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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이야기 - 제9화] 알츠하이머의 평생 동반자 프란츠 니슬양현덕(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 Brainwise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의사 알츠하이머의 이름은 병명(알츠하이머병)에 담겨 널리 알려졌지만, 첫 번째 환자사례를 학계에 보고하기 전까지 그는 신경매독 및 혈관성 치매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알츠하이머병이 현대 의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이 장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명명의 기원과 추후 연구의 전개과정을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프란츠 니슬(Franz Nissl, 1860~1919)= 프란츠 니슬은 독일 프랑켄탈(Frankenthal)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뮌헨 의과대학(Ludwig Maximilian University of Munich)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었고 후에 정신과를 전공했다.

니슬은 신경병리에 관심이 많아 대뇌피질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신경세포 염색법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니슬 염색'(Nissl stain) 기법이다.

니슬은 뮌헨에서 스승인 베른하르트 폰 구덴(Bernhard von Gudden)과 함께 연구를 했다. 그 동안 구덴의 요청에 의해 정신질환자인 오토 왕자(Prince Otto)를 돌봐야 했다.

그러던 중 구덴이 자신의 환자였던 바이에른 황제 루드비히 2세(Ludwig II, King of the Bavarian)와 1886년 동반 익사체로 발견되면서, 니슬은 새로운 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오토 왕자는 황제 루드비히 2세의 동생이었다.

1889년 니슬은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를 만나 7년 동안 연구를 같이 했다.

니슬은 알츠하이머보다 4살이 많았지만 알츠하이머가 임상진료와 기초연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친구처럼 도우며 격려해줬다. 니슬은 알츠하이머의 결혼식 증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알츠하이머는 니슬의 조언을 잘 받아들였으며, 둘은 뇌동맥경화, 간질, 치매 등에 관한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

1895년에 니슬은 크레펠린의 초청으로 하이델베르크에 가서 정교수가 되었다. 후에 크레펠린이 뮌헨으로 떠나자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니슬과 알츠하이머 모두 더 이상 같은 병원에서 일할 수 없게 된 데 대해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지만 우정과 학문적 교류를 평생 이어갔다.

알츠하이머의 아내가 사망하고 일년 정도 지났을 무렵인 1902년 여름, 크레펠린은 알츠하이머에게 하이델베르크 연구소로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알츠하이머로선 크나큰 영광이었다.

크레펠린은 당시 독일에서 가장 명망 높고 영향력 있는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친구 니슬이 거기서 7년 동안이나 연구를 하고 있던 차였다.

알츠하이머는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다른 병원의 원장 직에 지원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니슬은 크레펠린을 설득하여 알츠하이머에게 다시 한 번 제안해줄 것을 부탁했다. 알츠하이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하이델베르크로 직장을 옮겼다. 1902년도 말이었다.

1918년 니슬은 크레펠린의 초청으로 뮌헨으로 가 연구에 합류했다. 알츠하이머가 1912년 브레슬라우 대학으로 옮긴 뒤였다. 니슬은 그곳에서 1년 정도 더 일하다가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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