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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그 메르스 환자를 향한 비난은 온당한가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8.09.1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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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감염병의 역사는 곧 배제와 차별의 역사다. 동시에 감염병 환자를 향한 혐오의 기록이다. 감염이라 말은 불안과 공포, 혐오와 배척의 정서를 조장한다. 공중보건을 위해 감염병에 걸린 환자에게는 격리 조치가 취해지기 마련이다. 격리와 배제는 감염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공중보건 수단이기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절한 조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격리는 곧 당사자에게 일종의 낙인효과를 불러오고, 과도한 공포와 괴담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감염은 곧 사회적·경제적인 피해와 함께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재난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사흘간 머물면서 85명에게 메르스를 감염시킨 14번 환자, 30명을 감염시킨 1번 환자, 23명을 감염시킨 16번 환자. 이들은 메르스 '슈퍼 전파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들이 슈퍼 전파자가 됐던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메르스라는 신종감염병에 대한 정보 부족,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한 가운데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보건당국의 부실한 방역 대응 등이 뒤섞이면서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르스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슈퍼 전파자가 됐고 감염력은 증폭됐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비난은 슈퍼 전파자에게로 집중됐다. 그들은 메르스라는 신종감염병에 노출된 환자이자 부실한 방역과 의료체계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을 확산한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종의 마녀사냥의 '희생자 찾기'에 다름 아니다. <관련 기사: 14번 환자가 ‘메르스 슈퍼전파자’ 된 황당한 이유 있었다,  메르스 바이러스 이동경로에 흔적 남긴 한국사회의 폭력성>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메르스 환자 관련 청원글.

다시 동일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3년 만에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예전에 경험했던 불안과 공포가 본능적으로 꿈틀거리도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신속한 초기 대응과 방역으로 환자가 입국한 지 수 시간 만에 격리조치와 함께 접촉자 파악이 이뤄졌다. 3년 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가 방역체계와 병원의 감염관리 시스템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변함없는 게 있다. 바로 메르스라는 감염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다. 3년 전 슈퍼 전파자를 향했던 것과 비슷한 비난이 메르스 확진자를 향하고 있다. 단초는 서울시가 제공했다. 지난 9일 서울시가 메르스 대책회의를 생중계하는 과정에서 메르스 환자 A씨의 행적이 공개됐다. A씨가 공항에 마중 나온 부인에게 '마스크 착용'을 당부했고 자신은 공항 택시를 타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했다는 게 확인되면서 A씨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A씨가 사전에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자신의 가족만 보호하고, 무책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수의 접촉자를 양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항 입국절차 과정에서 메르스 감염이 의심된다는 점을 숨긴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메르스 환자 이동 동선, 접촉자 중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확진자는  입국절차를 위해 총 26분간 공항에 체류하면서 검역을 받을 때 설사, 근육통이 있다고 기재한 건강상태질문서를 제출했다. 검역관 조사시 10일전에 설사증상이 있었고, 약물복용은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당시 그의 체온은 정상(36.3℃) 범위였다. 인천공항 검역관이 메르스 증상 중 하나인 설사를 했다는 점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 환자는 추가적인 검역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입국절차를 마쳤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A씨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메르스 감염을 인지하고도 자신의 차량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함 점이 의심스럽고 엄벌해야 한다는 청원글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3년 전 슈퍼 전파자들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과 다를 바 없다. 따져보자. 자신이 이 환자의 처지였다고 가정할 때 과연 감염병 예방수칙을 떠올리고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까. A씨가 머물렀던 쿠웨이트는 질병관리본부가 지정한 메르스 오염지역도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입국 당시까지 기침이나 발열과 같은 호흡기 증상 없이 설사 증상만 있었다고 하니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지독하게 운이 나쁜 한 명의 메르스 감염환자일 뿐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국내 메르스 의심환자 신고는 총 1,248건이 접수됐다. 이 중 의심환자로 분류된 사례는 220명이며, 확진 검사를 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확인됐다. 의심환자로 분류된 220명은 모두 바레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동지역 국가를 방문한 여행력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환자가 내원해 검사를 받고 의료기관이 신고한 경우가 99명(45%)이었다. 만일 이 99명 중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그들은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았다. 만일 A씨도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고 음성으로 나왔다면 그저 2018년의 메르스 의심환자 중 한 명으로 통계에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운이 나쁘게도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를 비난한다면 작년에 중동지역 국가를 방문하고 메르스 의심증상으로 직접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은 의심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감염 확산의 우려가 있음에도 의료기관을 직접 내원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접촉자를 만들어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열악한 노동환경’ 들춰낸 메르스…건강보험에 상병수당 없는건 부끄러운 일>

분명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시 방역에 적극 협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은 그저 생기는 게 아니다. 감염병으로 격리조치가 됐을 때 국가가 생계비를 지원하고, 회사를 쉬게 됐을 때 유급휴가로 인정하고, 비정규직이라면 실직의 불안이 없도록 해야 하고, 감염병 환자라는 이유로 일신상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게끔 사회환경이 먼저 조성돼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감염병 환자의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국가방역체계와 병원의 감염관리 시스템을 더 강화하고, 동시에 노동환경의 개선과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 등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감염병 예방이나 방역을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현될 수 있다. 감염병에 걸린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민건강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는 버리고 각자도생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역설적이게도 배제와 격리를 불러오는 감염병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의미를 각인시킨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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