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하 145개 병원서 6만여명 총파업 투쟁 예고
정부·사용자 "의료인력 부족·비싼 간병비 등 방치하고 있어"
일부 병원, 입원환자 퇴원·외래진료 축소...복지부 "정치파업 동참해선 안돼"

[라포르시안] 내일(13일) 보건의료노조 산하 145개 병원에서 동시에 총파업을 돌입을 예고하면서 의료현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 2004년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산업 주 5일제 쟁취를 위한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에 버금가는 대규모 파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 병원은 간호사 등의 파업 참여에 대비해 입원환자 퇴원과 외래진료 축소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자체별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관련 기관과 협조체계 구축 등 비상진료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12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산하 127개 지부 145개 병원 사업장에서 동시 쟁의조정 신청 이후 다음날인 28일부터 7월 7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조합원 6만 4257명 중 5만 3380명(83.07%)이 참가해 찬성 4만 8911명(91.63%), 반대 4350명(8.15%)으로 총파업 투쟁이 가결됐다.
이번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참가한 지부수는 127개, 사업장수는 145개로 보건의료노조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이다. 파업권을 확보한 조합원수는 6만 4257명으로 전체 조합원 8만 5천명 중 75.59%에 달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간병비 해결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근무조별 간호사당 환자비율 1:5로 환자안전 보장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업무 범위 명확화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의료민영화 전면 중단, 공익적자 및 회복기 지원 확대 ▲코로나19 영웅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 및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등 7가지 요구를 내걸고 산별교섭에 나섰다.
앞서 간병비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시행 7년을 맞았지만 도입률이 2022년말 기준 기관수로는 43.6%(대상 의료기관 1505개 중 656개), 병상수로는 28.9%(24만 3766개 병상 중 7만 363개)에 그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 2026년까지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전면 확대시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간호인력 부족 등으로 전면 확대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의료현장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대다수 병원에서 간호인력 부족으로 업무 부담이 높아지면서 중간 연차나 경력 간호사는 사직하고 그 자리를 신규간호사로 메운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배치된 신규간호사의 부족한 업무능력을 나머지 간호사들이 분담하거나 온전히 떠안게 되면서 업무 강도가 더 세지고 경력 간호사의 사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소진(번아웃)과 이직이 반복되면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필요한 숙련성과 전문성을 축적할 수가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현장은 그야말로 인력대란이다. 1명이 15명~40명의 환자를 돌보느라 간호사는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며 "연간 3만명 가까운 간호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신규간호사의 52.8%가 1년 안에 의료현장을 떠난다. 인력쏠림과 인력수급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환자안전에 구멍이 뚫리고, 환자들은 낙상사고·욕창사고·감염사고·화재사고·수혈사고·의료사고 등 각종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의료현장의 인력 부족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지속가능한 상황도 아닌 폭발 직전의 위기 상황"이라며 "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수 1:5 기준을 마련해 환자가 안전한 지속가능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로나19 유행에서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공공병원과 보건의료 노동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및 보상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방역 최일선에 나섰던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전담병원 지정 해제 이후 의료진과 일반환자 이탈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제한적이고, 다시 일상 의료체계로 회복은 요원한 채 직원들은 임금체불 위기로까지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는 코로나19 손실보상금으로 2020년 4월부터 지금까지 총 8조 7057억원을 지급했지만, 코로나19 영웅으로 칭송받은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적정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통해 코로나19 시기 희생·헌신한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반드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3일까지 정부와 병원 사용자 측과 교섭에 진전이 없으면 예정대로 13일 오전 7시부터 145개 병원 사업장에서 일제히 전면 총파업투쟁에 돌입할 방침이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은 환자안전과 국민생명을 지키기 위한 파업으로, 환자안전과 국민생명을 내팽개치는 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아니라 의료현장의 인력 부족과 의사 부족, 불법의료, 비싼 간병비를 방치하는 사용자와 정부"라며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수유지업무협정에 따라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신생아실 등 환자생명과 직결된 업무에 필수인력을 배치하고, 응급상황에 대비해 응급대기반(CPR)을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부 병원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에 대비해 입원환자 퇴원과 외래진료 축소 등을 준비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환자 및 보호자 대상으로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올리고 "7월 12일까지 전체 입원 환자 퇴원을 시행하고, 일부 외래진료는 축소하겠다"며 "병동의 간호사가 모두 파업에 참여함에 따라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해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라고 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7월 13일부터 14일까지 보건의료노조 파업이 예정돼 이 기간 내 빠른예약 업무가 부득이하게 지연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을 구성하고 제1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도 2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보건의료노조 파업 관련 비상진료대책과 유관기관 협조체계를 점검했다.
2차 회의에서는 지자체별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관련 기관과 협조체계 구축 등을 논의했다. 지역 의료기관 내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유지업무가 차질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행체계도 점검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채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해서는 안되며, 투쟁 계획을 철회하고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곁에 남아 줄 것”을 강조하며 "그동안 노조가 제기해 온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료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적극 수렴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 조규홍 장관 “보건노조 파업 계획 철회하고 환자 곁에 남아달라”
-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일주일 앞으로...파업 나서는 이유는?
- 인력 부족에 자책하는 보건의료인들..."이러다가 내가 환자를..."
- 코로나 전담 공공병원, 극심한 경영난에 신음..."우리 잘못인가" 울분
- 간호사 등 보건의료노동자 총파업 돌입..."고질적 인력부족 문제 해결"
- 尹, 노조에 강공모드...복지부도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대화보다 압박?
-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 종료...병원별 현장교섭으로 전환
- [시민건강논평]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정치적 파업’ 계속돼야
- 고대의료원·부산대병원 등 파업 장기화...보건의료노조 "집중 투쟁"
- 전공의 '과로'에 의존하는 의료공급체계...전문의 중심으로 바꾼다
- 병원노동자 76% "주4일제 근무 필요해"...저출산 극복에도 긍정적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