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탈진·중환자 치료병상 부족·환자분류체계 미비로 혼란 가중
중증도 구분 없이 전원되는 확진자에 전담병원 간호사들 탈진 상태
코로나19 전담병원 등 경영손실 우려에 매달 임금체불 걱정

[라포르시안] 올해 1월 말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연말까지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서 환자 치료와 방역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한계에 치닫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3차 대유행 기세가 꺾이질 않으면서 보건의료인력과  중환자 치료병상 부족, 환자분류체계 미비 등으로 의료현장 혼란이 가증되면서 의료체계 붕괴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중환자 병상 확보 및 지원대책 등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 대책이 코로나19 방역대응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는 지난 23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최근 대유행으로 심각해진 만성적인 인력 부족, 환자 중증도 분류 시스템 미비로 발생하는 의료인력 소진 상황을 호소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중증환자 병상 확보 및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병상 지속 확보, 환자 분류 및 적정 의료기관 배정 등에 대한 컨트롤타워 정비, 코로나19 전담병원 중증환자를 상급종합병원으로 빠른 전원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수도권 중심으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중증도별로 적절한 의료기관 확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중환자 병상 부족으로 인해 많은 전담병원에서 중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전원을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대다수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은 중환자 치료에 적합한 시설과 장비,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3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하는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 사진제공: 보건의료노조
지난 23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하는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 사진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이런 상황을 고려한 적정한 환자 분류체계를 갖추고 환자의 상태에 맞는 의료기관 이용을 위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환자 중증도를 분류하고 전원 시스템을 체계화해 중증환자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신속한 전원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감염병 진료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은 "중증도 별 환자 분류에 대한 기준과 매뉴얼이 있고, 수도권에는 환자 전원에 대한 공동상황실이 이미 꾸려졌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경증 환자로 연락받고 병원에 병상배정을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증세가 심각해) 심폐소생술을 한 사례도 있다. 중증환자 분류와 배정에 투입되는 전문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음으로 환자 중증도별·질환군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과 요양(치매)환자·정신질환자·거동불가 환자 등 코로나19 중증도는 낮으나 별도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추가적인 인력운영대책 마련, 보조인력 및 방역인력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3차 대유행에 따라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코로나19 환자 중 요양·치매환자, 정신질환자, 거동불편 환자 입원도 급증하고 있지만 환자 상태별로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환자 중증도별로, 환자 상태별로 필요 인력이 크게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분과 가이드 없이 전담병원으로 대거 전원되면서 한정된 인력으로 일해야 하는 전담병원 간호사들이 탈진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결국 부족한 인력 조건에서 무작정 환자들을 감염병 전담병원에 밀어 넣으니 현장에서는 '이러다 다 떠나버리겠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라며 "중증도와 환자상태별 구분도 없고 추가 인력 확충도 없이 기존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환자의 중증도별, 질환군별 필요인력 기준을 마련하여 병상운영 및 인력운영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 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손실보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3차 대유행이 지속되고 있지만 전담병원에 대한 명확한 운영방침이 부재해 확진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운영체계도 마련할 수 없고, 안전한 시설·장비도 제대로 갖출 수 없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실제 지난 11개월간 의료원별로 손실보상의 차원에서 개산급이 지급되긴 했지만 이 지원은 의료원에서 발생하는 비용 중 인건비를 해결하는데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이러한 조건이다 보니, 코로나19와 싸우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매달 임금체불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현섭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지부장은 "현재 확진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해 병원의 전 역량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병원 경영회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담병원임에도 전체 소개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수익창출을 위한 운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손실보상에 대한 걱정으로 전담병원이 일반 병동을 완전 소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적극적인 손실 보상 대책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의 부족한 의료인력을 메우기 위해 정부에서 파견 의료인력을 모집해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인건비 보상이 기존 병원 인력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이면서 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감염병 전담병원 파견인력에 대한 보상이 기존 인력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아 11개월째 코로나19에 대응해 온 현장 보건의료인력의 사기 저하와 박탈감 심화로 인해 심각한 갈등 소지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A의료원 간호사의 월 수령액은 257만8,000원 가량인 데 반해 민간의료인 모집 인건비에 기초한 파견 간호사의 한 달(23일 근무, 밤근무 2일) 수당 및 숙소지원비 미포함) 근무 기준 수령액은 총 700만원에 달해 3배 가량 차이가 났다.

이현섭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지부장은 “파견인력이 받는 보상과 위험수당 등이 기존 전담병원 직원들과 차이가 심해 임금이 세 배에서 많게는 네 배까지 벌어진다”며 “사기 저하와 박탈감으로 현장 내 갈등 소지로 작용해 1년 가까이 최전선에 버티던 직원들의 퇴사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파견인력과 기존 의료기관 소속 의료인력 간 형평성 있는 지원 대책을 촉구했다.

김정은 서울시서남병원지부장은 “병원은 처음에 경증환자만 받겠다고 했으나 확진자가 점점 늘고 전국에서 중환자 병상이 부족해지면서 병원 내 중환자가 늘고 있으며, 치매·사지 마비 환자 등 요양병원 환자들이 많이 늘어 중증도가 올라 간호사 업무 강도가 매우 늘어난 상태”라며 “기저귀·체위·시트 변경, 석션과 배식, 청소까지 엄무가 끊이지 않아 숨쉬기조차 힘들어 토할 정도로 일하고 있다. 과도한 업무로 흉통을 겪는 동료도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현장에 기반한 의료인력 운영체계와 진료체계의 정비를 위해 우리 노조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긴급 면담과 의료현장방문 간담회를 요청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정부는 실질적인 진료체계 구축과 중환자 병상·의료인력 준비 등 대확산 대비 조치는 마련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마련하는 병상확보 등의 대책이)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추진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탈진하고 번아웃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중대본에 ▲지역별 감염병 컨트롤타워 설치 ▲환자 중증도별·질환군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파견·지원인력에 대한 실효성 있는 사전 교육훈련 ▲코로나19 대응 의료기관 충분한 손실보상 ▲파견인력과 기존 의료인력간 형평성 있는 지원 등을 촉구하며 현장상황에 기반한 진료체계 정비를 위해 긴급 면담과 현장방문 간담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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