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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를 둘러싼 전쟁터가 된 여성의 몸[신간]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라포르시안]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페니미즘 아티스트다. 크루거는 사진이나 그림 위에 강렬한 문구의 텍스트를 덧붙이는 작품 활동으로 유명하다.

크루거가 1989년에 작업한 여성을 얼굴을 배경으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문구를 새긴 포토몽타주 작품은 인상적이다.

1989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여성의 임신 선택권 확보를 위한 시위를 알리는 포스터로 제작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낙태의 권리가 여성의 것임에도 남성들에 의해 그런 권리가 결정되고 때로는 여성의 재생산권이 가부장적인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 속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 중심의 정치권력이 대리전을 벌이는 전쟁터가 된다.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후마니타스 펴냄)는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고 간섭해 온 여성의 몸이 ‘배틀그라운드’라고, 여성들이 그에 맞서야 하는 이곳이 전장(戰場)이라고 선언하는 책이다.

형법 제27장(제269조, 제270조) ‘낙태의 죄’ 이면에 숨어 있는 성과 재생산권의 주요 맥락들을 법, 정책, 종교, 문화, 보건의료, 인권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짚어냈다.

책의 내용은 ▲프롤로그: 낙태죄 폐지가 시대의 상식이 되기까지(백영경) ▲낙태죄를 정치화하기(이유림)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중지(윤정원) ▲낙태와 헌법 논쟁(최현정)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인가 명령인가(나영) ▲낙태의 범죄화와 가족계획 정책의 그림자(류민희) ▲섹스 없는 임신, 임신 없는 출산(김선혜) ▲수용시설에 감금된 성과 재생산 권리(조미경) ▲건강한 국가와 우생학적 신체들(황지성) ▲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박종주) ▲낙태죄 폐지 투쟁의 의미를 갱신하기(나영정) ▲에필로그: 낙태죄가 폐지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나영, 이유림) 등으로 짜였다.

이 책은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들로 구성된 성과재생산포럼이 2016년 결성된 이래 쌓아 올린 여러 연구와 운동의 성과이기도 하다. 성과재생산포럼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는 외침 아래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소수자의 몸을 폐기하는 우생학적 인구정책의 폐기를 촉구해왔다.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가 단지 여성의 임신중단만을 규제해 온 것이 아니라 위계와 차별을 만들어 내는 국가 폭력의 동력이었음을 다각도에서 밝히고, 성과 재생산 권리가 더는 국가사업이나 인구정책 수단이 아닌 인간의 기본 권리임을 헌법과 건강권에 기초해 설명한다.

특히 성과 재생산권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 여성과 같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여성’뿐 아니라 재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각기 다른 이름, 경험, 서사를 가진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성과 재생산 운동의 흐름을 정리한 사진 연표를 실어 놓았다.

■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백영경 외 지음 | 후마니타스 | 192쪽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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