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덕(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 Brainwise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치매라는 진단명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예술인과 작가들은 현재라면 필시 치매로 진단되었을 사람들의 증상을 관찰하고 감명과 영감을 받아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술작품 속에 나타난 치매를 알아보고, 아울러 치매를 앓은 예술인들의 애환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익히 알려진 것처럼 셰익스피어는 인간 존재에 대해 탁월한 직관을 지닌 극작가, 영국의 문호이다. 역사와 비극을 다룬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어리석음에 관한 깊은 이해가 담겨있다. 

치매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2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는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1623년)’에서 사람의 생애를 아기, 학생, 연인, 군인, 법관, 노인, 그리고 2번째 어린이 등 7단계로 나누었다. 

극중에 나오는 제이퀴스(Jaques)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여 인간의 생명주기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기이하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어린아이 같음이며 망각하는 것이다. 치아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고, 입맛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리어왕(King Lear)= 리어왕은 1608년 발표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극중인물인 리어왕을 통해 치매의 증상에 관한 혜안과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거시 관점에서 한 사람의 치매로 인해 가정과 왕국이 어떻게 몰락해가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에 대한 위선이 왜 용서받기 어려운지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리어왕은 팔순이 되어 판단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노후보장을 전제로 왕국을 세 공주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통치능력이 기준이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큰 사랑을 약속하는 딸에게 가장 넓은 영토를 주겠노라고 선언한다. 치매증상으로 인해 엉뚱하고 불합리한 기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위로 두 딸은 서로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아첨을 일삼는다. 이와 달리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Cordelia)는 언니들의 탐욕이 역겨워 상속을 포기한다. 리어왕은 화가 치밀어 막내딸과 인연을 끊어버린다. 코델리아는 아버지를 교활한 두 언니의 손에 남겨둔 채 프랑스 왕과 결혼하여 고향을 떠난다. 상속을 마친 언니들은 리어왕을 학대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왕국에서 추방당한다. 이 소식에 코델리아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으나 전투에서 패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두 언니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싸우다가 큰 딸이 둘째 딸을 독살하고, 전투에서 남자가 죽자 본인도 나중에 자살하고 만다. 화려했던 왕국의 쇠망과 아버지를 참으로 사랑했던 막내딸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하게 된 리어왕도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이야기 속에서 리어왕은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비이성적인 사고양태를 보이며, 갑작스런 감정의 기복, 편집증, 환시, 수면장애, 손떨림,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현재의 진단기준으로 볼 때, 루이소체치매(Lewy body dementia)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 루이소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루이소체 치매는 인지기능의 심한 기복, 파킨슨병의 증상, 환시 등을 주 증상으로 하는 치매로서, 신경퇴행성질환에 의한 치매 중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다. 신경이완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피해망상과 수면장애(꿈을 꾸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꿈의 내용대로 움직이는 증상) 등이 흔하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조나단 스위프트는 1667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 Ireland)에서 출생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Basilica)의 사제로 일하면서 당시 영국의 식민정책에 수탈당하는 모국 아일랜드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강압과 착취 문제를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를 통하여 파헤친 작품이다. 고령에서의 인지와 성격 변화 역시 풍자적으로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걸리버는 3번째 여행에서 라그나그(Luggnagg)섬에서 영원히 사는(immortal) 스트럴드브러그(Struldbrugs) 종족을 만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정신도 멀쩡한데, 스트럴드브러그는 육체와 뇌가 늙어가며 우울하고 험악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걸리버는 그들의 불멸성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젊었을 때 배운 것 말고는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그나마 과거의 기억조차 이내 형편 없어진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와 친척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기억력이 허락하지 않아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도 없기에 책 읽는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결국 대화도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증상의 묘사는 스위프트가 치매환자를 관찰한 적이 있다는 증거다. 실제 스위프트를 키워 준 큰아버지는 노년에 심각한 기억장애를 보였다.

스트럴드브러그들이 보인 증상을 19세기에는 신경매독이라고 추정했고, 20세기 중반에는 혈관성 치매라고 진단했으며, 20세기 말에는 우울증, 성격변화 등을 근거로 전두측두엽치매의 하나인 픽병(Pick’s disease)으로 추정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기억장애와 언어장애 등에 중점을 두어 알츠하이머병에 가깝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발표한지 10년 뒤 60대 후반에 스위프트도 치매를 앓게 된다. 그의 증상은 기억장애, 언어장애, 성격변화, 청력저하, 안면마비 등 복합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소설 속에서 필시 기피하고픈 심정으로 묘사하였을 바로 그 질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수련을 마치고 나는 귀국했다. 치매를 전공한 신경과 의사로서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누구든, 그리고 언제든, 나와 인연을 맺는 치매환자들을 더 잘 진료하고, 또한 그들이 더욱 나은 환경에서 치료받아 완치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이 책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보다 많은 역사와 문학 속의 이야기를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그 욕심은 책의 개정판에서 조금 더 채우려 한다. <관련 기사: 국내 치매 환자 68만명…치매의 역사 다룬 책 나와>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의 영향인지 부모를 요양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현실적으로 가족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가족이 계속 직접 돌본다는 것은 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 받으면 평균 10년 정도 생존한다. 현재 치료제로 쓰이는 약제들의 검증된 효과는, 비록 치매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지는 못하지만 요양시설 이주 시기를 2년 정도 늦출 수 있다. 꺼져가는 숯불에 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그래도 가족과 한 집에 살 수 있는 시간이 2년이나 늘어난다는 것은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는 아니하리라.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초(楚)나라에 고어(皐魚)라는 자가 살았다. 그는 평소 배우기를 즐거워하여 천하를 두루 다녔는데,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자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멈춰주지 아니하고), 子欲養而親不待(자식은 봉양코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아니하네)”라고 슬퍼하며 울다가 죽었다고 한다. 공자가 이 고사를 제자들에게 전하자 감동하여 귀향해서 부모를 돌보는 이가 다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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