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 '업무상 촉탁 낙태죄' 관련 참고인 조사 요구...여성단체 "반인권적 임신중절 여성 색출 수사"

지난 9월 29일 낮 12시부터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모인 269명의 참가자가 흰색 피켓을 들고 형법 269조(낙태)를 의미하는 숫자 269 모양을 만들고 붉은 천으로 이 숫자의 가운데를 가르는 퍼포먼서를 했다. 사진 제공: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9월 29일 낮 12시부터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검은 옷을 입고 모인 269명의 참가자가 흰색 피켓을 들고 형법 269조(낙태)를 의미하는 숫자 269 모양을 만들고 붉은 천으로 이 숫자의 가운데를 가르는 퍼포먼서를 했다. 사진 제공: 한국여성민우회

[라포르시안] 지난 8월 말로 예상됐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가 미뤄지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인 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임신중절 여성을 적발하기 위해 특정 산부인과 이용자를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어 여성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21일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모 지역 경찰이 낙태죄를 범한 여성을 색출한다는 취지로 특정 산부인과를 이용한 다수 여성에게 공문서 및 전화로 '업무상 촉탁 낙태죄' 참고인 조사 출석을 요구하고 낙태 사실을 취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무상 촉탁 낙태죄는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에 근거한 것으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경찰 조사는 실질적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불법 낙태수술 행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민우회에 제보된 사례를 보면 경찰은 우편물 확인 후 ‘출산한 지 얼마 안 됐고 신생아가 있어 못 간다’고 전화한 여성에게도 계속 문자나 전화로 출석을 요구하고, 당사자가 개인정보 수집 경로를 묻자 "(경찰서에) 나오면 얘기해 주겠다"고 응답했다.

경찰은 조사에 응한 여성들을 상대로 낙태 경험 여부를 캐물었다.

한 제보자는 “임신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잘 안 됐고 결국 사산해 치료받았다”는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방식에 항의하는 여성들에게 경찰 측은 "민원이 들어와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조사에 응한 여성들은 “동네에 산부인과 병원이 하나밖에 없는데 이러면 어느 여자가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겠나", "남편이 우편물을 보고 나서 계속 (임신중절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의심하고 있다. 가정에 불화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수치스럽고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잠이 안 온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여성민우회는 "한 제보자가 경찰서에 출두하여 목격한 바로는 담당형사가 갖고 있던 서류의 맨 앞장에만 20여 건이 넘는 개인정보 명단이 있었다고 한다"며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뜨겁고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검토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낙태죄로 여성을 처벌하는 데에 이렇게까지 열을 올리는 경찰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여성민우회는 "이미 수많은 여성이 임신중절이 불법화됨으로 인해 어떠한 사회적 지원도 없이 홀로 불법수술을 감당해야 하는 인권침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지난해 임신중절 합법화를 요구하는 23만 명 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청와대는 ‘처벌 강화 위주의 정책으로 임신중절이 음성화되어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지만 국가는 언제까지 여성들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낙태죄를 수사하고 처벌할 경우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임신중절 여성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성민우회는 "현행법이 놓인 현실적·사회적 맥락과 의미에 대한 고려 없이 이러한 색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며 "법이, 경찰이, 국가가 여성들의 삶을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을 더 궁지로 몰고 그나마 유지되던 일상마저 해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깊이 분노한다"고 성토하며 임신중절 여성 색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낙태약 불법판매 급증..."부정확한 복용정보 등 여성 건강 위협" 

낙태유도제 '미프진'
낙태유도제 '미프진'

한편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수술 처벌을 추진하면서 산부인과 진료현장은 2010년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한 의사를 고발하는 운동을 벌였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복지부가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자 이에 반발한 산부인과 의사단체에서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면서 산부인과 진료실에서는 사회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와 의사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낙태수술 음성화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은 더 심화되고 있다. 복지부가 불법 낙태수술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겠다고 했지만 법적인 우려 때문에 낙태수술을 거부하는 산부인과가 늘면서 음성적으로 낙태수술을 유도하는 비밀광고가 늘고 있다. 낙태 수술비도 인상돼 환자들은 이중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게다가 온라인을 통한 낙태유도제 불법판매가 늘면서 여성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실적’ 자료에 따르면 적발 건수는 2013년 1만8,665건에서 2017년 2만4,955건으로 늘었고 올해 9월까지 2만1,596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불법판매 의약품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낙태유도제이다.

낙태유도제의 경우 2016년 193건으로 전체의 0.8%였던 것이 2017년에는 1,144건으로 6배 가량 급증해 4.6%를 차지했다. 특히 올해 9월까지 이미 1,984건이 적발돼 전체 적발건수의 9.2%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미프진을 구입해 복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여성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다"며 "복용 방법, 주의사항 등에 관한 부정확한 인터넷 정보가 많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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