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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헛소리예요! 양질의 의료를 포기한 것도 변화라 할 수 있나요?"미국 병원의 의료영리화 폐해 다룬 <코드 그린>, 한국 의료현장 모습과 겹쳐

[라포르시안] "병원들은 간호사 배치 수준, 간호사 대 보조인력 비율, 지원 서비스 감축을 통해 단기적으로 인건비를 줄였지만 간소화 전략이 장기적으로 비용을 절약했다는 근거는 없다. 사실상 직원 불만족, 이직, 환자에게 미친 부작용 효과로 인해 직원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비용이 증가했다는 근거가 일부 있다. 소진되고 불만족한 직원들이 사직을 하면서 병원은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데 추가비용을 감당했다. 이런 직원들의 변화가 환자케어 능력을 손상시키고 투약 오류, 피할 수 있었던 감염, 때로는 질병 기간 연장, 사망까지, 부정적인 환자 결과를 더 많이 초래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적절한 인력관리와 관련된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비롯한 이런 경향은 병원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느라 환자케어를 손상시킨 것은 아닌지 심각한 의문을 일으켰다" <'코드 그린' 310~311쪽>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지는 한국 의료체계의 여러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의료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의료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해 왔다. 30~40%에 달하는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 '저비용 노동착취'로 돌아가는 열악한 병원 노동환경과 그 속에서 반복되는 환자안전사고. <관련 기사: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가 된 병원, ‘백의의 전사’ 될 수밖에 없다>

비단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의료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병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발간된 <코드 그린 - 의료영리화가 무너뜨린 환자 안전, 그리고 간호(원제 Code Green: Money-Driven Hospitals and the Dismantling of Nursing')>는 부제처럼 수익과 비용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의료영리화가 병원 의료진과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고 기록했다. 

사회학자이자 퀸스 대학과 뉴욕 대학원의 전임교수인 데이나 베스 와인버그는 미국 보스턴의 베스이스라엘 병원이 재정 위기를 돌파하고자 이웃해 있던 하버드대 수련병원인 뉴잉글랜드 디코니스 병원과 합병을 추진한 1999년 1월부터 9월까지 현장 조사를 통해 병원내 인력 구조조정이 의료진과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폈다. 

<코드 그린>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90년대 미국은 불황의 여파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메디케어와 메디케어 지불 제한, 경쟁, 관리의료 증가를 특징으로 하는 시장 상황이 보건의료 조직, 특히 병원의 거대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기간동안 미국의 병원들은 기업에서 실행하는 다양한 구조조정 전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윤이 줄거나 아예 없어지면서 많은 병원들은 외과적 소생술이 필요한 '코드 그린' 상태에 놓여있었다. 급기야 '컨설팅'이란 명분으로 많은 병원은 재정적인 측면에 집중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릴 방안을 찾는데 혈안이 됐다. 

당시 베스이스라엘 병원은 미국 내에서 전문직 간호실무의 모범으로 꼽힌 병원이었다. 하버드 대학 교육병원이자 보스턴에 서 가장 좋은 아카데미 의료센터 중 하나이자 미국에서 가장 먼저 환자권리장전을 확립한 병원으로서 역사적으로도 세계에서 간호사들에게 가장 좋은 병원으로 꼽혔다. 이 병원의 간호 프로그램은 간호실무의 모델이요 표준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미국의 다른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불황으로 인한 경영 악화에 고심하던 베스이스라엘 병원은 이웃한 디코니스 병원과 합병을 통한 재정난 타개에 나선다. 양 병원은 임상과 경영 분야를 완전히 합병해 베스이스라엘-디코니스 메디컬 센터(이하 BIDMC)를 구축하고 거대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기대하던 경영 안정은 고사하고, 합병으로 인한 진통과 보험수가 하락 등 악재로 인해 BIDMC는 일주일에 100만 달러 이상 손실을 내는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병원은 재정 악화에서 벗어나고자 더욱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었다.

구조조정은 병원을 관심을 양질의 환자케어에서 기관의 생존과 수익증대로 돌리게끔 만들었다. 그 일환으로 간호인력 감축이 단행됐다. 정규직간호사 수를 줄이고, 간호사가 자신의 전문성이나 환자의 특수성과 상관없이 전보다 더 많은 환자를 담당하게 만들었다. 거액을 지불하고 컨설턴트를 고용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임상현장을 모르는 컨설턴트는 오로지 의료시스템의 표준화와 생산성에만 주목했다. 당연히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관계는 무시했다. '돈이 되는' 외래환자를 늘리고 환자 재원 기간을 줄이는 등 환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를 거쳐가는 상품처럼 취급했다.

