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전문의 부족한 병원 인력구조·의료전달체계 부재·공공의료체계 부실
정부가 마련한 비상진료체계 실효성 기대하기 힘들어
의대정원 확대 이전에 구조적 문제 개선 선행됐어야

[라포르시안] 오늘(20일) 새벽을 기해 수도권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과 함께 사실상의 진료 거부에 들어갔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해서다. 전국에 있는 다른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이 잇따라 사직서를 내고 근무를 중단하고 있다. 

이미 지난주부터 대형병원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비해 수술 취소와 입원 연기, 외래진료 축소 등의 조치를 취했왔다. 어쨋든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간 갈등이 지속되고 강대강 대결로 서로를 압박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의료공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에 대비해 비상진료체계를 세웠다. 의료법 제59조제1항에 근거해 진료유지를 명령하고, 공공병원 진료시간 확대, 비대면진료 확대, PA 간호인력 적극 활용 등의 대응 방안을 수립했다. 

의사 집단행동 때마다 한국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명징(明澄)'하게 '직조(織造)'해낸 것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의료체계의 부조리한 측면과 구조적 문제를 명징(明徵)해낸다.

우선 전공의 노동력이 의료공급시스템에서 갖는 영향력이다. 국내 의사면허자 수는 12만명을 넘어 13만명에 육박한다. 이 중에서 전공의는 1만 3000명 정도로 그 비중이 높지 않다. 그런데 전체 전공의 중에서 50% 이상만 근무 중단에 들어가도 대형병원 의료시스템이 금방 과부하에 걸린다. 

국내 주요 대형병원 소속 의사 가운데 레지던트와 인턴 등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30~4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만 2700명이 넘는다. 

그만큼 대형병원들이 인건비가 싼 전공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진료시스템이라는 방증이다. 대형병원이 인건비가 싸고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전공의 인력을 기반으로 병상 규모확대, 분원 설립 등의 몸집 키우기를 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공의 노동력 갈아넣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형병원 구조도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 때문에 전공의가 집단행동에 나서면 나머지 교수들로 진료공백을 메우기 벅차다. 특히 전공의 업무 비중이 큰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응급실은 대체인력 확보가 불가능해 며칠 못 가서 대란 수준의 진료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의대정원 확대와 함께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인력 구조를 개선하는 내용도 포함시켰지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건비 증가와 건강보험 수가 구조가 맞물려 있다. 전문의 채용을 늘려 전공의 업무 비중을 줄인다는 단순한 접근법은 정책으로 유효성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2021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다음으로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에 대비한 비상진료체계로 제시한 대책이 곧 국내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들춰낸다.  

정부는 전공의 진료 중단에 대응해 PA 간호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최근 전공의 등이 집단행동에 나서 진료차질이 빚어지면 PA 간호사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대응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 간호사는 한국의료에서 유령과 같은 존재다. 이들은 수술실에서 의료법에 규정된 업무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하며, 전공의를 대체하는 역할을 강요받으며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상에 모호하게 발을 걸치고 있다. 이들은 병원의 인력집계에서 제외된다. 현행 의료법상 병원 내에 존재할 수 없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산이나 기록, 차트 어디에도 남지 않는 사람이다. 병원이 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병원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일을 시키기 위해 법을 피하고자 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현장 좌담회에 참석한 PA 간호사 증언 중에서>

국내 대부분 국립대와 사립대병원에서 1000명이 넘는 PA가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이 없으면 병원 내 외과쪽 일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구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의료체계 내에서 PA 인력 활용과 전공의 수련 간 갈등이 불거졌고, 의료인력 간 업무범위를 둘러싼 직역 갈등도 커졌다. 

정부는 작년 6월부터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PA 간호사 운영체계와 업무범위 명확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선 협의체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의료인 간 업무범위 조정이 예민하고 첨예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또 병원들이 필요한 의사인력을 충분히 확충하지 못하고 PA 인력을 활용하는 꼼수를 활용하는 상황 자체가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집단행동 대응책으로  PA 간호사 적극 활용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문제를 문제로 부조리를 부조리로 덮는 발상일 뿐이다. 

결국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19일 공식적으로 의사 집단행동과 관련한 의료공백을 대비한 PA 간호사 활용에 대해 정부와 동의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련 비상진료체계에서 PA 간호사 활용 방안을 제외했다. 

정부는 또 비상진료대책의 일환으로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필수 진료기능 유지를 위해, 신속한 현장 이송 및 전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방청과 협의해 꼭 필요한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중증도에 따른 환자 배정을 위한 이송지침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대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앞서부터 대형병원 응급실로 환자 중증도와 상관없이 환자쏠림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작년에도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중증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 요구가 쏟아졌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과 개선 방안을 계속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의사 집단행동 시점에서 신속한 현장 이송과 전원 시스템이 가동될 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의료전달체계 부재는 의료현장의 혼란을 더욱 부추길 게 자명하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대형병원 진료차질이 우려되자 지방의료원,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 등 공공보건의료기관 중심으로 평일 진료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과 공휴일 진료를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공병원 운영 시간을 확대하더라도 중증·응급 환자를 치료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게다가 지방의료원은 지난 코로나19 유행 때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했지만 엔데믹 이후 환자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전담병상을 운영하던 시기에 의료진 이탈이 크게 늘었고 이후 다시 의사인력을 확충하지 못해 휴진하는 진료과도 많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대형병원 의료공백에 따른 중증·응급 환자를 지방의료원이 감당한다는 것은 벅차 일이다. 전체 의료공급체계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병상 기준으로 10% 정도에 불과하다. 경쟁력 있는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질 않고 제기됐지만 대부분의 정권에서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공공병원 확충에 반짝 관심을 보이는 척하다가 위기가 지나면 다시 제자리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 정책이 전문한 정권이기도 하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정책 추진 이전에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게 선행됐어야 했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의사인력 자체의 고령화도 심각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의사인력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의사인력 수급 문제에 앞서 의료체계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한 정책을 밀어붙이니 의료대란은 불가피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니 해결은 난망이다.   

4월 총선까지 앞둔 상황에서 '2025학년도부터 의대정원 2000명 확대'를 추진한다고 선언했으니 정치를 통한 사회적 갈등 중재와 해소를 기대하기는 물 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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