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훈(남극세종과학기지 파견 공보의)

 

sunsu : 그곳이 지구끝 남극세종기지가 정말 맞나? 그렇게 먼곳까지 카카오톡이 된다니, 신기하다.

 

조경훈 : 한국과의 시차는 약 12시간 정도다. 우리가 채팅 인터뷰를 시작하는 지금 세종기기 시각은 저녁 9시니까 한국은 오전 9시일거다.

sunsu : 어떻게 세종기지에 가게 된 건가? 특별한 계기라고 있었나?

조경훈 : 매년 1명의 공중보건의를 세종기지에서 뽑는다는 것을 교수님으로부터 듣게 됐다. 그 교수님은 ‘극지의학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우리 모교(고려의대)는 극지연구소와 MOU를 맺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세종기지행을 선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다.

sunsu : 기지에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조경훈 : 세종기지의 아침식사는 8시에 시작한다. 9시에 모든 대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그날의 일정과 계획, 날씨 등에 대해 서로 논의한다. 회의가 끝난 후 바로 근무에 들어가고 12시반부터 1시반에 점심식사, 6시에 하루 일과가 끝난다. 왠만하면 주말이나 휴일에는 푹 쉰다.

 

sunsu : 기지 내에 유일한 의사라고 들었다. 대원들의 건강관리를 주로 하는 건가?

조경훈 : 세종기지에는 하계기간(11월~3월) 동안 연구원 40~50명 등 약70명이 기지 안에 거주한다. 또 월동기간(4월~10월)에는 월동연구대원(18명)만이 근무하며 기지를 유지하게 된다. 의무실을 찾는 환자는 아무래도 동계 기간 보다는 하계 기간이 많다. 따라서 동계 기간인 지금은 평소 대원들의 신체적인 건강관리와 함께 심리적인 건강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고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헌정 교수와 ‘월동대원의 기분 및 심리상태, 수면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sunsu : 세종기지는 몇 개 동으로 구성돼 있나? 사진으로 설명해달라.

조경훈 : 여기 사진으로 보면 1번이 생활관으로 대원들이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곳이다. 의무실도 이 건물에 있다. 2번은 발전동으로 발전기 3대가 교대로 운용되고 있다. 3번은 중장비보관동으로 각종 중장비(포크레인, 지계차, 페로바, 설상차 등 등)이 보관된는 곳이며, 4번과 6번은 연구장비가와 펌프가 있는 곳이다. 5번은 보트창고동으로 ‘조디악’이라고 하는 고무보트를 보관한다. 이 고무보트를 통해 바다 건너에 있는 다른 기지들과 소통하게 된다.   sunsu : 처음에 남극에 도착했을 때 어땠나?

조경훈 : 남극에 발을 디뎠을 때 맞닥뜨렸던 찬 바람이 아직도 선하다. 우리나라에서 11월 26일 출국해 12월 2일에 남극에 도착했는데, 사실 이때는 남극은 가장 더울 때였지만 한국의 추운 겨울보다 더 찬 바람이 불어서 놀랐다. 세종기지로 가는 길에도 놀라운 광경은 많았다. 칠레 최남단 푼타 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3시간 가량 타고 칠레 프레이기지에 도착하면, 고무보트를 이용해 30분 정도 바다를 건너 세종기지에 도착하게 된다. 바다를 건너는 동안 펭귄 무리들이 마치 날치나 돌고래처럼 수면위를 빠르게 헤엄치며 뛰어 다니고 커다란 유빙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 남극세종기지 전경(1번이 의무실이 있는 생활관이다.)

sunsu : 남극의 치명적인 매력이라면? 또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점이 만을 것 같다.조경훈 : 무엇보다 한국과는 이질적으로 다른 자연환경이 매력이다.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하만 지의류와 선태류 등이 있어 눈이 녹아 바닥이 드러나면 마치 푸른 잔디의 초원이 펼쳐진 것과 같이 보인다. 눈바람이 몰아쳐 한치앞의 사물도 구분할 수 없는 순백의 세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 외부활동이 금지된다. 다른 외국기지에서는 한 대원이 기지 5미터 앞에 나갔다가 결국 방향을 잃어 돌아오지 못하고 동사한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블리자드가 오면 며칠 동안 생활관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답답한 기간이다.

 조경훈씨가 주로 근무하는 기지 내 의무실.

sunsu : 지구가 녹는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기운이 느껴지나?

