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대한약사회가 건보재정 안정화를 명분으로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주장하면서 처방 의약품 선택권을 둘러싼 의·약사 간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약사회는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부터 성분명 처방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처방전에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표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사회는 지난 20일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고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도 도움이 된다"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조속히 시행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분명 처방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로 리베이트 근절과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 보장을 꼽기도 했다.

약사회는 "상품명 처방은 과잉투약으로 인한 약품비 증가와 리베이트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어 의약품 유통 질서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반드시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돼야 한다"면서 "조속한 법 개정을 통해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약사회가 성분명 처방 시행을 주장하는 속내는 약국의 골칫거리인 불용재고약 문제 해결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상품명으로 처방할 경우 의사들이 자주 처방하지 않은 약이 재고로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이 점을 지적했다.

의협은 23일 성분명 처방 의무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내고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약국에서 모든 복제약을 구비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성분명 처방이 의무화되면)약국에서 특정 복제약 선택을 강요하고, 약효가 다른 재고약을 처분하는데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약사회의 성분명 처방 주장은 의사의 고유 권한인 처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의약분업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국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약분업 예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환자가 진료와 처방·조제를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것이 국민 편익 제고에 더 도움이 된다며 65세 이상 노인, 영유아,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의약분업 예외로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도 22일 성명을 내고 "약사회는 약사의 본분을 지키라"고 쏘아붙였다.

서울시의사회는 "약사, 의약품 구입 접근성이 우리나라보다 좋은 곳은 없다"면서 "의사가 진료 후에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처방하는데 이를 약사가 동일 성분이라고 마음대로 바꿔버리겠다는 것은 의약분업의 기본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며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려면 복약지도부터 제대로 하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의사회는 "아르바이트생이 약을 조제한 후 조제비를 받고 단순 포장된 약품 한두 달분을 꺼내주면서 복약지도를 한다고 하고, 임의로 처방약을 바꾸고 일반약을 끼워 파는 약사들의 행위가 의료비 절감을 위한 노력이냐"고 반문하면서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기 전에 약사들이 먼저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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