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과 사회안전을 위한 의료기관 마약 관리 강화방안 토론회 열려
병원약사회 “마약류 관리료서 마약 수가 분리·적정 가산 절실”

[라포르시안] “병원 약사의 마약류 관리업무는 끊임없이 산 위로 돌을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마약류 관리 전담인력에 대한 기준은 없는 상황에서 병원 약사 혼자 입원환자 몇백명의 약을 조제하고 관리하고 복약지도를 하는데, 마약류 관리까지 해야한다면 어느 약사가 병원에 있겠나.”

한국병원약사회 정경주 부회장(용인세브란스병원 약제팀장)은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환자안전과 사회안전을 위한 의료기관 마약 관리 강화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의료기관 내 마약류관리자로서 병원 약사들의 심정을 이같이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병원약사회가 주관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서정숙 의원은 “마약 청정국을 자부하던 우리나라는 현재 연예인 마약 스캔들부터 대학가의 마약광고 명함까지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1만 2,387명의 마약사범이 검거돼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할 만큼 마약중독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제 마약류 안전 사용과 관리 강화 문제는 의사나 약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와 정부, 환자,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과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병원약사회 김정태 회장.
병원약사회 김정태 회장.

병원약사회 김정태 회장은 “의료기관에서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용 마약류 사용은 필수적이고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나 의료용 마약류 사용량 증가에 비례해 여러 문제점도 발생했다”며 “마약류 오남용과 불법투여, 임의 폐기, 불법유통과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마약 투약 등으로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은 최대 이슈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마약은 향정신성의약품보다 관리 항목이 많고 행정처분도 강력해 병원 약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며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도입 이후 마약류 안전사용 기준 모니터링 등 기관 내 안전관리 활동은 더욱 확대되고 있으나 전담 인력은 없고 수가 보상은 미미하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발제자로 나선 병원약사회 정경주 부회장은 국내 의료기관 마약 관리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정경주 부회장은 “의료기관 내 마약류 취급자는 마약류관리자와 마약류 취급 의료업자가 대표적인데, 마약류관리자는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약사로 환자에게 투약하는 마약류 관리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며 “마약류관리자가 있는 의료기관은 관리 책임의 주체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의약품 관리와 사용을 위한 기본 요건이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률 상 모든 마약류 의약품 투여 기관이 마약류관리자를 두지 않아도 되는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4명 이상의 마약류 취급 의료업자가 종사하는 의료기관은 필수적으로 마약류관리자를 지정토록 돼 있으며, 향정신성의약품만 취급하는 의료기관은 마약류관리자를 두지 않아도 된다. 마약류 처방 수나 취급량에 따른 규정이 없어서 아무리 마약을 많이 사용하는 의료기관일지라도 마약류관리자를 1명만 둬도 무방하다.

정 부회장은 “문제는 마약류관리자의 업무가 매우 많다는 점이다. 마약류 관리자는 구입부터 폐기까지 의료기관 내 마약 취급에 관련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많은 약사 인력, 높은 긴장도를 요한다”며 “특히 마약류 관리 점검 항목만 21가지에 이른다”고 전했다.

마약이 향정약에 비해 업무의 난이도가 높고 단계별 소요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마약이 향정에 비해 행정 절차나 관리 강도에 차이가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행정처분의 경중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소지한 재고량과 보고된 재고량이 차이가 발생한 1차 위반의 경우, 향정은 경고 또는 사용량에 따라 1개월 정무정지인 반면, 마약은 업무정지 3개월이라는 중한 처분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이 도입되면서 마약류 취급 패러다임이 바꼈다고 했다.

정경주 부회장은 “예전에는 상세한 마약류 처방 사용 데이터를 각 의료기관 밖에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NIMS 도입 후 의료기관별 약품 사용 이력나 환자 개인별 마약 투약 이력을 광범위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며 “NIMS의 마약류 처방 사용 데이터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불법 사용, 명의 도용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통제로 처방한 펜타닐이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오남용에 사용되고, 최근 이슈가 됐던 의사의 마약류 셀프 처방은 상상조차 못할 대량의 처방이 오남용됐다”며 “특히, 중증의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이 아닌 개원가에서 마약류를 가장 많이 처방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이 밖에 의료용 마약물 쇼핑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고, 효능 중복 처방이 70%에 달한다는 점 등이 밝혀졌다”며 NIMS 도입 이후 확인된 상황을 전했다.

병원약사회 정경주 부회장.
병원약사회 정경주 부회장.

마약류 관리와 관련한 법과 제도 미비로 병원 약사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갈수록 많아지는 기준과 규제, 책임만 무거운 마약 관련 업무를 방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병원 약사들은 마약과 씨름을 하고 있다”며 "외래환자 방문당 160원, 입원환자 일당 230원의 마약류 관리료뿐, 의무만 무겁지만 권한은 없는 것이 마약류 관리자의 무게이다. 전체 마약류 관리료 중 마약류 업무 수행 인건비 보상률은 6%대에 그치고 있어 마약류 관리 전담 인력과 합당한 수가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약사 정원은 조제와 복약상담 등 기초 업무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만 규정하고 있고, 마약류 관리 전담인력에 대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지적이다.

정 부회장은 “100병상 이하의 병원은 주당 16시간 이상의 시간제 근무약사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주 16시간 근무로는 의료기관의 적절한 마약류 관리가 불가능하다”며 “한 명의 약사가 입원환자 몇백 명의 약품을 조제 및 관리, 복약 지도를 하고, 복잡다단한 마약류 관련 업무까지 해야 한다면 어떤 약사가 이 업무를 하겠다고 병원에 지원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의료기관 약사 인력 관련 연구에 따르면 근무 약사의 10% 가까이 마약 관련 업무를 하고 있고, 이 비율은 병상 수가 적을수록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며 “작은 의료기관일수록 약사 수도 부족한데 마약류 관리에 따른 과중한 부담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 마약류 관리를 위해 마약류관리자가 필요한 의료기관의 범위를 재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그는 “현행법상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4인 이상인 의료기관만 마약류관리자 지정이 필요하나, NIMS 도입 이후 의료기관의 마약류 실사용량 정보가 확보된 만큼, 마약류 처방 환자 수 및 처방량을 기준으로 마약류관리자 필수 의료기관 범위를 지정해야 한다”며 “약사 법정 정원과 별로도 마약류 관리 필수인력을 지정하는 기준이 필요하고, 마약류관리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의료기관 내 마약 관리 표준 절차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현행 마약류관리료에서 마약을 분리하고 수가를 가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 부회장은 “마약은 향정 대비 업무 소요시간, 강도, 행정 부담, 위험도가 높은 업무지만 보상은 향정과 동일해 마약관리의 질 향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일본의 마약지도료를 살펴보면 지난 2022년 기준 마약이 700엔으로 향정 80엔에 비해 약 9배 높게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점점 고도화되는 마약 관리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전에 의료기관 내 마약류 관리료에서 수가 분리 및 적정 가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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