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2022년도 예산안에 공공병원 신축 예산 편성 안돼
"10% 불과한 공공병상으론 코로나19·건강불평등 구조 개선 엄두도 못내"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에서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둔 보건복지부 내년도 예산안에는 공공병원 신축 예산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한 인천의료원을 비롯해 서울의료원과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등의 공공병원이 감염병 재난 초기부터 코로나19 전담병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 공공병원은 기존 입원환자를 전원하거나 퇴원 조치한 후 병원 전체를 코로나19 경증환자 치료 공간으로 발빠르게 전환하면서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체 의료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한 공공병상이 코로나19 확진자의 80% 이상 감당하고 있다. 새로운 신종감염병 출현 등에 대비해서 공공의료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 책임을 방기하고 공공병원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면서 노동력 갈아넣기로 'K-방역' 구멍을 메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어서면서 '초슈퍼예산'이라는 불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이를 잘 보여준다.

보건복지부(장관 권덕철)는 지난 31일 2022년 예산(안)을 2021년 대비 8.2% 증가한 96조 9,377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복지부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보건 분야 예산으로 총 16조1206억원을 편성해 올해 예산 13조7988억원보다 2조3218억원(16.8%)이 증액됐다. 이 중에서 건강보험에 국고지원하는 11조8242억원을 제외한 순수 보건의료 예산은 4조2964억원이다. 그나마 올해 보건의료 예산 3조300억원과 비교해 1조2664억원(41.8%)이 증액된 셈이다.  

내년도 보건의료 예산 항목에서 공공병원 신축 관련 편성은 전무하다. 공공의료 확충 관련 예산은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명분으로 1657억원이 전부다. 

복지부는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올해 35개소에서 내년에 43개소로 확충하고, 지방의료원 대상 시설·장비 보강 및 ICT를 활용해 감염병 대응, 병원운영 효율성 등을 제고하는 스마트병원 확충(신규 3개소)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에 신축을 추진하거나 신축한 공공병원 관련 예비타당성조사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300~500병상 규모 병원은 병상당 비용이 대략 5억원 정도였다. 약 300~500병상 규모 공공병원을 신축하는 1,500억~2,500억원 정도 드는 것을 나타났다.

고속도로 공사와 비교하면 4~7km 정도 도로를 까는 데 드는 사업비로 300~500병상 규모 공공병원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600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 규모에 보건복지 분야 예산만 100조원에 육박하는 국가에서 무리한 정책 시행은 아닐테지만,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극적이다. <관련 기사: 4~7km 건설공사비면..."고속도로만 깔지 말고 공공병원도 세우자">

보건의료노조 소속 공공병원노동자들이 지난 8월 19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농성장을 설치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 소속 공공병원노동자들이 지난 8월 19일 세종시 기획재정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농성장을 설치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이런 가운데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교섭에서 정부를 향해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8대 핵심사항을 요구하며 9월 2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조는 특히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로 ▲감염병전문병원 조속한 설립,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기준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과 공익적 적자 해소 등을 제시했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 소속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지난 19일 기재부 앞에서 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코로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여온 공공의료 노동자는 그 누구보다 더 공공의료가 더욱 확충되어야 할 필요성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며 "단 10% 공공의료로는 코로나19는 물론 건강불평등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떠한 계기도 마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 각 지자체에서도 지역공공의료 인프라와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달 26일 세종에서 제48차 회의를 열고 '지역공공의료 인프라와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한 바 있다. 

시도지사협의회는 ""모든 국민은 언제 어디서나 질 좋은 필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의 공공의료 현실은 국민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안심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책임의료기관 역할을 담당하는 지방의료원은 응급, 외상, 심뇌혈관, 고위험 산모, 감염병 및 만성질환 등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충분한 인프라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도지사협의회에 따르면 권역책임의료기관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은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원할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부족한 실정이다.

협의회는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 정부의 견고한 대책 수립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지역공공의료 인프라와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원을 대폭 신·증설해 공공병상을 확충하고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6월 2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확정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2025)'에 따르면 양질의 공공의료를 포괄적으로 제공할 적정 병원이 없는 경우 의료 여건 등을 고려해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을 20개소 이상 신·증축하는 내용을 담았다. 

20개소 이상 신증축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신축하는 공공병원은 3개뿐이고, 나머지는 너무 낡아서 어쩔 수 없이 이전·신축하는 수준으로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공공(空空)병원 돌려막기...빈껍데기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수립?>

시도지사협의회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20여개소의 공공병원 확충계획은 소극적 대안이므로 70개 중진료권마다 공공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공공의료원과 공공병상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전체 병상 비중에서 10%에 불과한 공공병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판데믹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공의료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또다른 신종감염병이 예고되고 있으며 기후위기로 산불, 홍수, 폭염 등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목전에 닥친 지금 공공병원 확충은 정말 시급하다"며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인력에 대한 보강과 지원도 충분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병원부터라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제도화해서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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