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 담당)

[라포르시안] 필자는 약 10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청진기가 사라진다’의 저자 에릭 토폴(Eric J Topol)과 온라인 의료·원격진료 등을 통칭하는 ‘원격의료’(Telemedicine)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에릭 토폴은 한국이 전 세계 원격의료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미국보다 원격의료의 발전 가능성이 더 크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은 IT 및 의료기술 발전이 빠르고, 특히 의료진의 경우 원격의료에 대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기술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원격의료와 관련해 기술자는 공학 중심으로만 생각할 뿐이며, 더욱이 의료진의 경우 특별한 관심이나 반응조차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인식 대전환이 이뤄졌다. 미국 북동부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해 11개 캠퍼스와 13개 병원을 운영하는 ‘가이싱어 헬스 시스템’(Geisinger Health System)은 팬데믹 초기 텔레헬스(Telehealth) 방문이 500% 증가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에서는 가상 병원을 방문하는 외래 환자 수가 코로나19 전·후 2%에서 80%로 급증했다. 가이싱어 헬스 시스템과 클리블랜드 클리닉 모두 코로나가 본격화된 2020년 봄 원격의료를 통한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성했다. 

특히 가이싱어 헬스 시스템과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기존 전통적인 원격의료 개념의 원격지 의사를 통한 진료 행위가 이뤄졌다면 워싱턴주에 있는 프로비던스 헬스(Providence Health)의 경우 비록 예진이긴 하지만 사람이 아닌 ‘챗봇’이 쏟아지는 질문을 응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프로비던스 헬스는 코로나 발생 첫 주 챗봇을 통해 7만 건이 로그인됐고, 100만 건 이상 메시지가 접수됐다. 단순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10~15배 사용량이 급증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원격의료는 전통적인 진료와 달리 그 진료량에 제한이 없다.

이처럼 코로나19는 미국 의료진의 무관심 대상이었던 원격의료에 대한 인식 전환을 가져온 변곡점이 됐다. 이제는 원격의료를 기존 개념에서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특히 헬스케어 분야의 디지털 전환은 금융·제조업·서비스업 등과 비교해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 효율성을 추구하는 타 산업과 달리 안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인력 등 심각한 의료자원 부족 현상을 체감한 만큼 향후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수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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