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박근혜 정부서 퍼즐처럼 드러나는 ‘의료영리화의 미래’

[라포르시안] 지난 2001년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건보재정은 일부 연도를 제외하고 해마다 당기적자를 면치 못했다. 많을 때는 한 해 2조원이 넘는 당기적자를 내기도 했다.

다만 2009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5년 61.8%에서 2009년에는 65%까지 확대됐다. 그러다 2010년부터 보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이듬해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당기흑자 행진을 시작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 6,008억원, 2012년 3조157억원, 2013년 3조6,446억원, 2014년 4조5,869억원, 2015년 4조1,728억원의 당기흑자를 냈다. 올해 들어서도 8월말 현재까지 3조1,966억원의 당기흑자를 내면서 누적흑자 규모는 20조1,766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 흑자인 20조원은 2007년의 건강보험료 총수입(21조2,530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0%에서 2010년 63.6%, 2011년 63.0%, 2012년 62.5%, 2013년 62.0%, 2014년 63.2%로 되레 떨어졌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14년 발표한 ‘2014~2018년 건강보험 재무전망’을 통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과 수가인상 등으로 2016년부터 건보재정이 당기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8월 현재까지 3조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건강보험의 수지율(지출/수입, 100 초과면 적자를, 100이면 균형, 100 미만이면 흑자를 의미)은 2010년 104에서 2014년에는 87.6으로 개선됐다. <통계청 건강보험 재정 및 급여율 지표 바로가기>결국, 건강보험료 수입을 써야할 곳에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쌓여가는 데도 보장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

가입자인 국민의 의료보장을 위해 낸 건강보험료 수입의 지출을 최대한 억제해 사상 최고치의 건강보험 흑자를 내는 동안 돈 때문에 아파도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받는 가구는 늘어가고 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건보공단은 '낮은 인력감축과 위험과 확고한 수익기반'을 가진 대학생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손꼽혔다. 작년에는 삼성전자까지 제치고 대학생 직장 선호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안정적인 직장'이란 인식을 굳혔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정책 성과는?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정책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보장'이란 대선공약을 제시했지만 당선된 이후 슬그머니 이를 뒤집었다.

환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인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는 제외한다고 했다가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다시 3대 비급여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집권 4년차인 2016년 현재,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과는 미미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펴낸 '2016년도 국가 주요사업 집행점검·평가' 보고서를 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간 총 125개 항목을 급여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은 2014년 기준으로 77.7%로 2012년(77.8%)과 비교해 제자리 걸음이다.

오히려 4대 중증질환에 국한된 질환별·항목별 보장성 강화 정책 탓에 기타 중증질환으로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안게 되는 계층간에 형평성 문제만 더 커졌다.   

한국의료패널 분석 결과,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외래 진료를 받은 4대 중증질환자 보유 가구는 평균 119만원을 부담한 반면 기타 중증질환자 보유 가구는 이보다 많은 127만원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원 치료에서도 4대 중증질환자 보유 가구는 평균 265만원을 부담했고, 기타 중증질환자 보유 가구도 평균 255만원을 부담해 별 차이가 없었다.

▲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2014년의 건강보험의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은 2012년과 비교해 확대되지 않았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참여정부와 비교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의지오히려 의료산업 육성에 건보재정 투입 시도

건강보험의 전체 보장률도 확대될 기미가 없다. 20102년 62.5%이던 보장률은 2014년 63.2%로 0.7%p 높아졌다. 2009년의 65%에도 한참 못미친다.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20조원이나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앞서 참여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핵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는 2005년 9월부터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의 본인부담률을 10%로 인하하는 등 건강보험 사상 최대 규모의 급여확대 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이같은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암 환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4년 46.9%에서 2005년 66.1%로 높아졌다.

더욱 놀라운 건 참여정부가 파격적인 암환자 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할 당시 건강보험 재정은 1조2,000억원 정도의 흑자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보장률도 참여정부 말인 2007년에 65%대에 진입했다.

결국은 정부의 의지다. 박근혜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추진할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보다는 제약산업과 원격의료 등의 헬스케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관련 기사: 건강보험 흑자를 의료산업 지원에 쏟아붓는 박근혜 정부…“주식투자자들만 환호”>실제로 보건복지부는 글로벌 혁신신약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건강보험 약가를 우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며,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시범사업에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건강보험 누적흑자는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환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 발생한 것이고,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써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부가 묵살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흑자의 올바른 접근은 잘못된 의료정책을 교정하고, 국민들의 의료비를 인하하는 것"이라고 끈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월 5만원 건보료도 못내는 '생계형 체납자' 90만세대 넘어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과 함께 또다른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의료취약층이 예상외로 많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건강보험법상 병의원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는 6개월 이상 체납 세대가 140만 세대를 넘었고, 이들 가구의 보험료 체납액은 2조4,000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대의 상당수가 소득과 재산이 적은 '생계형 체납자'라는 점이다.

