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라포르시안] 책 제목부터 마음을 짠하게 한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쌤앤파커스 펴냄)'라니.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고충이야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실제로 병원내 근무환경을 지켜보면 '저렇게까지 힘들게...'라는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가 '간호사도 사람입니다'로 읽힌다.

저자인 김현아 씨는 외과중환자실 간호사로 20년 넘게 근무하다 작년에 병원을 그만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첫 감염 사망자가 발생했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 근무했다. 당시 그는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며 환자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의 상황을 전한 편지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그가 이번에 펴낸 책은 제목에 붙은 부제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간호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환자들을 위해 '백의의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 등으로 고통받는 '백의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간호사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책의 내용은 ▲1장 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들 ▲2장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메르스 사태의 한가운데서 보낸 14일) ▲간호사, 그 아름답고도 슬픈 직업에 대하여 등 3개 장으로 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반적으로 간호사는 ‘백의(白衣)의 천사(天使)’라고 불리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백 가지 일을 해야 하는 ‘백(百)일의 전사(戰士)’가 되어야 했다"고 말한다.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힘든 의료수가 구조의 문제 때문에 대다수 병원이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돌아간다. 그 속에서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면서 다른 업무까지 수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응급환자를 옮겨줄 사람이 없어 직접 그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도 대체 인력이 없어 다친 허리를 복대로 감아가며 환자들을 돌보거나 식사 시간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는 탓에 너무 허기져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밥을 입으로 가져간 간호사.

근무시간이 끝나도 돌보던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닦고 급작스러운 심폐소생술이 끝난 뒤 환자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정신없던 순간에도 분실된 응급 비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간호사. 병원이 인력보다 시설 투자 경쟁에 열을 올리는 사이 간호사들은 청소 용역비용을 충당하는 미화원 역할까지 도맡아야 하는 현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최근 발표한 의료기관내 갑질·인권유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는 병원에서 하는 QI경진대회나 장기자랑대회, 체육대회, 학술대회 등에 동원되고, 근무시간 외에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봉사활동이나 캠페인, 홍보활동에 동원된다.

심지어 간호사 2명중 1명은 의료기관인증평가시 업무과 관련 없는 청소 및 환경정리, 병원주변 풀뽑기, 침대 및 철창 닦기, 주차관리, 담배꽁초 줍기 등의 업무를 강요받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이 백 가지는 넘어 보인다.

재단 행사에 간호사들을 동원하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해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어느 병원의 사례는 다른 수많은 병원에서도 흔히 이뤄졌다. 그가 근무했던 병원은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병원과 같은 재단 산하에 있다.

"병원이 주최한 건강 강좌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참석했고, 병원 행사가 있으면 휴일을 반납해가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가자 몸과 마음도 덩달아 지쳐갔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간호사가 '백일의 전사'일 수밖에 없는 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 간호사들은 병원 업무에 제대로 적응할 시간적 여유나 교육도 없이 빨리빨리 적응할 것을 요구받고, 심지어 '태움(집단 괴홉힘)'을 당한다. 

이런 업무환경에선 100일을 버티기도 힘들다. 수많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난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이고,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불과했다.

"한 명의 신규 간호사가 정식 간호사로 재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좀 더 엄한 교육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다른 일도 아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처음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걸으라는 채찍이 날아오고, 이제 걷기 시작하면 갑자기 뛰라며 재촉해 급히 뛰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날아다니라고 한다”라는 어느 간호사의 한숨 섞인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는 ‘혼이 난다’는 가장 일반적인 말보다 다소 낯설고 과격한 “태운다”라는 말이 간호사들 사이에 일상화되었다. 그건 직업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인원수만 채우면 해결된다’는 잘못된 발상이 만들어놓은 현실에서, 그럼에도 환자만은 꼭 지켜내야 하는 간호사들의 간절함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을까?
간호사도 사람이다. 사람이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단지 혼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온몸을 불살라 ‘활활 태우는’ 일만이 간호사가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본문 중에서> 

환자를 지키기 위해 전사처럼 강해질 수밖에 없지만 결국 그들도 사람이다.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으로 지탱하는 의료시스템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20년 넘게 병원에서 근무한 저자는 "간호사의 일은 아름다웠지만 슬픈 자괴감으로 가득한 직업이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낸 건 단지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리고 동정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간호사들이 본연의 업무에 따라 환자를 지킬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책의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이익에 눈 먼 병원들은 결코 간호사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걸 경험으로 배웠다. 그들에게 간호사는 언제든지 바꿔 끼울 수 있는 기계 속의 조그만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간호사들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간호사가 없다고 간호대를 늘리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책이 아니라 간호사들이 끝까지 병원에 남도록 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간호사는 환자를 지키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이제는 간호사가 자신의 환자들을 지키는 일에만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강력한 정책으로 용기를 주어야 한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본문 중에서> 

■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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