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보건의료인력 확충 요구...복지와 노정교섭서 성과 없어
정부 "재정상황과 제도개선 시간 등 고려할 때 단시간 해결 어려워"

보건의료노조 공공병원지부와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국립암센터, 보훈병원, 적십자병원·혈액원, 근로복지공단 병원, 한국원자력의학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시 산하 병원지부 등) 노동자들이 19일 오전 11시 세종시에 있는 기획재정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 공공병원지부와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국립암센터, 보훈병원, 적십자병원·혈액원, 근로복지공단 병원, 한국원자력의학원,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시 산하 병원지부 등) 노동자들이 19일 오전 11시 세종시에 있는 기획재정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라포르시안] 국공립병원과 민간 사립대병원 등을 포함한 전국보건의료노조 산하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 총파업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공공의료 및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핵심 안건으로 한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간 노정교섭에서 뚜렷한 진전이 보이질 않아 파업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앞서 앞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7일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 동시 쟁의조정신청에 돌입했다. 이후 오는 9월 2일 파업을 예고하면서 이달 18일부터 26일까지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총 조합원 5만 6091명 중 4만 5892명이 참여(투표율 81.82%)해 4만 1191명이 찬성하면서 89.76%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

코로나19 4차 유행이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산별총파업이란 카드를 내민 건 의료현장 상황이 더는 버틸 수 없을만큼 벼랑끝으로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지속한 1년 7개월 동안 전담병원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확진자 발생 규모에 따라 그때그때 부족한 인력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유행 확산세가 심해지면 정부는 치료병상 확보, 인력 확보 정책을 제시하지만 유행 위기가 한풀 꺾이면 문제를 덮고 넘어가면서 의료현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방치한 채 민간파견인력을 배치하는 임시방편 대책만 되풀이해 왔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공공병원 의료진은 4차례에 걸친 유행 기간 동안 소진에 탈진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간호사 등 많은 보건의료 노동자가 이직과 사직으로 병원을 떠났다. 

특히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하는 공공병원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총액인건비 제한을 이유로 의료인력 처우개선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방치하고, 부족한 의료인력을 충원해야 할 정원을 틀어막고 있어 의료인력 처우개선과 인력확충이 이뤄지지 못한 채 '노동력 갈아넣기'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해 보훈병원과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한국원자력의학원, 적십자병원,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 등은 코로나19 유행 장기화 속에서 확진자 치료를 위한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했지만 여기에 근무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정당한 보상은커녕 오히려 차별만 받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코로나19 간호사 수당(야간간호관리료)을 마련했지만 정부가 정해놓은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총액인건비가 넘어선다는 이유로 보훈병원과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에서는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보건의료노조는 9월 2일 전까지 정부가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확충 요구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전면 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노정교섭에서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8대 핵심사항을 요구했다.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로는 ▲감염병전문병원 조속한 설립,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기준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과 공익적 적자 해소 등이다.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개선 5대 요구로는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및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전면 확대 ▲5대 불법의료(대리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근절 ▲의료기관 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위한 평가기준 강화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을 제시했다.

노조는 지난 26일 복지부와 11차 노정 실무교섭에 이어 지난 30일 오후부터 오늘(31일) 새벽까지 마라톤 교섭을 이어갔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의료노조는 "실무교섭에서 핵심 요구사항인 공공의료 강화 및 감염병 대응 관련해 재정당국에 막혀 진전이 없었고,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관련해서는 의사단체 눈치보기 등 복지부의 소극적 태도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며 "파업이 예고된 9월 2일 전까지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는가에 따라 코로나19 최전선 보건의료노동자 전면 파업은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사전에 극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환자, 보호자, 시민을 향해서도 지지와 관심을 호소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죽하면 보건의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가 파업하겠다고 결심했을까 헤아려주십시오"라며 "지금 우리에게는 박수받는 영웅보다 함께 어깨를 기대고 일할 단 한명의 동료가 더 절실합니다. 고맙다는 격려와 희생과 헌신에 대한 박수는 감사한 일이지만 이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지해주시고 연대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한편 김부겸 국무총리는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는 최선을 다해 협의에 참여하고 있고 마지막까지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아직 상황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파업이 현실화될 수 있어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그동안 거듭된 노정협의를 통해 근무여건 개선 등 일부 쟁점은 이견을 좁혀가고 있지만 대규모 재정이 수반되거나 중장기적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은 여전히 입장 차이가 있다"며 "정부도 공공의료 투자 확대와 함께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확충이 필요하다는 노조측 주장에 공감하고 있지만 재정상황과 제도개선에 필요한 시간 등을 고려할 때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보건의료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의료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하겠다"며 "복지부와 지자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건강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비상진료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오늘 오전 11시20분경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관련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