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명칼럼
[치매이야기 - 13화] ‘리어왕·걸리버 여행기’ 속에 등장하는 치매양현덕(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 Brainwise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치매라는 진단명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예술인과 작가들은 현재라면 필시 치매로 진단되었을 사람들의 증상을 관찰하고 감명과 영감을 받아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술작품 속에 나타난 치매를 알아보고, 아울러 치매를 앓은 예술인들의 애환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익히 알려진 것처럼 셰익스피어는 인간 존재에 대해 탁월한 직관을 지닌 극작가, 영국의 문호이다. 역사와 비극을 다룬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어리석음에 관한 깊은 이해가 담겨있다. 

치매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2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는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1623년)’에서 사람의 생애를 아기, 학생, 연인, 군인, 법관, 노인, 그리고 2번째 어린이 등 7단계로 나누었다. 

극중에 나오는 제이퀴스(Jaques)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여 인간의 생명주기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기이하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어린아이 같음이며 망각하는 것이다. 치아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고, 입맛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리어왕(King Lear)= 리어왕은 1608년 발표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극중인물인 리어왕을 통해 치매의 증상에 관한 혜안과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거시 관점에서 한 사람의 치매로 인해 가정과 왕국이 어떻게 몰락해가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에 대한 위선이 왜 용서받기 어려운지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리어왕은 팔순이 되어 판단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노후보장을 전제로 왕국을 세 공주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통치능력이 기준이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큰 사랑을 약속하는 딸에게 가장 넓은 영토를 주겠노라고 선언한다. 치매증상으로 인해 엉뚱하고 불합리한 기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위로 두 딸은 서로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아첨을 일삼는다. 이와 달리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Cordelia)는 언니들의 탐욕이 역겨워 상속을 포기한다. 리어왕은 화가 치밀어 막내딸과 인연을 끊어버린다. 코델리아는 아버지를 교활한 두 언니의 손에 남겨둔 채 프랑스 왕과 결혼하여 고향을 떠난다. 상속을 마친 언니들은 리어왕을 학대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왕국에서 추방당한다. 이 소식에 코델리아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으나 전투에서 패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두 언니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싸우다가 큰 딸이 둘째 딸을 독살하고, 전투에서 남자가 죽자 본인도 나중에 자살하고 만다. 화려했던 왕국의 쇠망과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했던 막내딸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하게 된 리어왕도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이야기 속에서 리어왕은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비이성적인 사고양태를 보이며, 갑작스런 감정의 기복, 편집증, 환시, 수면장애, 손떨림,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현재의 진단기준으로 볼 때, 루이소체치매(Lewy body dementia)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 루이소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루이소체 치매는 인지기능의 심한 기복, 파킨슨병의 증상, 환시 등을 주 증상으로 하는 치매로서, 신경퇴행성질환에 의한 치매 중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다. 신경이완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피해망상과 수면장애(꿈을 꾸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꿈의 내용대로 움직이는 증상) 등이 흔하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조나단 스위프트는 1667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 Ireland)에서 출생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Basilica)의 사제로 일하면서 당시 영국의 식민정책에 수탈당하는 모국 아일랜드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강압과 착취 문제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를 통하여 파헤친 작품이다. 고령에서의 인지와 성격 변화 역시 풍자적으로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걸리버는 3번째 여행에서 라그나그(Luggnagg)섬에서 영원히 사는(immortal) 스트럴드브러그(Struldbrugs) 종족을 만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정신도 멀쩡한데, 스트럴드브러그는 육체와 뇌가 늙어가며 우울하고 험악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걸리버는 그들의 불멸성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젊었을 때 배운 것 말고는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그나마 과거의 기억조차 이내 형편 없어진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와 친척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기억력이 허락하지 않아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도 없기에 책 읽는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결국 대화도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증상의 묘사는 스위프트가 치매환자를 관찰한 적이 있다는 증거다. 실제 스위프트를 키워 준 큰아버지는 노년에 심각한 기억장애를 보였다.