조경훈 : 세종기지에서는 지구가 더워하는 것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세종기지에서 보이는 ‘마리안소만’이라고 하는 곳에 거대한 빙벽이 있는데 그 빙벽이 매년 점점 더 뒤로 후퇴해 이제는 저 멀리 보인다. 지구 기온이 오르면서 만년 빙벽이 녹아 부셔져 육지 쪽 깊숙히 밀려나고 있는 거다.

sunsu : 기지의 의료시설은 잘 갖춰진 편인가? 다른 기지의 의료시설과 비교하면?

조경훈 : 아무래도 한국의 다른 병원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주변의 다른 기지들에 비해서는 좋은 편이다. 주변의 기지 중 칠레 프레이기지의 의료시설이 가장 좋다. 수술실도 구비돼 있어 필요한 경우 비행기를 통해 칠레 본토로 위급 환자를 수송할 수 있다.

sunsu : 아직 생활한 지 몇달 안됐겠지만 응급상황도 몇 번 경험했을 것 같다. 조경훈 : 아직까지 다행이도 응급상황이라고 할 정도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주방장이 기름에 손을 데어 2도 화상을 입은 사건 정도? 하지만 바로 전 기수인 24차 가간에 한 대원이 높은 곳에서 일을 하다 추락해 양쪽 발꿈치 골절상을 입은 적도 있단다. 그런 경우 헬기를 이용해 칠레기지로 수송한 다음, 다시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의 규모가 큰 병원에서 우선적으로 처치하도록 한다.

sunsu : 월동대원들에게는 어떤 질환이 많이 나타나는가?  조경훈 : 남극에 근무하게 되는 월동대원은 사전에 한국에서 철저히 건강 검진을 하고 온다. 남극에서 갑자기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낮추는거다. 대원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질환은 역시 소화불량, 속쓰림 등의 내과 질환과 염좌나 근육통 등의 정형외과적인 질환이다. 남극에서는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피부의 화상 및 각막염이 발생할 수 있다.

sunsu :  의대를 졸업하고 공보의를 지원했고, 세종기지를 지원해서 갔다. 의사로서 무엇을 꿈꾸고 있나?

조경훈 : 고 이태석 신부처럼 고귀한 희생정신의 삶을 살고 싶다. 절대로 그분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조금이나마 희생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나중에 어려운 환자를 위한 의료봉사를 꾸준히 하고 싶다. 지금 일하고 있는 세종기지의 경우도 지구의 기후 및 생태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의료 활동을 한다는 데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다.

sunsu : 기지 안에서 지내다보면 스트레스와 고독도 만만찮을 것 같다.

 이웃 칠레기지 대원들과 함께.

조경훈 : 대원들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장이 마련돼 있다. 그밖에 당구대, 탁구대, 심지어 스크린 골프시설도 있다. 여가 시간에 대원들끼리 체육관에서 다같이 족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하며 고독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휴게실에서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우린 그곳을 세종극장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영상통화라는 때가 제일 좋다.

sunsu : 곧 인턴제가 폐지되는데, 소식은 들었나?

조경훈 : 현재 공보의 3년차니까 아직까지는 한국에 가면 기존 인턴제 적용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제도가 나오면 몇년 간은 혼란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고 있다. 적어도 통합해 내과계, 외과계 NR제도를 만든다면 모든 과를 전반적으로 다 배우게 된다는 장점이 있어 보다 시야가 넓은 의사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unsu : 세종기지 대원을 꿈꾸는 의대생이나 수련의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조경훈 : 세종기지행을 적극 추천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생활에서 의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권위의식은 금물이다. 이곳 대원들과 하나되어 페인트칠, 창고 정리, 자재창고 제작 등 거의 중노동(?)도 해야한다. 어찌보면 용접까지 척척 해내게 되는 신기한 의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주방대원을 도와 음식준비를 하다면, 요리실력까지 겸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개발도 가능하다. 현재 여기는 매년 1명의 공보의를 뽑고 있지만 이번에 장보고기지라는 새 기지가 착공되면 채용인원이 늘 것이다. 장보고기지는 응급상황이 생기면 기지 내에서 모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 외과를 뽑을 것 같다. 또 수술실을 가동하려면 적어도 의사 2명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앞으로 남극행을 택하는 의사들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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