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실시…"건보급여 제한에 몸 아파도 진통제·술로 버텨"

[라포르시안] '전국민 건강보험시대'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싶다.

건강보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구가 200만 세대가 넘는다는 조사결과 앞에서 '전국민 건강보험시대'라는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제출한 자료를 보면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으로 건강보험 급여혜택을 받지못하는 대상자가 150만 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6개월 이상 장기체납으로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는 건보공단이 집계한 것보다 훨씬 많은 200만 세대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아름다운재단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년 4월부터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장기체납자(대표 납무의무자 기준)는 총 216만 세대에 달했다. 가구원 수를 적용하면 최소 405만명 이상이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이번 연구에서 2015년 기준으로 보험료 체납횟수의 중위수(통계집단 중앙에 위치하는 값)는 24회였다. 횟수는 길지만 총 체납액의 중위수는 약 89만원, 월 평균 체납액의 중위수는 약 3만원에 불과했다. 장기체납자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월 보험료 5만원 정도도 내지 못하는 '생계형 체납'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장기체납자 10명 중 6명(56.7%)는 월 5만원 이하 보험료를 내는 ‘생계형 체납자’였고, 만 24세 이하의 장기체납자도 5만명에 육박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장기체납자들이 소액의 보험료 체납액도 청산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의료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받고, 건강이 악화돼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면담 조사에서 만난 장기체납자들은 대다수가 저소득층이며 사회적 관계망이 약한데다가 실직·파산 등의 급격한 위기를 겪어 소액 체납도 청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 장기체납자는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건강보험에 들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기료 등 다른 공과금과 세금도 밀린 상황에서 건보료까지 챙기지 못하거나 아예 체납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병원 이용도 크게 위축돼 몸이 아파도 참고 견디다가 병을 키우는 상황이 우려된다.

연구진이 실시한 면담 조사에 따르면 장기체납자들은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실제로 한 체납자는 며칠씩 기절하는 상황에서도 진통제와 술로 버텼다. ‘고운맘카드’를 받지 못한 임산부 장기체납자는 출산을 앞두고 하혈을 하기 전까지 병원에 다니지 못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이같은 조사 및 분석을 토대로 ▲미성년자, 청년·임산부, 의료급여 수급권자 등에 대한 건보료 납부의무 면제 ▲장기체납으로 인한 급여제한 규정 폐지 ▲통장 압류 요건 준수 ▲의료급여 수급권자 기준 확대 ▲보험료 감면 적용기준 완화 등의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오늘(1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건강보험체납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이 같은 연구분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에서 기존 발표보다 장기체납 규모가 크게 나타난 것은 분석방법의 차이 때문"이라며 "건보공단은 체납 통계에서 지역가입자 자격이 상실된 경우를 제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 의료급여 수급 등으로 가입 자격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체납액을 갚아야 하는 장기체납자 약 50만 세대가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름다운재단은 작년부터 건강보험 체납자 지원사업을 벌여왔다.

아름다운재단은 월 보험료 5만원 이하 생계형 건보료 체납자 중 ▲청소년이나 어르신 포함 가정 ▲한부모 가정 ▲임산부 ▲차상위계층 ▲체납 기간이 긴 경우 등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 밀린 보험료 분납액 1회분(최대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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