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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뷰] 메르스 바이러스 이동경로에 흔적 남긴 한국사회의 폭력성억울한 피해자 양산하고, 배려없는 격리 정책만 남발…방역 최일선의 의료진에 ‘주홍글씨’

[라포르시안] 메르스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삼켜버렸다.

거리와 지하철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거의 취소됐다.

메르스 공포감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격리하면서 일종의 '자발적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8일 기준으로 23명의 추가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환자 수가 87명으로 늘었다.

덕분에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를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메르스 환자가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한 국가가 됐다.  

메르스가 만들어 낸 풍경은 피곤하다. 메르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란스럽게 추진되고 있다. '개미 한마리도 지나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낙타가 떼로 몰려다닐 만큼 큰 구멍이 생긴 것 같다.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를 뚫고 창궐한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메르스 감염자의 이동경로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겼다. 메르스 감염 피해자를 향한 '폭력적 RNA'의 정보가 하나둘 들춰진다.

#. 어느 메르스 감염자의 피곤한 이동경로

지난 6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30대 중반의 L씨. 그의 이동경로를 보자.

'5월 26일~28일 입원 중인 아버지의 병문안을 위해 삼성서울병원 방문 → 5월 28일 오후 1시 부천로하스요양병원으로 아버지를 전원했지만 그날 저녁 7시 30분경 사망 → 5월 28일 오후 8시~ 30일 오전 11시 부천성모장례식장 → 5월 31일 10시께 회사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 →  5월 31일 저녁 9시~6월 1일 오전 7시까지 Y사우나에서 수면 → 6월 1일 오전 9시 메디홀스의원 외래진료 후 삼우제 참석 → 6월 2일 다시 정상 출퇴근 →  6월 3일 출근후 차도가 없자 오전 9시 30분 메디홀스의원 방문, 같은 날 오후 부천성모병원 외부진료소 방문'

L씨의 이동경로 중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곧바로 회사에 출근했다는 대목이다. 직계가족의 장례를 치를 경우 웬만한 회사에서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주고 있지만 그마저도 배려가 없었다는 말이다.

장례를 치르고 지친 몸으로 출근하고,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에 가면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우려가 높다.

세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의 가족으로 감염 의심 상태에서 중국으로 업무출장을 간 남성의 사례는 또 어떤가.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시각도 있다.

38도의 발열과 가벼운 감기증상을 이유로 해외출장 업무를 취소할 수 있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아니라는 추측도 적지 않았다.

 

#. 메르스 환자 격리치료를 위해 쫓겨나는 환자들

메르스 환자가 60명을 넘었고, 격리대상자 수가 2,000명을 넘었다. 확진환자는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상에서 별도로 치료를 받아야 하고, 격리자들은 최소한 일반 병동과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서 머물러야 한다.

정부는 메르스 환자와 격리자를 수용하기 위해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격리병상 확보에 나섰다.

이 때문에 지방의료원 등의 공공병원은 메르스 환자 치료를 전담하기 위해 의료기관 전체 또는 병동 전체를 비우고 메르스 환자 전용병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증상에 따라 퇴원을 시키거나 다른 곳으로 전원 조치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갈데 없는 가난한 환자들이 쫓겨나거나 옮겨갈 병원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공병원에 설치된 음압병상에서 치료를 받던 결핵환자들이 사회복지시설로 가거나 일반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으로 옮겨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도 기존에 입원해 있던 환자 중 상당수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은 옮겨갈 병원을 찾지 못해 곤란을 겪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감염 확진자가 늘면서 공공의료기관에 격리병동 확보 조치를 취하면서 결핵 등으로 기존에 입원한 환자들을 소개하는 조치가 시작됐다. 결국 메르스 전파를 막겠다고 가난한 감염환자들을 퇴원시키는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메르스 방역 최일선의 의료진들, 지치고 억울하다

메르스 격리병원으로 지정돼 확진환자가 입원하면 담당하는 의료진은 과도한 업무에 내몰리게 된다. 가뜩이나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인데 격리병동에서 24시간 환자 상태를 관찰하며 돌봐야 하는 의료진은 연속근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환자 5명이 입원한 이후 18개의 음압격리병상을 가동하면서 담당 의료인력이 열흘 가까이 퇴근도 하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한 병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원내 감염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할 경우 밀접 접촉을 한 의료진과 직원 등이 한꺼번에 근무가 제한되고 격리에 들어갈 경우 다른 의료진에게 모든 업무부담이 돌아간다. 

오죽했으며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겁나지 않지만 아랫연차가 메르스 감염 의심으로 격리될 경우 그 업무부담이 나한테 돌아오는 상황은 너무 끔찍하다"고 말할 정도일까.

메르스는 스치기만 해도 의료기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사람들이 감염 우려로 병원 방문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권의 많은 의료기관은 환자가 눈에 띄게 둘었고, 특히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다는 소문만 나도 외래진료 환자가 급감할 정도라고 한다.

경기도의 한 병원은 내원한 메르스 의심 환자를 감염병 대응 규정에 따라 적극적으로 조치했다가 '메르스 접촉병원'으로 소문이 났고, 이 때문에 외래환자가 급감하면서 상당한 경영손실을 입었다.

#. 휴업하는 학교, 곤란한 맞벌이 부모들

메르스 환자가 늘면서 전국의 많은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다.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는 유치원·학교 1,000곳 이상이 휴업에 들어갔다.

문제는 유치원과 학교만 휴업에 들어갔지만 직장은 쉬지 않는다.

유치원과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자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가정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휴가를 내거나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게다가 학교는 쉬더라도 학원에는 나가거나 PC방을 찾는 경우도 많아 격리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메르스 감염 걱정에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을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부모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부모님 뭐 하시냐? 혹시 병원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부모의 직업이 의료인일 경우 아이들이 기피대상으로 찍히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메르스 감염 우려가 높은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메르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최일선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자식들이 학교에서 감염 우려가 높은 기피대상으로 지목된다는 사실에 의사나 간호사인 부모들은 말못할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느 지역에서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자녀들이 등교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학교 측에 항의를 했다고 한다. 결국 해당 학교는 휴업에 들어갔다.

또 학생들을 대상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부모가 있는지 파악하는 학교도 생겼다.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은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인 자녀 등교 거부 언급은 의료인의 환자 진료 의지를 크게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르스 감염 우려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의료인의 사명으로 환자 치료와 감염 확산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히려 '메르스 접촉의사'라는 주홍글씨를 씌우는 꼴이다. 어린 학생들이 부모의 직업 때문에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 메르스가 들춰낸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모습이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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