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첫날 '사법입원제도' 도입 논의 시작..."환자 인권보호·치료권 보장을 목적으로 해야"

[라포르시안] "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를 살펴보면 수많은 가족들은 죄의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보호의무자 입원이 1명에서 2명으로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그것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가족끼리도 믿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돌봄의 책임도 보호의무자에게 있는데 잠재적인 범죄자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던 법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도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열린 공청회에서 이항규  대한정신가족협회 경기남부지부장이 한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그동안 국내 정신보건정책이 어떠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신질환자 돌봄을 오롯이 가족의 책임으로 지운 국가, 그리고 비자의적 입원(강제입원)에 있어서도 가족에게 판단을 넘겨 그에 따른 죄의식을 갖게 만든 법규정.

1996년 12월 구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이해 21년 만에 전면 개정 정신보건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지난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강제입원 제도 개선을 통한 정신질환자 인권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서비스 지원 근거 마련, 전 국민 대상 정신건강증진사업 근거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강제입원 제도 개선을 놓고 정신의학계의 반발이 거세다.

새로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비자발적 입원의 경우 2주간 기간을 정해 입원을 한 후 국공립병원 소속 전문의 등을 포함한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이 일치된 소견을 보여야 입원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던 구 정신보건법과 비교하면 상당히 엄격해졌다.

하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의사에게 각종 서류구비 의무와 벌칙 조항만 무수히 나열해 놓았을 뿐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미흡하다"고 반발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시 법원이나 준사법기관에서 입원심사를 하고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정부도 중장기적으로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작년 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통해 "강제입원이 가진 인권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는 사법기관이 입원 적합성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체계를 구축해 부적절한 입원으로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OECD 모든 국가에서 사법입원제도 시행" 

이날 열린 공청회에서 법률전문가와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사법입원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입원의 도입 필요성'이란 발제를 통해 "개정 정신보건법의 보호입원제도는 구 정신보건법의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실체적 요건을 좀 더 엄격하게 규정했을 뿐 부당한 강제입원을 통제하기 위한 절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배려를 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입법이 헌법재판소가 제기한 (보호의무자에 입원의)위헌성을 충분히 해소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준사법적 위원회든 법정절차든 객관적인 제3의 기관이 입원 여부를 판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그것이 입원 당사자와 보호의무자, 입원시키는 정신의료기관 모두의 불표리요한 부담을 더는 길이고 강제입원의 엄중함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적극 나서 정신과 의사들이 더는 부당한 강제입원 문제로 법정에 서고 범법자로 전락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영문 아주대 인문대학 특임교수는 '인권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사법입원'이란 주자발표를 통해 "부당한 입원을 경험했다고 환자들은 병원을 상대로 고소를 했고, 법원은 검찰의 기소를 받아 정신과 의사들을 범법자로 전락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제는 이 모든 것의 절차가 법원의 명령에 따라 일어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보건복지부는 비자의입원에 대한 전반적 절차를 의료기관이나 정신과 의사의 판단, 보호의무자의 요청 등의 행위로 구분하지 말고 법적 절차에 따른 행정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사법입원제도는 모든 OECD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 생소할 게 없고, 어떠한 방법으로 시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사법입원제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입원 관련 절차 지나치게 복합하고 31개 달하는 처벌 조항 과도해" 

 "사법입원제도, 의사 업무부담 책임 완화 수단으로 생각해선 안돼"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한 정신의학 전문가는 정신건강복지법이 강제입원의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과도한 처벌조항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준호 울산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교실)는 "정신건강복지법은 입원 관련 절차가 복잡하고 작성할 서류업무는 과중하며 각 단계마다 처벌조항이 무겁다"며 "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합당한 처벙을 받아야 하지만 현재 법령은 그 정도가 지나치고 진료현장의 현실과도 맞지 않아서 의사들을 곤혹스럽게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한 응급한 정신질환자를 가족들이 병원에 다려와도 보호의무자 확인 서류를 모두 구비하는 전에는 입원시킬 수 었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강제입원 환자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3일 넘어서 신고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런 식의 벌칙 조항이 31개에 달한다.

안 교수는 "복지부는 개정된 법을 시행해보기도 전에 바꿀 수 없다고 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구 정신보건법은 인권보호의 원칙을 벗어났고, 개정법은 향후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되는 데도 무조건 시행하고 볼 수는 없다"며 "정부와 국회는 모순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을 무리하게 확대하기 보다는 정신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재개정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사법입원제도를 강제입원에 따른 의사의 업무부담 완화나 법적책임을 줄이려는 의도로 도입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입원 제도는 의료계가 기대하는 것처럼 입원 절차를 단순화하거나 의사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도입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의견수렴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며 "강제입원의 권한이 부여될 경우 그에 따른 민형사의 법적 책임도 함께 부과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상 강제입원 절차 규정을 엄격하게 강화한 것 자체가 이미 환자에 대한 신체적 구금 결정권을 가족이나 의사의 권한이 아닌 국가가 법을 통해 자신의 본래 권한으로 복귀시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실제 적용을 받게 될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그동안 국가가 제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항규 정신장애인자족협회 경기남부지부장은 "모든 것을 가족과 정신질환 당사자의 문제, 병원과 치료진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보면 오늘의 이러한 법률로 진통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가족과 의료진에게 징벌적인 법을 만들지 말고 국가가 의료영역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공공병원을 확대해 불합리한 입원을 없애고 최소한의 개입을 해 입원의 가부를 결정하는 사업입원을 이제는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런 논의에 있어서 당사자인 정신장애인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이 지부장은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을)동점심과 시혜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무조건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억지만 부리는 가족으로 보지 말고 우리들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