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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적정인력 확충, 돈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보건의료산업 일자리 혁명' 필요성에 병원 노사-정치권 공감
지난 2015년 9월 2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주최로 열린 '환자안전 위협하는 병원노동자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한 근무시간 실태조사 선포식'을 모습.

[라포르시안] 입원환자 병동을 갖춘 병원은 연중무휴로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인력 등이 진료의 연속성과 신속성을 위해 밤낮없이 근무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외래진료와 응급의료까지 포함하면 잠시도 중단이 없다. 야간에도 3교대로 근무를 한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업무 수행 중 긴장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는 노동집약적이다. 아무리 시설이 개선되고 첨단장비를 도입해도 운영과 최종 결정은 의료인의 몫이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 높은 전문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의료인력의 노동력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과 양은 타 서비스업종과 비교해 훨씬 길고 많다.

의료서비스가 노동집약적이란 말은 그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의료서비스 현장은 노동학대의 공간이다. 의료인력이 항상 부족한 상태다. 간호사 4~5명이 담당해야 할 일을 1명이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OECD 헬스 데이터 201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4.8명으로 OECD 평균(9.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 병원에서는 간호사 5~6명이 담당하는 일을 한국에서는 1명의 간호사가 맡고 있는 셈이다. 만성화된 의료인력 부족은 환자의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

적정 의료인력 확충이 시급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도 없이 많이 나온 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재벌그룹이 세운 대형병원이 등장하면서 병원끼리 급성기 병상 확충 경쟁이 시작됐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2007년 7.3병상에서 2012년 10.3병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총 병상 수가 줄어든 반면 한국만 증가세를 기록했다.
 
급성기 병상 수가 급증했지만 의료인력 확충은 크게 못 미쳤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상태가 고착화 됐다. 20~30분의 식사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해 '간호사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수준이다.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벌어지는 의료현장의 위태로운 모습이다.

지난 4월 1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은행회관 국제회의장에서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미디어오늘 공동주최로 <보건의료산업‘일자리대타협’을 제안한다-19대 대선후보 초청 대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장비 중심에서 사람 중심 의료체계로 바꿔야"

병원에 적정 수의 인력과 함께 숙련된 의료인력이 근무해야 의료서비스의 질과 함께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의료현장, 특히 간호부문은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노동조건 악화, 이직과 구인난의 악순환 구조에 빠졌다.

인력이 항상 부족해 1명의 간호사가 4~5명이 해야 할 몫을 담당하고, 업무부담이 가중되면서 노동조건은 악화된다. 간호사의 이직률은 치솟고, 인력이 부족한 병원은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간호사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노동조건은 더 악화는 악순환 구조다.

처우와 근무환경이 열악한 중소병원은 간호사 이직률이 지나치게 높고,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취약해 출산 후 복귀하지 못하는 간호인력도 많다. 그만큼 숙련된 간호인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개별 병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적정 의료인력 확충 노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다. 앞서부터 적정 의료인력 확충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전국보건의료노조가 19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혁명'을 들고 나왔다.

일자리 혁명의 요지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의료환경과 제도적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7일 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2017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럼 19대 대선후보 초청 대토론회'를 열고, 일자리 창출과 적정 인력확충 방안을 병원 노사와 정치권이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보건의료노조는 건강보험의 재정 규모를 키우고 정부의 지원을 늘려 재원을 마련하면 보건의료 부문에서 50만개 새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은 ▲2020년까지 모든 병동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시할 경우 간호사 및 간호보조인력 11만5300여명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제고를 위해 보건의료인력법을 제정해 양질의 인력을 충원할 경우 11만8,400여명 ▲보건소, 학교보건, 산업보건 등 공공보건의료인력 확충시 10만3000여명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간호인력 확충 5만여명 ▲모든 병원에 환자안전전담인력을 배치 시 3000여명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상시적인 부족인력을 정원으로 충원하는 모성정원제를 실시 3만여명 ▲시군구별로 1개씩 공공병원을 설립할 경우 7만여명 등의 새 일자리 창출방안을 제시했다.

50만명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17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건강보험 수가와 연동, 보건의료 예산 확충, 고용보험·건강증진기금 활용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나 실장은 "시설과 장비 관련한 수가에 비해 인력과 관련한 수가는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인력이 투입되는 항목과 관련한 수가를 반영하거나 상향 조정하는 인력수가제도를 개발하고 상대가치점수를 개편해야 한다"며 "또한 국가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보건분야 예산 비중이 2017년 기준으로 0.57%에 불과한데 이를 최소한 5%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보다 현실적인 인력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19대 대선 보건의료분야 정책공약' 제안을 통해 건강보험 누적흑자 20조원을 활용해 의사와 간호사 일자리 12만개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체 병원의 70%를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전환해 간호사 일자리 5만개 ▲주치의제 기반의 만성질환관리 강화를 통해 환자관리 전담간호사 5만명 ▲입원환자 전담전문의 등 의사인력 확충 1만명 ▲보건의료 연구개발 및 산업 관련 인력 확충 1만명 등을 통해 2020년까지 의료분야에서 일자리 12만개 확보가 가능하다.

12만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8조3,000억원 정도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김 교수는 “장비 중심, 병원 중심, 수도권 중심인 의료체계를 사람 중심, 1차의료 중심, 지방 중심 의료로 바꾸어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보건의료구조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계도 의료인력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간호인력의 적정화와 전공의 정부위탁 수련제도 도입 방안을 제시했다.

임영진 대한병원협회 부회장(경희대의료원장)은 "현재 면허간호사 중 46%만 의료기관에 종사하고 있고, 질 높은 간호제공을 위해 도입한 간호등급제로 인해 오히려 간호인력 불균형이 심화됐다"며 "간호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통해 간호인력공급을 적정화하고, 간호등급제 산정기준을 운영병상으로 변경해야 간호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동현 보건의료개혁국민연대 운영위원장(한림대의대 교수)는 "OECD 국가 평균 절반밖에 되지 않는 보건의료인력 확충 및 관리를 위한 국가책무를 강화하고,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보건의료인력 기준법과 같이 보건의료인력정책에 대한 법제도 정비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 의지의 문제"

한편 각 대선후보 측에서도 보건의료 인력확충을 통한 새 일자리 창출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각 정당의 대선캠프 관계자들이 참석해 보건의료체계 개선과 일자리 창출 의지를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정춘숙 정책본부장은 "현재 민간의료기관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는 과잉투자 되고 있는 반면 인력에 대한 투자는 미비하다"며 "'보건의료인력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보건의료 인력 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이정미 전략기획본부장은 "보건의료인력을 OECD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해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인구 1천명당 1명 이상으로 공중보건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참석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보건의료 분야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중요한 건 가능성이 아니라 '의지'라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간호사 인력확충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보건의료 분야는 일차리 창출의 최적지"라며 "'그게 가능하냐, 현실성이 있느냐'를 따지는 데 왜 돈이 없나, 왜 불가능한가.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캠프의 김미희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50만개 창출을 위해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을 제정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환자안전 일자리 공공보건의료 일자리 등을 창출하는 방안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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