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상호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화성에서 온 의사, 금성에서 온 환자’란 연중기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 기획은 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부정확하게, 혹은 잘못 알려진 의학적 지식을 짚어내고 올바른 의료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또한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전 미리 준비하거나 알아두면 병원 이용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의사가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입니다. 나아가 환자들이 의료진의 고유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상호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 의사-환자가 라뽀를 높이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 청각장애인 A씨(45세)는 최근 개인적인 일로 서울에 왔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져 가장 가까운 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A씨는 우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빙글빙글 돌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이를 지켜보던 의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돌 것 같다는 걸까, 아니면 울화통이 터진다는 걸까?’ 결국 A씨는 자신의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자신의 상태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뒤에 대기 환자가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급해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적을 수 없었다. 답답해하던 의사는 한참만에 A씨의 상태를 이해하고 증상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러나 너무 빨리 말한 탓에 A씨는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처방을 받은 A씨는 의원문을 나서면서 앞으로는 타지에서 몸이 아프더라고 몇 년간 다녀 그나마 자신과 의사소통이 수월한 집근처 의원만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각증상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하게 설명해야 적절한 진료와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시·청각 장애인처럼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장애인들은 자각증상을 의사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피부염으로 병원을 찾은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어디가 어떻게 간지럽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피부색과 진물 등 피부상태가 언제부터 어떻게 악화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시각장애인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증상을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다. 청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질병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화는 단어 사용에 있어서 극히 제한적이고 의사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바디랭귀지(body language)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증상을 글로 적어서 표현한다. 당연히 말로 표현하는 것과 비교할 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들이 의료기관을 찾을 때는 자신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보호자를 대동하는 것이 좋다.

흔히 보호자가 없어도 이동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용무야 상관없겠지만 질병 때문에 의료기관을 찾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질병이 발병할 경우 또 적절한 진료를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경우 감기와 같은 경증은 기침을 하는 흉내를 내면 되지만 증상을 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질환도 많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자신의 증상을 의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보호자와 함께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의사의 적절한 진료에 도움이 된다. 지병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증상을 미리 글로 적어 가지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부산성모병원 의료진이 청각장애환자와 수화를 이야기하며 진료를 보고있다.

의료기관 차원에서도 진료실에서 의사가 장애인을 대할 때는 비장애인 환자와 달리 더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청각장애인 환자와의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은 글이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의사는 정확한 발음으로 가능한 천천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흔히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수화나 문자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많은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가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하는 독순술(讀脣術)이다. 독순술은 말 그대로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만으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대화법이다. 의사가 청각장애인 환자들에게 진료내용을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설명해 준다면 이해하기 쉽다.

시각장애인 환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안과 질환은 다른 질환에 비해 의학용어가 어렵기 때문에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보이지 않아 답답한 상태에서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써서 시각장애인에게 설명한다면 환자는 심리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 따라서 초등학생이 알아들을 만한 수준의 단어로 크고 정확하게 설명해준다면 시각장애인 환자는 제대로 진료를 받았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 환자 스스로가, 또 의사는 환자가 장애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환자는 자신 때문에 뒤에 기다리는 환자가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의사도 장애인환자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한편 국내 의료기관 중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를 배치해 수화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부산성모병원이 거의 유일하다.

[도움말 : 주안과의원 주영숙 원장, 순천향대학교병원 안과 이성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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