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올해도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꾸려
에베레스트산 2~4배 높이 등산기록 달성 수두룩

[라포르시안] 올해 9살인 찬율이는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이라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다. 심장의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과 연결돼 있는 복잡심장기형이다. 조기에 수술하지 않으면 심한 심부전과 호흡곤란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하고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는 질환이다.

그런데 찬율이가 지금까지 산을 오른 높이를 다 더하면 3만미터를 넘는다. 한라산 정상부터 태백산, 소백산, 선자령, 곰배령, 신불산, 축령산, 수락산 정상에 모두 올랐다. 북한산과 관악산 정상에는 각각 8번과 6번이나 올랐다.

찬율이는 올해에도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대표 안상호)가 꾸린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 - 2020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에 참가해 산을 탔다.

선천성심장병환우회는 선천성 심장병과 심장병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인식개선운동 일환으로 해마다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를 꾸려왔다.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와 그 가족,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는 2016년 한라산원정대를 시작으로 2017년 소백산원정대, 2018 영남알프스원정대에 이어 작년에는 해발 1,567m 높이 태백산 정상에 올랐다.

한국선청성심장병환우회 관악산 원정대가 정상에 오른 후 찍은 단체사진.
한국선청성심장병환우회 관악산 원정대가 정상에 오른 후 찍은 단체사진.

올해에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산을 탔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에 맞춰 한 곳의 산에 많은 인원이 몰리지 않도록 관악산, 지리산, 소백산, 팔공산, 금정산, 계룡산, 간월재, 백양산, 비봉산 등 전국 9개 산으로 원정대 가족을 분산했다. 감염 예방을 위해 산행 전 휴대용 손소독제 배부 및 산행 중 마스크 착용을 강화하고 가족 간 산행 간격을 유지하도록 했다.

원정대 가족은 오전 7시부터 순차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관악산, 지리산, 소백산, 팔공산, 금정산, 계룡산, 간월재, 백양산, 비봉산 등 전국 9곳에서 등반을 시작해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 각각 정상에 올랐다.

한국선청성심장병환우회 각 원정대가 정성에 오른 후 ZOOM을 통해 화상연결한 모습.
한국선청성심장병환우회 각 원정대가 정성에 오른 후 ZOOM을 통해 화상연결한 모습.

정상에 오른 원정대 가족들은 스마트폰 화상연결 앱을 활용해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파이팅!” 구호를 함께 외치고 기쁨을 나눴다.

그동안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가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은 선천성 심장병과 심장병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깨는 역사가 됐다. 수차례 심장수술과 시술을 받은 복잡한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도 제대로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관리하면 튼튼한 심장을 가진 성인도 오르기 힘든 산을 등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환우회에 따르면 2016년 한라산 원정대를 시작으로 5년 동안 빠짐없이 원정대에 참가한 찬율이 기록을 확인한 등산 횟수만 44회에 달했다. 누적 등반높이는 총 3만4,377m로 에베레스트 산(8,848m)의 약 4배에 달했다.

찬율이뿐만 아니라 강현(14세, 비장증후군)이는 2만6,125m, 서진(8세, 양대혈관우심실기시)이 1만9,699m, 민규(5세, 완전방실중격결손/단심실) 1만9,455m, 민경(11세, 폐동맥폐쇄)이 1만9,420m 등 1만미터를 넘는 등산높이를 달성한 심장병 환아가 수두룩했다.

2020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참가 어린이들의 누적 등산 높이. 표 제작: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2020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 참가 어린이들의 누적 등산 높이. 표 제작: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올해 원정대에 동참한 곽재건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늘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심장 교정 수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술 후에 '나도 보통 사람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과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적극적인 신체 활동, 사회 활동이라고 생각해왔고, 이와 관련된 심장 재활 분야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다"며 "단심실 교정을 받은 아이가 누구보다도 빨리 산 위로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심장 재활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은 더욱 확신을 갖게 됐됐다. 이런 프로그램을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잘 연구해 더 많은 심장병 환자가 심장 재활에 참여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부 활동이 많이 줄면서 운동부족으로 올해 등반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김성호 부천 세종병원 소아심장과 부장은 “올해 등반은 코로나로 인해 운동부족인 상태에서 치르게 돼 정상까지 낙오자 없이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며 "아이들은 한라산 등반을 시작으로 5년간 이어져온 등반 경험으로 이번의 어려움도 무난히 이겨내며 그것도 즐겁게 등반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꼈다. 매번 환우회 등반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이번에도 절실히 느끼면서 환우회와 같이하면서 내가 받은 많은 은혜의 깨달음을 사랑과 인술로 보답해 나아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해본다"고 했다.

원정대가 등반에 나설 때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동행한다. 올해에는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와 서울대 의과대학생들, 희망철도재단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원정대를 준비한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원정대에 참여한 20명의 아이들은 모두 단심실, 좌심형성부전, 폐동맥폐쇄, 우심형성부전, 양대혈관우심실기시 등 복잡한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라며 "그렇지만 원정대에 봉사자로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몇 시간 동안 산에 오르면서 누가 심장병을 가진 아이인지 누가 형제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더 많은 신체활동을 하기를 바라고 산전 진단을 통해 태아의 선천성 심장병을 알게 되는 부모들이 먼저 경험한 우리를 보면서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안 대표는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아이의 삶의 질과 미래까지 고민하며 우리의 걸음마다 한마음으로 동행해 주는 의료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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