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조례로 의료법 무력화 가능...시민단체, 특검에 '뇌물죄'로 수사 촉구

2015년 10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2015년 10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라포르시안] 전국 14개 시·도에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프리존'을 지정해 육성한다는 정책 방안이 처음 등장한 건 2015년 10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리였다.

그리고 2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1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자리에서 정부가 마련한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이 보고됐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프리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창조경제시대에 부합하고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경제 발전모델로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지역이 전략산업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안하는 규제특례를 중앙정부가 일괄 해소하는 상시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규제프리존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정부가 정책방안을 수립한 지 3개월 만에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추진됐다. 지난해 3월 말 당시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 대표발의로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2016년 5월 19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규제프리존법 추진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해 5월 30일, 새누리당 차원에서 경제활성화 법안이란 명목으로 '규제프리존 특별법'(이학재 의원 대표발의)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제출되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 등 선진국은 규제개혁을 통해 도시와 지역의 산업과 경제를 일으키고 이를 국가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과감한 규제 특례와 네거티브 규제 혁신 시스템을 적용하는 규제프리존을 조속히 도입해 신기술과 융‧복합을 통해 지역전략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특별법 처리를 촉구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뭐길래 이렇게 요란을 떨며 입법을 서두를까. 국회에 제출된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황당할 지경이다.

특별법안 제3조(다른 법령과의 관계)에는 '이 법은 규제프리존에 적용되는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경우 다른 법령보다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지자체에서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특례를 담은 조례를 만들 경우 이 법에 근거해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의료법상 규정된 부대사업 범위를 지자체의 조례 제개정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특별법안 제43조(의료법에 관한 특례)에는 규제프리존 내 지역전략산업과 관련해 의료법상 규정된 부대사업 외에도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특별법안 제4조(원칙허용 예외금지 규정 등)는 규제프리존에 한해 '네거티브' 방식의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4조 제1항은 '규제프리존에서는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 또는 금지사항을 제외하고는 지역전략산업 및 이와 관련된 사업 등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제2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프리존 내 지역전략산업 및 이와 관련된 사업 등에 대한 해당 법령을 운영·집행하는 경우 규정이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사업 등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 놓았다.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제외하고, 관련 규정이 없거나 불명확한 모든 사업을 포괄적으로 허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법안은 규제특례를 지자체 단위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개별기업 단위로 적용하는 '기업실증특례' 규정도 담고 있다. 기업실증특례제도란 신규 사업을 개시하는 사업자가 특례조치를 제안하면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기업 단위로 규제의 특례조치 적용을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경북 지역에서 의료기기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데 현행법상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이 힘들다고 판단하면 기업실증특례 신청을 통해서 개별기업 차원의 규제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심의 중이지만 여야 위원들간 입장차가 큰 편이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재위는 2월 임시국회에서 규제프리존법 축조심의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특검 고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특검 고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러나 이 법안의 처리가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박영수 특검팀에 규제프리존법안과 최순실 게이트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무상의료운동본부,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지난 23일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특검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비롯해 대기업 총수를 뇌물죄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에 박근혜가 재벌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할당하고, 돈을 받았다"며 "박근혜는 2015년 10월 7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규제프리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재벌들에게 미래전략사업에 가장 파격적인 특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재단에 돈을 낸 재벌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약속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규제프리존법이 대기업의 입금 대가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입금을 하자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주문하고 규제청정구역(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는 규제프리존법이 대기업 입금의 대가로 추진된 것으로 보여주며, 명백하게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특검을 향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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