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내원 2명중 1명은 경증환자...응급실 과밀화 여전
비응급환자에 응급실 의료자원 투입...중증환자 골든타임 놓쳐
경증환자 분산할 수 있는 의료체계 마련 절실

[라포르시안] 중증 응급환자가 적절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중증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특히 경증 환자의 응급실 쏠림현상을 해결하지 않고선 열악한 응급실 의료자원으로 중증 응급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나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없는 국내 의료전달체계에서 경증환자의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고민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에서 각각의 역할이 모호한 응급의료 시설 체계를 중증·중등증·경증 응급의료기관으로 기능을 명확히 하는 개편안을 내놨다. <관련 기사: 응급의료기관 '중증-중등증-경증' 중증도 따라 기능·명칭 바꾼다>

복지부는 지정기준 개선과 함께 중증도를 기준으로 단계별 응급의료기관의 진료기능을 명확히 정립해 한정된 의료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점진적으로 정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비응급 환자의 응급의료기관 이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관련 기사: 중증외상환자 56% '골든타임' 지나 응급실 도착...이송시간 점점 길어져>

복지부는 비응급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 감소를 유도하기 위해 중증도에 맞는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중증응급환자 우선 원칙’에 대한 홍보도 강화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비응급환자가 응급실 접수 시 다른 적정 의료기관의 이용을 안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높은 본인부담금을 정하고 이에 대한 사전동의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의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 중 발췌.
복지부의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 중 발췌.

하지만 복지부의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은 기존 응급의료기본계획의 되풀이일뿐 문제 해결의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지적이다.

대한뇌졸중학회 김태정 홍보이사는 “전체 응급실 방문 환자 중에서 중증 환자는 7%밖에 되지 않는다. 50% 이상이 경증 환자이고, 70%가 걸어서 응급실을 방문한다”라며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넘쳐서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필수 중증 환자는 치료를 못 받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태정 이사는 “복지부의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20년 이상 반복되고 있다”라며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하나하나 비교해보니 3차 때와 90% 이상 똑같았다”고 지적했다.

뇌졸중학회 이경복 정책이사는 경증환자 응급의료센터 과밀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이경복 이사는 응급실 과밀화 해법을 묻는 라포르시안의 질문에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가 경증 환자로 과밀화되는 것은 국민이 대형병원과 대형센터를 방문하고 싶은 니즈 때문이라 제한하기가 어렵다”며 “현재로선 사실상 대책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지부의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줄이고자 하는 대책이 하나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답했다.

이경복 이사는 “예를 들어 권역응급의료센터 병상의 일부는 중증을 대상으로 비워놓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런 부분부터 시작해서 점차 계몽하고 계도해야 한다. 경증환자가 중증 병상을 다 차지했을 때 정말 급한 중증 응급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국가가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로 경증 환자가 몰리는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사진출처:한림대성심병원 홈페이지>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사진출처:한림대성심병원 홈페이지>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상급병원의 경증환자 과밀화 문제는 30년 이상 해결이 안 됐던 문제”라며 “사실상 정책적으로 유도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국민이 원할 때 어디서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처음부터 허들을 없앤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형민 회장의 설명이다.

경증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상급병원 응급실에 오는 경증 환자들의 경우 외래를 기다리기 싫어 응급실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갈 곳이 없어서 오는 환자들도 많다”라며 “그러다보니 응급실 과밀화 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부담금을 올려서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복지부 계획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비용을 올려서 의료이룔 허들을 만들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고, 그렇게 될 수도 없고 저항도 심할 것"이라며 "오히려 일차의료기관 등 낮은 단위의 병원들이 경증 응급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이 분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어전트 케어 클리닉’(Urgent care clinic)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형민 회장에 따르면 미국은 어전트 케어 클리닉이 전국적으로 1만 곳 정도로, 개인의원과 응급실의 중간 역할을 대부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응급의학의사회에서 어전트 케어 클리닉이 응급실 경증환자 과밀화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보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의원을 개업해 경증 응급환자들을 봐주는 방식으로, 이미 경기도권에 다수 운영 중이다.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는 응급실로 가던 경증 환자들이 어전트 케어 클리닉을 찾고 있다”고 했다.

경증 환자를 지역 일차의료기관에서 진료하기 위해선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정부의 별도 재정이 지속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경증 환자들이 일차의료기관에서 소외 당하는 이유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경증 응급환자만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없어서”라며 “경증의 일차적인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 재정이 지속 투입돼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총액이 정해져 있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수가로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응급이라는 개념은 건보 테두리 안에서만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적인 측면이 있지만 민간에 대부분 위탁을 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건강보험 이상의 보전책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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