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마련한 '감염관리 위한 의료기관 복장 권고문' 실효성 문제 제기돼

[라포르시안] 병원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의료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복장 권고문이 마련돼 시행되고 있다.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을 통해 병원균이 전파된다는 우려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을 통해 병원균이 전파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학문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지난 26일 의료근무자 복장을 주제로 열린 대한의료감염관리학회 학술대회에서 '의료 근무자의 일상의 복장: 과연 감염전파의 문제인가'라는 발표를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복장 권고문'을 통해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기본적인 개인위생을 준수하고 근무복이 더러워지거나 오염된 경우 즉시 갈아입는 등 청결한 근무복을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지 않으며 수술실, 처치실, 격리실 등에서의 복장과 개인 보호구 착용은 해당 지침을 따르도록 했다. 의료기관장에게는 종사자에게 충분한 수량의 근무복을 지급하고 개별 의료기관 여건에 맞는 복장 규정을 제정해 자율적 실천을 독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복장 권고의 예시로 ▲긴 가운 대신 짧은 재킷 착용 ▲넥타이 착용 자제 ▲수술복 형태의 반소매 상의 착용 ▲손가락이나 손목에 장신구 착용 자제 등을 제시했다.

엄중식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복장 권고문에 대한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의 반대 의견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복장 권고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엄 교수는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으로 인해 병원균이 전파돼 감염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학문적 근거가 없다"며 "2000년 중반에 영국에서 시행된 몇몇 연구에서 의료인의 의복에서 병원균이 동정됐다는 연구를 배경으로 2007년에 영국 보건당국에서 ‘Bare-Below-the-Elbows'를 권고했지만 당시 수행한 체계적 고찰에서도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으로 인한 병원균 전파의 근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보건당국이 마련한 ‘Bare-Below-the-Elbows(BBE)’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긴 가운이 아닌 반소매 가운을 입고, 넥타이와 손목시계, 기타 액세서리를 착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당시 영국에서도 이를 놓고 의료진의 복장 등이 병원 내 감염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이뤄졌다는 논란이 일었다. <관련 기사: 의사들의 흰 가운을 둘러싼 논쟁…계속 입을 것인가, 벗을 것인가?>

엄 교수는 "가운, 넥타이 착용,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 등이 감염관리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처럼 기술해 환자 및 국민에게 가운과 넥타이를 착용한 의료인이나 가운을 입고 병원 문밖을 나간 의료인이 병원균 전파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시키고 있다"며 "그러나 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보고된 적 없고 감염에 미치는 영향에 재킷과 나비넥타이를 기존의 가운 및 넥타이와 비교한 연구도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최근 무작위 배정연구에서 근무 후 의사의 가운과 새로 세탁된 소매없는 근무복의 세균오염 여부에서 차이가 없다는 게 확인되기도 했다.

엄 교수는 "의료인의 복장보다는 병원내 다제내성균 발생 및 전파 차단에 과학적 효과가 입증된 방법은 손위생 등으로 이를 주요 감염관리 방안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그러나 근거가 미약한 의료인의 근무복 규제에 감염관리 역량을 집중하는 건 감염관리에 있어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근거도 없는 의료인 복장 권고보다는 국내 의료관련 감염과 감염관리에 보다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분야를 개선하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은 최근 전체 간호사에게 병원내 감염관리를 목적으로 일명 ‘간호사 시계’를 지급했다. 사진 제공: 의정부성모병원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은 최근 전체 간호사에게 병원내 감염관리를 목적으로 일명 ‘간호사 시계’를 지급했다. 사진 제공: 의정부성모병원

한편 국내에서도 의료인의 복장과 병원감염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가 있었다. 지난 2013년 의료인 복장과 병원감염을 주제로 한 16편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문헌분석한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정은영 우송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와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가 실시한 '병원근무자 유니폼에 의한 병원 내 감염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에 따르면 병원근무자 유니폼이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감염을 일으킨다는 확정적인 근거는 없었다.

다만 병원근무자가 착용하는 옷 등이 각종 균주에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는 것이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확인됐다.

연구진은 "유일한 무작위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통적인 긴팔 의사가운이 반소매 가운과 비교하여 오염의 정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긴팔 가운의 소매부분이 가운의 다른 부분과 비교해 오염 정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 긴팔 복장의 소매부분에 대한 오염으로부터 환자를 보호 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며 "무엇보다 환자와 제일 빈번하게 접촉하는 간호사의 경우 의사나 타 직종의 근무복과 비교시 오염정도가 가장 심각해 매 근무마다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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