건보공단노조가 확인한 결과,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140만 세대 중에서 68%인 90만 세대의 경우 '월 5만 원이하' 보험료를 납부하는 '저소득 생계형 체납자'였다.

여기에 건강보험 피부양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급여제한자는 이보다 훨신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5월, 서울 마포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함께 살던 20대 쌍둥이 형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잇었다. 직업이 없었던 이들 형제는 오랫동안 생활고를 겪어왔고, 17개월분의 건강보험료 70여 만원을 체납한 게 확인됐다. 한달 4만원이 조금 넘는 보험료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생활고를 겪고 있었던 거다.

쌍둥이 형제처럼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들은 대부분 소득 자체가 없거나 매우 적어서 월 5만원 이하 보험료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라며 "6개월 이상 건보료가 체납될 경우 보험 혜택을 제대로 못 받을 뿐 아니라 재산이 가압류되거나 통장 거래가 중단되기도 한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 건강세상네트워크는 "20105년의 결손처분(건보료 납부 의무를 소멸시키는 행정처분) 사례는 5만여 건으로, 같은 해 생계형 체납가구가 94만 세대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저조한 실정"이라며 "홍보도 부족한 탓에 생계형 체납자 대다수가 결손처분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통계' 중에서.

'의료영리화의 미래' 미국은 국가역할 강화하는데…한국은 의료급여 수급자 갈수록 줄어 

건강보험의 생계형 체납자와 함께 저소득층의 의료문제를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 축소도 의료보장의 사각지대를 키우고 있다. 

의료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그 외(국가유공자 등) 저소득층이 자력으로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국가재정으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공공부조제도이다.

건보공단의 '의료급여통계' 자료에 따르면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2003년 145만명에서 2004년 153만명, 2005년 176만명, 2006년 182만명, 2007년 185만명으로 늘었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부터 차상위계층 중 만성질환자 및 희귀난치성질환자를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적용하면서 그 수가 급증한 것이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의료급여 수급권자였던 차상위 희귀난치성질환자(1종)와  만성질환자, 18세미만 아동 등을 건강보험 대상자로 전환하면서 수급자 수가 줄어들었다.

2007년 185만명까지 늘었던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2008년 184만명, 2009년 167만명, 2010년 167만명, 2011년 160만명, 2012년 150만명으로 줄었다.  <통계청 의료급여 수급 현황 정보 바로가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의료급여 수급자수 감소 추세가 이어져 2015년 현재 147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참여정부 초기였던 2003년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한국의 의료급여 수급률(전체인구 대비 의료급여수급 대상자 비율)은 3%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의료급여 수급자 수 및 재정규모' 자료를 보면 의료급여 수급률은 2010년 3.31%에서 2012년 2.95%, 2014년 2.88%, 2015년 2.9%로 집계됐다.

결국, 2008년 이후부터 의료급여 수급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로 자격전환이 이뤄진 저소득층 가운데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생계형 체납자가 양산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급여 수급자 감소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저소득의 의료보장 문제를 건겅보험 가입자들에게 떠님기는 꼴이다.  

'민간의료보험의 천국'이라 불리고 '의료영리화의 미래'라고도 불리는 미국도 한국보다 훨씬 적극적인 의료 분야의 공적부조제도를 운영한다.

흔히 한국의 의료급여와 비교되는 미국의 메디케이드(Medicaid)는  65세 미만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며, 그에 따른 비용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예산으로 부담한다.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는 대상자 수는 약 5천만명(전체 인구의 약 15~1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014년부터 '오바마케어'가 실시되면서 메디케이드 대상자 수는 더욱 늘었다.

한국에서 의료급여 수급자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전국민 건강보험'을 외치는 한국보다 '의료영리화의 미래'로 불리는 미국 의료시스템에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훨씬 더 적극적인 셈이다.

건보공단노조는 "정부 재정으로 의료를 책임지는 저소득층의 비율은 복지 후진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15%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의료수급권자가 전체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144만 명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은 건강보험가입자로 편입시켰고, 결국 이들은 의료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는 2017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을 전년도보다 축소 편성했다.

지난 8월 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 2017년도 보건복지부 예산과 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은 올해 7조975억원보다 2,211억원이 줄어든  6조8,764억원으로 편성했다.

정부의 예산으로 책임져야 할 차상위 의료급여 수급자를 건강보험 대상자로 전환해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것도 모자라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마저 축소하겠다는 의도다.

6년째 이어지는 당기흑자로 20조원을 넘긴 건강보험의 누적 흑자,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90만세대가 넘는 '생계형 체납자들', 갈수록 줄어드는 의료급여 수급자들, 그리고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

정말 대한민국이 '전국민 의료보장' 국가가 맞긴 한 건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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