스트럴드브러그들이 보인 증상을 19세기에는 신경매독이라고 추정했고, 20세기 중반에는 혈관성 치매라고 진단했으며, 20세기 말에는 우울증, 성격변화 등을 근거로 전두측두엽치매의 하나인 픽병(Pick’s disease)으로 추정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기억장애와 언어장애 등에 중점을 두어 알츠하이머병에 가깝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발표한지 10년 뒤 60대 후반에 스위프트도 치매를 앓게 된다. 그의 증상은 기억장애, 언어장애, 성격변화, 청력저하, 안면마비 등 복합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소설 속에서 필시 기피하고픈 심정으로 묘사하였을 바로 그 질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2011년 7월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승무원이 도움을 요청한다. 환자에게 가보니 뇌졸중이 발생하여 의식이 혼미한 상태이다. 착륙을 4시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인천으로 순항 또는 러시아나 중국 심양에 비상 착륙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장은 선택을 나에게 위임한다. 러시아나 중국의 의료상황을 감안할 때, 환자가 다니던 한국 병원으로 가는 편이 가장 나으리란 판단으로 인천 직항을 결정한다.

도착지에서 의료진이 참고할 수 있도록 기록을 작성하던 중, 착륙 한 시간을 남겨두고 환자의 상태는 갑자기 악화되어 호흡이 곤란해진다. 기내 통로에 엎드려서 기도확보를 위한 기관삽입을 시행하고 통로 벽에 기댄 채 마스크로 인공호흡 조치를 하는 동안 비행기는 목적지에 착륙한다. 사전 연락이 취해진 공항 응급구조 팀에게 인계된 환자는 곧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이 일로, 가뜩이나 많은 생각을 하며 귀국하던 나는 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 전임강사로 일하던 시기에 도미를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한심한 영어실력을 보완하려고 2005년부터 원어민을 초빙하여 매일 새벽 연구실에서 영어를 배웠다. 기초의학부터 다시 복습해서 2006년 미국의사면허(USMLE) 취득요건을 충족했다. 그리고 2009년 겨울 행동신경학 및 신경정신학 펠로우 과정 인터뷰를 위해 보스턴으로 갔다. 면접과 발표에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지만, 그처럼 길게 느껴진 하루는 처음이었다. 내가 발표한 내용은 우리나라 치매의 현실과 알츠하이머 치료의 최근 추세였다. 그 뒤 몇 군데 대학병원과 서면 및 전화 인터뷰를 더 진행했다.

2010년 2월 매사추세츠종합병원/맥클레인병원(MGH/McLean Hospital) 프로그램 주임과장인 브루스 프라이스(Bruce H. Price) 교수가 내게 최종합격을 통지했다.

1811년 설립된 맥클레인 병원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제휴병원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육의 주축 의료기관으로서, 그 안에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신경과학 및 정신과 연구소가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임상전임의를 겸직하면서 나는 치매환자를 진료하는 데 절실한 인지행동과 신경정신에 관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도 안목을 틔울 수가 있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딱 하나, 프라이스 교수의 당부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치매로 고통 받는 환자를 잘 돌봐주라는 것이었다. 그의 도움에 힘입어 한국과 미국의 대학 의료기관들이 나를 위해 상호 양해각서를 체결하였고, 현지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할 수 있도록 내게 매사추세츠 주 의사면허증이 발급되었다.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나는 귀국했다. 치매를 전공한 신경과 의사로서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누구든, 그리고 언제든, 나와 인연을 맺는 치매환자들을 더 잘 진료하고, 또한 그들이 더욱 나은 환경에서 치료받아 완치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이 책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보다 많은 역사와 문학 속의 이야기를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그 욕심은 책의 개정판에서 조금 더 채우려 한다. <관련 기사: 국내 치매 환자 68만명…치매의 역사 다룬 책 나와>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의 영향인지 부모를 요양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현실적으로 가족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가족이 계속 직접 돌본다는 것은 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 받으면 평균 10년 정도 생존한다. 현재 치료제로 쓰이는 약제들의 검증된 효과는, 비록 치매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지는 못하지만 요양시설 이주 시기를 2년 정도 늦출 수 있다. 꺼져가는 숯불에 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그래도 가족과 한 집에 살 수 있는 시간이 2년이나 늘어난다는 것은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는 아니하리라.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초(楚)나라에 고어(皐魚)라는 자가 살았다. 그는 평소 배우기를 즐거워하여 천하를 두루 다녔는데,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자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멈춰주지 아니하고), 子欲養而親不待(자식은 봉양코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아니하네)”라고 슬퍼하며 울다가 죽었다고 한다. 공자가 이 고사를 제자들에게 전하자 감동하여 귀향해서 부모를 돌보는 이가 다수였다고 한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포르시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