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교체마저 교대로 해야할만큼 인력부족 심각" ..일자리위원회에 보건의료분과 설치 등 필요

야간근무 중인 간호사.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야간근무 중인 간호사.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18년차 간호사가 업무시간에 쫓겨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밥을 제 때 못 먹어서 살이 빠진다고 '강제 다이어트'라고 부르더라. 워낙 인력이 부족하고 업무강도가 세다보니 병원 내에서 생리를 하는 간호사 명단까지 작성해 놓고 서로 돌아가면서 생리대 교체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일자리위원회 정책 제안을 위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보고대회'에서 나온 말이다. 병원내 간호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하게 한다.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근무하다보니 빡빡한 근무시간에 맞춰 식사도 5~6분 만에 마시듯 해야 하고, 생리는 물론 임신마저 자의가 아니라 근무표에 맞춰야 한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올해 3~4월 전체 조합원 5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의 응답자료(2만9,545명 응답)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분석한 결과는 병원의 업무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수치로 보여준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보건의료노동자의 직종을 보면 간호사가 63.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간호조무사와 임상병리사가 각각 6.3%, 방사선사 5.7%, 사무행정·원무가 4.4% 순이었다. 다만 각 직종별 교차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직종별 노동조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분석 결과를 보면 교대근무자로 한정했을 때 '월 평균 밤근무 개수'는 6개라는 응답이 37.7%로 가장 많았고, 이어 7개(24.9%), 8개(10.5%), 5개(9.1%) 순이었다.

'평균 한끼 식사 시간'(이동 및 휴게시간 포함)은 '20분 미만'이란 응답이 35.3%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20분 이상~30분 미만' 32.4%, '50분 이상' 12.6% 순이었다.

현재 근무하는 병원에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번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이직을 생각해 본 적 있다'거나 '기회가 있으면 할 생각'이란 응답이 57.5%에 달했다. 10명 중 6명꼴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된 이직 고려 사유로는 '열악한 근무조건, 노동강도'(40.1%), '낮은 임금 수준'(15.7%), '직장 문화 및 인간관계'(9.1%) 등을 꼽았다.

“한국의 간호사는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해 2015년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이고,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불과하다"는 대한간호협회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부서내 근무하고 있는 인력의 부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27.9%)와 '그렇다'(49.1%)는 응답이 77%에 달했다. '부서내 인력부족으로 인해 사고 및 질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2.1%가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답했다.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동자들은 병원내 인력부족이 의료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환자에게 제공할 의료서비스 질이 저하됐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16.1%)와 '그렇다'(53.2%)는 응답 비율이 69.3%나 됐다. 특히 응답자의 33.1%가 '인력부족으로 인해 의료사고 발생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업무상 재해·질병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2.9%였고, 가장 많이 경험한 업무상 재해·질병은 근골격계 질환(55.2%)과 수면장애(36.4%)였다.

병원은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지만 모성보호 수준은 상당히 취약했다. 최근 3년내 임신출산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임신 결정의 자율성을 파악한 결과, 응답자의 30.3%가 '자율성이 없다'고 답했다.

임신 결정의 자율성이 제한받은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에'를 꼽은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임신 중 초과근로를 경험한 비율도 48.5%에 달했고, 임신 중 야간근무를 경험했다는 응답비율도 17.9%였다. 

간호사를 비롯한 많은 보건의료노동자가 높은 감정노동 수행으로 탈진 상태에 빠져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업무 특성상 높은 긴장감과 집중을 요구하는 측면도 있지만 인력확충이나 근로조건 개선 없이 무조건 간호사 등에게 친절을 강요하고 각종 평가를 통한 실적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직무스트레스를 높이고 감정노동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 기분과 관계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설문에 응답자의 81.4%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환자나 보호자를 대상으로 일을 얼머나 더 할 수 있을가 생각하게 된다'고 응답한 비율도 63.1%에 달했다. 