"컨설턴트들은 제조업의 구조조정 전략을 가져와 재정과 환자케어 결과에서 측정 가능한, 양적 측면의 개선을 중심으로 병원을 가이드했다. 의료제공자들이 기업과 마찬가지로 질을 정의하는 데 표준이라든가 벤치마크 같은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의료는 표준화되고 정해진 형식에 맞춰 제한되는 경향을 보였다. 병원은 표준화와 생산성을 강조하면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일하도록 부추겼다. 이런 상황은 의료제공자들이 환자의 고유한 상태와 요구에 반응하는 능력을 제한한다" <'코드 그리' 25쪽>

인력감축과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은 가장 먼저 일차간호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베스이스라엘-디코니스 병원은 1997년 균형예산법의 결과로 메디케어 지불이 줄어들면서 1999년 경영손실은 최고점을 찍었다. 정규직간호사 비율은 줄고, 급여 수준이 낮고 덜 숙련된 보조인력으로 빈자리를 메웠다. 그러자 환자와 간호사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간호사가 자신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일차간호는 무너지다시피 했다. 전처럼 환자의 상태를 따라 가며 간호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었다.

합병 전 두 병원에서 각각 일하던 간호사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좌절했다. 한때 베스이스라엘의 영광이었던 일차간호 문화가 무너지자 베스이스라엘 간호사들은 커다란 무력감에 빠졌다. 

간호표준에 따라 효율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간호를 제공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던 뉴잉글랜드 디코니스 병원 간호사들은 자신의 간호가 쉽게 무시당했다는 데서 심한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은 자신에게 내재된 간호사 특유의 희생정신으로 인력부족의 공백을 메우려 했고, 그들은 금방 소진(Burnout)되어갔다. 한때 강력한 간호 리더십을 누렸고 교육 수준이 높은 데다가 의사와 파트너십이 강고했던 간호부는 너무도 쉽게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간호사들이 나서 이런 의료시스템의 문제에 항의했지만 경영진은 "간호사들은 표준에 적응해야 한다. 이전의 업무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건 헛소리예요. 무슨 변화 말이죠? 양질의 의료를 하다가 아무 케어도 제공하지 않는 변화요?(…...)이건 나중에 보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지금 환자를 세 시간 동안 돌보지 않는다면 나중에 살피지 못한 부분을 세 시간 보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이건 주사위로 하는 도박 같은 거예요. 경영진은 그 세 시간 동안 나쁜 결과가 없기를 바랄 뿐이죠.(…...)그들이 말하는 건 나쁜 간호고,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간호사들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요" <'코드 그린' 33쪽>

간호사들은 의료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경영진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생산성과 재정절감이란 경영방침 앞에서 무기력한 비명에 그칠 뿐이었다. 

병원은 의료진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려고 했다. 병원 내 가장 큰 조직인 간호부를 해체하고 다른 부서와 통합함으로써 간호사들이 목소리를 내는 통로를 막아버렸다.

그 과정에서 의사들은 병원내 권력 투쟁을 벌이며 간호사를 통제함으로써 구조조정에 저항했다. 간호사는 이렇게 병원 내에서의 지위, 전문지식을 활용할 기회를 잃고, 의사에게 전보다 더 심하게 종속되면서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효율성을 앞세운 의료영리화 속에서 BIDMC에 있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런 구조 속에서 환자들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방치됐다.

"간호 분야가 조직에서의 영향력과 파워를 잃었기 때문에 병원 전체 간호사들은 병원 정책에 대한 공동의 통제권 상실을 경험했다. (…)점점 현장의 자원과 지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선 간호사들의 일은 더 어렵고 스트레스가 많아졌으며, 간호사들은 조직의 정책을 바꾸거나 환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간호를 제공하는 데 무력감을 느꼈다." <'코드 그린' 169p>

놀랍게도 20년 전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지금의 국내 의료현장 모습과 많이 겹친다. 베스이스라엘 병원의 간호사들이 겪는 상황은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일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익숙한 풍경이다.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일당백으로 '백일의 전사'처럼 싸우듯이 일하는, 늘 사직서를 품고 사는 한국의 간호사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간호사, 100가지 일을 해야 하는 '100일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보건의료 영역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정부의 개입과 공공성 강화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효율성이라는 더 강력한 '시장의 원리'(적극적인 의료영리화 정책)를 적용해서 풀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 이 책은 그런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 코드 그린 - 의료영리화가 무너뜨린 환자 안전, 그리고 간호

데이나 베스 와인버그(저자) | 김형숙(역자), 전경자(역자), 조수경(역자) | 티티출판사 |336쪽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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