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재작년 9월 충청북도 단양에 있는 소백산을 올랐다. 이날 소백산 등반에는 특별한 동료들이 있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소백산원정대'였다. 서진이, 예원이, 주원이, 현준이, 찬율이, 지윤이, 유민이, 승현이……. 원정대에 참여한 20명의 아이들은 다섯 살부터 일곱 살 사이 또래였다. 꼬마 원정대원들은 모두 좌심형성 부전증, 양방좌심실연결, 폐동맥폐쇄, 우심형성 부전증,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 등 이름을 외우기조차 힘든 복합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심장의 왼쪽에 있는 좌심방·좌심실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거나 폐동맥 판막이 막이나 근육으로 막혀 혈류가 우심실에서 폐로 나가지 못하는 심장기형을 갖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적게는 한 번부터 많게는 열 번도 넘게 심장수술과 시술을 받았다.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몇 번의 힘든 수술을 더 견뎌야 할지 모른다. 한 번도 힘든 수술을 여러 번에 걸쳐 받았지만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미 2016년에는 튼튼한 심장을 가진 성인들도 오르기 힘든 한라산 정상까지 다녀온 노련한 등반가들이었다. 이날 소백산 등반에서 꼬마 원정대원들은 울퉁불퉁 돌투성이 산길과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함께 온 엄마 아빠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다람쥐처럼 산을 탔다. 좁고 가파른 산길에서도 아이들은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며 저희들끼리 까불고 장난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오히려 뒤에 처져서 숨을 헐떡이며 걷는 내 꼴이 우스웠다. 

이날 함께 산을 오른 원정대원 중 한 명인 다섯 살 금물결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산을 올랐다. 좌심방과 좌심실이 미숙하게 발달하는 선청선 심장기형을 앓고 있는 물결이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병원 중환자실에도 오래 입원해 있었다. 아빠 품에 안겨 산을 오르는 동안 금물결이는 연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반쪽짜리 심장에서 힘겹게 내보내는 혈액이 온 몸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결이 아빠는 산길을 오르던 중 몇 번이나 기침을 해 가래를 뱉어 내도록 하려고 아이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엎어서 안고 등을 두드렸다.

금물결이처럼 좌심형성 부전증을 지닌 선천성 심장병 환아에게 필요한 수술이 바로 인공혈관으로 심장 정맥을 폐동맥에 직접 연결하는 '폰탄수술'이다. 최근 폰탄수술에 사용하는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로 논란이 됐다. 국내에서 시행하는 폰탄수술에 사용하는 인공혈관은 '고어텍스'로 유명한 미국의 고어(W. L. Gore & Associates)사가 독점공급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17년 9월 고어사가 인공혈관의 한국내 건강보험 상한 가격이 낮아 이윤이 적고,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인증을 더 이상 연장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한국법인의 의료사업을 접고 철수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제품 허가도 취소했다. 이 때문에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수적인 인조혈관의 공급이 중단됐고,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주도해오던 병원들이 확보하고 있던 인공혈관 재고가 소진되면서 폰탄수술을 더는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다.

폰탄수술 중단 사태는 앞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는 2017년 고어사가 한국내 의료사업을 접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우려해 보건당국과 의료계, 고어사를 향해 그동안 끊임없이 인공혈관 공급 재개를 요청해 왔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는 보건당국과 의료계, 고어사를 상대로 사태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공급 재개는 이뤄지지 않았고 급기야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맞고 말았다.

최근 며칠 동안 이 일을 놓고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국내 건강보험 의료수가 탓으로 이 문제의 모든 원인을 돌렸다. 보건당국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환자단체에서는 "인조혈관의 공급을 중단시켜 환아들의 생명을 사지로 몰고 있는 고어 사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력히 성토하는 목소리를 냈다. 언론의 관심은 인공혈관 공급이 중단된 배경에 쏠렸고,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따져 묻는데 집중했다.

이런 가운데 선천성 심장병 환아를 둔 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치료재료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생명'이라는 구호처럼 인공혈관 공급 중단으로 직면한 수술 연기는 곧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심장병 환아 부모들은 아이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엉뚱한 비난마저 감수해야 했다. 의료계 일각에서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로 인한 수술 지연이 저수가 탓인데도 이를 외면한 채 기업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어사가 당장 시급하게 필요한 인공혈관을 공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의 원인을 섣불리 판단할 건 아니라고 본다. '저수가 탓'을 하며 독점기업이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재료 공급을 거부하는 걸 당연한 듯 여기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인공혈관 공급가격이 우리나라보다 2~3배 높다는 주장은 과연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우리나라처럼 단일보험 체계가 아닌 국가에서 치료재료 공급가격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건지도 의문이다. 고어사가 한국내 메디컬사업부를 철수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제대로 취했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재료 관련 의료수가가 적절하게 매겨졌는지, 인공혈관 공급 재개를 위해 보건당국의 제구실을 다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만 우선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급선무다. 공급 중단 사태의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환아 부모와 환자단체에게 왜 저수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다. 심지어 고어사를 탓하는 그들에게 이기적이라며 비난하는 몰인정함이란...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지금은 아이들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수술이 연기돼 속을 태우는 부모들의 마음을 돌아보는 게 먼저다. 그들은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이들이다.  

그날, 해발 1439m의 소백산 정산 비로봉까지 오르고 내려오는 데 꼬박 9시간이 걸렸다. 해 질 녘 산에서 내려온 후에도 꼬마 원정대원들은 한참을 까불고 뛰어다녔다. 잠시도 쉬지않고 수축과 이완을 통해 혈액을 온몸으로 순환시키는 단단한 근육질 심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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