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화언어법' 규정 따라 브리핑 때마다 수어통역 지원...청각장애인 위한 감염병 정보 제공 부족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2차례에 걸쳐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관련 내용과 중요하을 국민에게 알리는 정례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지속해 발생하면서 이제는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뉴스를 전달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수어 동시통역사'가 곁에서 수화로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모습이다.

지난 1월말 시작된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 때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4일부터 코로나19 브리핑에 수어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 제 16조(수어통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어통역을 필요로 하는 농인 등에게 수어통역을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수화언어법 바로 가기>

국가와 지자체는 공공행사, 사법·행정 등의 절차, 공공시설 이용, 공영방송, 그 밖에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수어통역을 지원해야 한다. 농인 등이 구직, 직업훈련, 근로 등 직업 활동 전반에 불이익이 없도록 수어통역을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지 4년여 동안 이런 법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가 지난해 12월 문체부를 시작으로 정부 브리핑에서 수어 동시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정례브리핑에서 수어로 동시통역을 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정례브리핑에서 수어로 동시통역을 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

수어통역사는 항상 검은색 옷차림을 한다. 그 이유는 검은색 옷을 배경으로 했을 때 동영상 속의 움직이는 손 모양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줄무늬 옷도 입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수어통역을 할 때에는 반지나 귀걸이, 시계도 착용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 수어통역 영상을 보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어는 단순히 손으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그 의미를 같이 전달한다. 그러다 보니 수어통역사는 쉴새 없이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기 때문에 손목터널증후군이나 손가락 관절염 같은 직업병이 생긴다고 한다.

정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로 '코로나19'를 표현한 모습.
정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사가 수어로 '코로나19'를 표현한 모습.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전문적인 영역이고, 이번처럼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 수어에 없는 용어나 의미는 어떻게 전달할까.

그럴 경우에는 지화(fingerspelling)를 사용한다. 지화는 손가락을 이용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표시하는 수어이다. 고유명사나 낯선 신조어 등을 전달할 때 주로 지화를 사용한다.

*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는 점을 명시하고, 그 용어를 '한국수어'로 표시하고 있다.

감염병 방역에서 장애인 관련 대책 찾아보기 힘들어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도 처음에는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다가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곧바로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다.

장애인 인권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은 지난 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4년이 됐지만 수어는 여전히 대접받지 못하는 언어"라며 "신종코로나 관련해 진행된 정부 브리핑에서도 수화 통역은 볼 수 없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청와대에 지정 수어통역사를 두고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등 주요 기자회견에 현장 통역을 하고, 주요 정부홈페이지 사이트 안내를 할 수 있는 수어설명 동영상을 게시할 것"을 요구했다.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의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수어통역사들.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의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하는 수어통역사들. 사진 제공: 보건복지부

수어통역 서비스 제공과 함께 청각·시각 장애인이 감염병 예방과 방역 정보에 더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시·청각 장애인의 경우 감염병 관련 정보를 얻을 방법도 마땅치 않고 노출됐을 때 어디에서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절차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방역 대책에서도 장애인을 대책은 별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지난 21일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발표한 방역 대책에서 중증장애인이나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분들 대상으로는 이동 검체 채취(2월 말)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방안이 담겼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검체 채취팀이 방문하는 방법을 포함해 장애인들이 질병관련 정보를 조기에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상담지원은 물론 발병돼 격리되었을 때 소통이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자체와 보건당국이 지역의 장애인 단체 등과 연계해 장애인 관련 전문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대구·경북지역의 감염병 특별관리지역 지정과 관련해 조기 정보제공을 위해 지자체에서도 코로나19관련 공식 브리핑의 자리 수어통역사를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재난이나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지역의 수어통역인, 의사소통조력인, 전문보조인 등 장애인 전문 지원 인력을 양성하고 유사시에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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