"보건의료 인력확충, 더는 병원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치부해선 안돼"

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 적정인력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개별 병원 차원에서 적정인력 확충을 하는 데는 경영상의 문제로 한계가 따른다.

보건의료노조는 국가 차원에서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책임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보건의료인력법 제정 ▲국가일자리위원회에 보건의료분과 설치, 보건의료분야 노사정 일자리 대타협 추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전면 실시 ▲의료기관평가인증제 개선 ▲의료법 준수 등을 제안했다.

이날 보고대회에서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지속해서 해온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고통과 눈물의 보고서'라고 표현했다.

환자의 생명의 살리는 공간으로써 병원이 365일 24시간 내내 쉼없이 운영되는 데 수많은 보건의료노동자의 피와 눈물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영명 실장은 "인력부족은 단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악화만이 아니라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며 의료사고를 초래하는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며 "보건의료인력 문제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나 실장은 "보건의료 인력확충을 더는 병원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치부해놓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인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국회에 제출된)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는 정부 차원의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 수립,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인력 양성·확충·유지·관리방안 연구, 보건의료인력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보건의료인력법 제정이 받드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문 대통령의 제1호 업무지시인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과 관련해 이 위원회에 보건의료분과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 실장은 "보건의료노조는 이미 보건의료분야에서 50만개 일자리 창출방안을 마련해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측과 정책협약식을 체결했다"며 "23일에는 청와대에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인력 확충 방안으로 서울시가 서울의료원에 도입한 '노동시간단축 모델'을 적용하는 의견도 제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서울의료원 노동시간 단축 시범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연간 2501시간 노동을 1888시간으로 총 613시간 단축하는 데 60명의 신규 인력을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상 기준으로 9.6% 인력을 신규 창출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의료원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전체 의료기관에 적용(전체 병상 65만2981개 * 0.096)하면 총 6만2686명의 신규인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나영명 실장은 "보건의료산업 노동시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시간외근무 없애기, 휴게시간 보장, 휴일근로 단축, 모성정원제 실시, 야간근무 단축, 주5일제 전면 시행, 시간외근무 없는 시범병동 운영 등 실노동시간 단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국가일자리위원회 정책 제안을 위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보고대회'가 열렸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국가일자리위원회 정책 제안을 위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보고대회'가 열렸다.

보건복지부도 적정 의료인력 확충 정책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다. 하지만 적정 의료인력 확충의 책임을 여전히 개별 병원에 지우고 있다.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변성미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보건사무관은 "보건의료 분야는 여성노동자 비율이 높고 높은 업무강도를 요구하는 특성 있다"며 "의료인력의 적정수급과 적정배치,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 사무관은 "간호사 인력과 관련해 유휴 간호인력을 활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유휴 간호사 인력이 10만명 수준이지만 이 중에서 질제로 다시 일할 의지가 있는 인력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간호인력은 신규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 전향적인 (간호학과)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호학과 입학정원이 2006년 1만1147명에서 2016년 2만4426명(정원외 포함)으로 최근 10년간 2배 이상 늘었고, 내년부터 연간 2만 명 이상의 신규 인력이 배출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간호학과 입학정원 확대는 유휴 인력만 늘릴 뿐이라는 우려도 높다.

근본적인 문제는 간호사 일자리가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로 '나쁜 일자리'로 전락했다는 데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적극적인 의료환경 개선과 함께 개별 병원에 떠맡겨진 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런 해법보다는 병동 간호사의 시간선택제 등 유연근무 활성화 등의 정책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

나 사무관은 "시간선택제나 유연근무 자체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불안정한 일자리, 처우악화 등이 문제"라며 "근로시간단축을 통한 신규 일자리 확충이나 3교대 근무자 1명을 시간제 2~3명으로 나눠서 하는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건의료 분야의 인력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며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으로)법적 틀이 마련되면 정책적으로 좋은 방안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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