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400일의 성찰’ 온라인 백서 구축…어이없는 불통에서 ‘메르스 환자 사망’ 괴소문 퍼져

[라포르시안] #.2015년 6월 21일 "아침에 확진환자를 간호하던 박00 간호팀장이 열이 나서 남편, 아들과 같이 선별진료실로 왔다. 본인도 당황했지만 나 또한 당황했다. 수일 전부터 기침,가래, 고열 증상을 호소했다. 며칠 전에 아기가가 열이 난다고 해서 선별진료실로 왔었다. 다행히 목이 부어 있어서 단순 편도선염으로 치료한 적이 있었다. 선별진료실 텐트에 격리 후 검사를 진행했다. CCTV 로 보는 박00 간호사는 매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간간히 운다. 울만하다. 그러나 원칙대로 진료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 결과가 6시 이후에 나온다. 그리고 일단 본원 격리병동에 입원시킬 예정이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으나 일인 격리실로 본인이 E5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명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김인병 센터장이 메르스 사태 당시 하루하루 상황을 기록한 '메르스 개인 일지'에 적혀 있는 기록이다.

명지병원은 메르스의 공식 종식선언에 따라 최근 일선 의료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메르스 400일의 성찰’이라는 메르스 웹사이트 백서(mers.mjh.or.kr)를 공개했다.

▲ 사진 출처: 명지병원 메르스 웹사이트 백서(mers.mjh.or.kr)

이번에 공개한 웹사이트 백서에는 메르스 발발 1년 전부터 명지병원의 준비 경과와 이를 토대로 한 명지병원의 실전 대응 과정, 메르스를 실제 겪으면서 경험했던 크고 작은 실수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메르스 대응 단계에 따라 ‘대면’, ‘준비’, ‘훈련’, ‘혼란’, ‘전쟁과 평화’, ‘회복’, ‘그 후’ 등 7개로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사진과 회의록, 매뉴얼, 일지 등이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혼란' 단계의 기록을 보면 메르스 사태 당시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무분별하게 떠돌면서 환자와 시민들은 물론 의료진조차 혼란을 겪는 상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병원은 온라인 백서 '혼란' 편의 기록을 통해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발생한 병원 안팎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했다. 확진자를 전원받은 첫날부터 지역사회에 번지던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쏟아지던 문의에 대해 병원측의 답변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없는 대답) 정책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가장 적극적인 대답이 '명지병원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이후 상황이 안정된 뒤에도 병원 지도부를 내내 괴롭힌 것은, 이처럼 초기 커뮤니케이션에 명확하지 못 했고 여기서 발생한 혼란이 위기감을 더 키웠다는 생각이었다"고 평가했다.

살제로 백서를 보면 환자가 명지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전국적으로 사태가 점점 커지며 각종 루머가 난무하는데도 병원 경영진은 외부에 대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의료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불안감은 증폭됐다.

5월 말과 6월 초 명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지역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병원이 큰 고통을 겪었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여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한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메르스 관련 불확실한 정보가 유통되면서 혼란은 극에 달했고,지역 주민들은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메르스 환자 입원 여부를 확인했다.

평소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이 편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단지와 병원 사이 쪽문은 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로 폐쇄됐고, 택시 기사들도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려 병원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장소에 승객을 내려놓는 일도 벌어졌다.

급기야는 '메르스 환자가 사망했다'는 괴소문이 퍼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병원에 따르면 음압병실에서 메르스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도 하루 세끼를 병원 식당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으로 때웠는데 어느 날, 항상 일정한 개수로 음압병실에 배달되던 도시락 수가 줄었다.

의료진 일부가 매일 먹던 도시락에 입맛이 물려 주문 개수를 줄인 것이다. 그러자 음압병실 병동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는 것을 알고 있던 조리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시락 주문 개수가 줄자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지레짐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명지병원 메르스 환자가 사망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 사진 출처: 메르스 웹사이트 백서(mers.mjh.or.kr)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과 그 가족에서 '메르스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백서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당시 명지병원 주변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을 통해 '명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데, 누구 엄마가 명지병원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나요?'라는 식의 정보가 유통됐고, 명지병원 직원 자녀들을 찾아서 학교에 등교하지 말라고 압력도 가해졌다.

명지병원 직원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자녀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권유도 받았고, 병원 직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에서조차 등원 중지 요청을 받기도 했다.

명지병원 의료진과 직원, 그리고 그 가족이 마치 '메르스 숙주'인 양 취급되는 분위기였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던 의료진과 직원들을 괴롭힌 건 또 있었다. 바로 외부 관련기관으로부터 쏟아진 자료 요청이었다.

백서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당시 동일한 자료를 형태만 달리해서 정부 기관과 도, 시, 구 등에서 각각 요청하는 사례가 허다했고, 심지어 동일한 부처의 바로 옆 부서끼리 경쟁적으로 똑같은 자료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자료 요청에 응대하고, 여러 군데에서 걸려오는 확인 전화로 병원 직원과 의료진이 밤을 새우기도 했다. 반면 병원 측에서 정작 환자 치료에 필요한 내용을 문의하기 위해 정부기관이나 보건당국에 전화를 하면 전화연결이 쉽지 않았고, 기대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 업무 진행을 힘들게 만들었다.

병원은 백서를 통해 "게다가 비상시 관리 강화를 이유로 메르스 환자 치료 기간 중 현장 점검을 나오는 부처들도 있었다. 이들이 종종 보이는 고압적인 태도는 메르스 환자 치료 현장과 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힘을 빠지게 하고 맥을 풀리게 했다"며 "정부기관도 초유의 메르스 사태를 맞아 정신이 없을 줄은 알지만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메르스 사태는 위기 시 관련 정보를 내부 의료진에게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숙제로 남겼다"며 "메르스 환자 입원 초기에 상황별로 정보를 공개하고, 환자나 주변 지역 사회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질 때 응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면 이러한 혼선과 불안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병원 경영진에게 뼈아픈 지적이었다"고 교훈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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