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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곳이 중심이다] 새로운 보건의료운동 연대체가 필요한 때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라포르시안] 몇 년 동안 보건의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소기업에 가서 월급쟁이 사장으로 일하기도 했었지만 어떻든 보건의료운동이랍시고 해온지가 이제 햇수로 19년째를 맞았다. 지지리도 오래 했다. 이렇게 지지리도 오래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조직을 만들고 전투를 하면서 갖는 오래 누적된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이 보건의료 분야는 주변이 모두 전문가로 둘러싸인 분야이고 내용도 복잡하고 어려워서 실제 운동의 재생산 역량을 전문가 이외의 사람에게서 만들어내기가 아주 어려운 분야다. 그러다보니 몇 명 되지 않은 활동가와 매달 허덕허덕하는 재정상황으로 지금까지 온 것을 오히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어떻든 2000년 초반에 비하면 보건의료의 상황은 내외적으로 아주 많이 변화되었다. 운동 내적으로 보면 보건의료운동이 전문가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지평이 넓혀졌을 뿐더러, 거기에 의사나 약사와 같은 기존 전문가들 외의 다양한 젊은 정책전문가들이 보건학 분야에서 양성되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뿐이랴! 온오프 라인으로 수천 개가 넘는 환자모임이 만들어지고 여전히 열악하지만 각종의 환자단체들이 생겨남으로 인해 환자들이 보건의료 분야의 한 주체로 등장한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물론 그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운동 외적으로는 건강과 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논의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보건의료 이슈가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일이 이렇게까지 빈도수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인 케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보건의료의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건 보건의료 분야의 시장 규모가 매년 커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이가 커지는 것과 함께 운동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일정한 한계에 봉착하였다. 그러나 이 내외의 구분은 사실 서로 연동되어 상호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사실 하나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이것을 계급·계층운동의 지지부진함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지난 2001년 노바티스 한국 지사 앞에서 열린 글리벡 약가 인하 시위.  사진 출처: 보건의료단체연합

건의료운동은 그간 건강보험 제도개선이나 의료의 영리화 저지 그리고 공공의료의 확충이나 의료제도의 개선 등 말 그대로 보건의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주제들만 하여도 너무 많은 일과 너무 많은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에서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었고 제도개선 이상의 활동을 하기에는 보건의료운동의 전체 역량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보건의료운동은 이제 건강권 운동으로 그 지평을 더 확장하기를 요구 받고 있다. 건강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써온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 운동의 내용으로 구체성을 요구받지는 않았다. 그저 추상적인 의미의 건강권, 즉 인권으로서의 건강권 정도의 의미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과 건강권운동은 그 의미와 운동방식이 다르다. 보건의료운동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전문가 수준의 시민단체와 각종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확장된 형태의 또 다른 전문가 운동이었다면 건강권운동은 계급·계층운동과 결합하는 대중운동의 형식과 내용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권운동이 됐든 보건의료운동이 됐든 이 운동은 모든 계급계층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이해와 요구를 그 내용으로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계급·계층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운동이나 교육운동처럼 하나의 부문운동이다. 이 부문운동의 성립은 그 대중들의 고통과 요구로부터 출발하지만 전개와 발전은 계급계층 운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현재 보건의료운동이 건강권운동으로 그 지평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언급한대로 계급·계층운동의 지지부진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계급·계층운동이 대중운동으로 커나가면 전문가운동인 보건의료운동은 대중운동으로 녹아들고 그 운동은 대중적인 건강권운동으로 전화한다. 하지만 지금은 각 파트의 열악한 대중들과 사안사안 별로 그때그때마다 결합하고 깨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제도개선 활동 정도에서만 머무를 뿐이다. 대중운동이 항상적인 힘을 가지고 부문운동을 견인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이 지금처럼 조합주의가 팽배한 양상을 띠게 되면 보건의료운동이 대중적인 건강권운동으로 진화하는 것도 함께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내가 일하는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주야장천 보건의료 관련 일만 하는 유일한 시민단체다. 우리는 모두 해봐야 상근자가 고작 여섯 명이다. 그 중에 세 명은 장애인이고 세 명은 맨날 골골한 환자다. 그 여섯 명이 보건의료의 온갖 일에 다 참견한다. 그러다보니 이미 발생하고 전개되는 어떤 사안에는 입장도 못 내고 지나가버릴 때도 있다. 참 힘들게 산다. 맨날 보건의료 제도개선 활동이나 하고 앉았으니 아주 개량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다. 아니 아예 개량주의자들이라고 뒷이야기를 치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우리야 그런 말들에는 신경도 안 쓴다지만 우리가 건강권 대중운동으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계급·계층운동 상황은 너무 갑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하나마 각 계급·계층의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끝없이 시도하기 위해서는 그다지 내부의 결합도가 강하지 않은 보건의료운동 진영 내부의 전열정비가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보건의료운동은 기존의 전문가 단체들과 여러 시민단체 그리고 새로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는 환자단체 진영이 제 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연대는 입장의 차이보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같은 입장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때 기존의 각기 다른 운동진영들이 하나의 틀로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연습과 실천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그 명칭이야 어떻게 정하든 새로운 연대체의 구성을 제안하는 바이다. 계급·계층운동의 씨줄과 보건의료운동의 낱줄을 어떻게 엮어야 대중운동으로서의 건강권운동이 성장하고 역사에 등장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또 실천해보자. 실천의 차이가 아니라 관념의 차이로 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에는 매일매일 죽음의 절벽에 서서 생명을 버리는 민중들의 고통이 너무 크고 절박하지 않은가?

새해를 맞아 한번 긁적여본 보건의료운동의 단상이다.

강주성은?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았다. 2001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했고, 한국백혈병환우회를 창립한 후 보건의료운동가들과 함께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만들어 적극적인 환자권리운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라는 책도 썼다. 현재 건강세상네크워크의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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