가에 비해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인력이 1/2~1/3 수준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의료사고 위험 증가, 의료서비스 질 저하,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시간, 불충분한 설명, 막대한 간병 부담 등의 파행적 운영이 초래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나라 인력 수준만큼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보건의료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력확충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는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적정수가를 보장해 적정진료만으로도 안정적인 경영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새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높다.

▲ 대한의사협회가 제작한 포스터.

부대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영리자회사,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메디텔, 원격진료 관련 의료기기 및 IT업체 등을 활성화시켜서 간접적으로 새 일자리가 생기는 낙수효과보다 병원의 본질적 역할을 강화해 새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관련 산업을 발전을 유도하는 '분수효과'가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분수효과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의료산업 활성화에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치과용 임플란트 시장이 이를 반증한다.

인구고령화를 계기로 그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한 치과용 임플란트는 올해 7월부터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2개 치아에 한해 임플란트 시술비의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더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13년 의료기기 생산실적' 자료에 따르면 치과용 임플란트의 생산실적은 2011년 2,497억원에서 2012년 4,485억원으로, 그리고 2013년에는 5,560억원으로 급증했다.

임플란트 수요가 늘면서 동시에 치과용 디지털 엑스레이 시장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국내 치과용 디지털 엑스레이 전문업체인 바텍은 지난해 680억원의 생산실적을 기록하며 전체 의료기기 업체 중 6위를 차지했다.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관련 의료기기나 의약품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고, 관련 기업의 성장을 유도해 자연스럽게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수효과를 낼 수 있다. 

"보건의료 부문서 중앙정부 재정지출 비율 너무 낮아…낙수효과는커녕 양극화만 심화"  

정부가 직접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보건의료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경우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보건의료기관은 5.8%에 불과하며, 병상수 기준으로는 10.0%에 그쳤다.

정부가 부족한 공공병원을 더욱 확충하고, 적정 의료인력을 갖춰 운영한다면 자연스럽게 양질의 새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부문 예산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올해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46조8,995억원 가운데 보건의료 부문에 활용되는 순수 예산은 1조9,284억원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 정도다.

2013년 기준으로 연간 '국민의료비 100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보건의료 부문의 정부 예산은 2조원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건의료 분야 중앙정부의 재정지출 비율이 필리핀, 태국, 네팔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들보다 더 낮다.

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OECD 헬스 데이터 2014'의 주요지표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은 54.5%(52.9조원)으로 OECD 평균(72.3%)보다 17.8%p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의 비본질적인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그 낙수효과로 새 일자리 창출을 유도할 경우 오히려 의료체계의 왜곡과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의료서비스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이를 위한 보건의료인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산업이라는 영리추구 개념과 무관하게 기본적인 경영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며 "즉 적정 부담, 적정 보장 및 적정 보상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이 사회제도인 건강보험 등을 통해 국가 주도로 담보되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업 개념의 도입은 자본이 주도하는 영리추구 욕구와 행태의 증폭으로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자원의 쏠림현상과 의료서비스 이용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상업화를 부추기는 규제완화 정책을 밀어붙이면 새 일자리는 고사하고 의료양극화만 더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 게재한 '빈곤 · 불평등 추이 및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경제성장의 몫이 빈곤층과 비빈곤층 간에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살펴본 선행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낙수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두기간(1996~2000년, 2000~2003년)으로 나누어 살펴본 연구에 의하면 비빈곤층은 두 기간 모두 전체 경제성장 몫보다 큰 몫을 가지고 간 반면 빈곤층의 몫은 마이너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보건복지 정책마저 부실해 낙수효과를 통한 소득재분배를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1차 소득분배가 미흡할지라도 2차 재분배(복지정책)가 잘 될 경우 가처분소득기준 빈곤 및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총 사회복지지출 수준은 OECD 평균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결과 조세 및 공적이전소득의 빈곤율 개선효과는 약 14.1%(2012년)로 나타나 OECD 주요 국가들의 빈곤율 개선효과 약 59.9%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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