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의료와 사회 책·서평
병원 사용 설명서? 차라리 한국 의료에서 살아남는 ‘생존 매뉴얼’‘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개정판…“8년 지난 지금도 유용하다는 건 의료환경 그대로란 방증”

[라포르시안]  책 제목은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이다. 생각건대, 이 책은 병원 사용 설명서가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에서 살아남는 생존 매뉴얼'에 가깝다.

8년 전 발간된 책의 개정판이 최근에 나왔다. 이 책은 백혈병 환자이면서 관련 환자단체를 만든 보건의료활동가인 강주성씨가 썼다.

자신의 오랜 환자 경험과 보건의료활동가로서 의료현장에서 보고 느낀 제도적인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환자들이 병원 이용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담아냈다.

   가전제품이고 공공시설이고 간에 8년쯤 지나면 낡은 건 교체되고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에 적힌 8년 전 병원 사용 설명서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상황이 더 고약해졌다. 경제적 수준에 따른 건강형평성은 더 악화되고 있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수년째 제자리 걸음에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에 대한 정부 정책은 갈수록 교묘하고 집요해진다. 안타깝게도 8년 전보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가 더 필요해졌다.

책을 쓴 저자도 이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개정판 서문에 담았다.

"8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의 내용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와 시민들이 처한 보건의료환경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한국의 의료보장율은 약 65% 정도였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중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0%에서 5%로 줄고, 상급병실도 4인실까지 보험적용이 되었으며 선택진료비도 약 반으로 줄었건만 현재의 의료보장율은 오히려 약 62%로 더 낮아졌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생긴 걸까?"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편마다 ▲건강에도 형평이 있다 ▲병원이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 ▲우리들이 만드는 희망 의료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등의 제목을 달았다.

책 제목 그대로 몸이 아파서 환자가 됐을 때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병원비가 없어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응급의료비를 대신 지불해주는 '응급의료비 대불제'에 대해서, 고액·중증질환으로 인한 진료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본인부담상한제'의 허와 실에 대해서, 병원에서 청구한 선택진료비나, 입원비 등이 적정한지를 확인해 보는 방법, 동네에서 좋은 약국 찾기 방법 등을 실제 사례와 연결해 풀어놓았다.

병원의 입원보증금 요구 관행이나 치료비보다 더 많이 나오는 병실료 문제,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영리의료법인 병원 문제,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 횡포 등의 내용도 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환자가 떠안게 되는 많은 문제의 원천이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과 비급여 진료에 있다고 지목한다.

병원 사용 설명서에서 지적하는 입원보증금,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다국적제약사의 약값 횡포 등의 문제는 따지고 보면 대부분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파생됐다.

그래서 이 책은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살아남는 생존 매뉴얼'에 가깝다.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는데 네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고가의 치료제 복용을 거부한 70대 아버지, 오랜 투병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족들의 짐을 덜어주고 '의료급여수급자' 혜택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이혼도 감내해야 하는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대한민국 의료환경은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박노해 시 '나 거기 서 있다' 중에서 >

저자인 강주성씨가 병원 사용 설명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몸이 아프면 신체의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집중하듯이, 의료시스템에서도 가장 아픈 환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

그는 개정판 서문의 말미에서 "의료에서 환자가 중심인 이유는 그 말대로 가장 약하고 아픈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는 환자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바로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환자 중심의 의료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일 것"이라고 썼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