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담배소송 관련해 강경한 입장 담은 의견서 발표…“질병예방·건강증진 노력에 심각한 손실 우려”

[라포르시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4차 변론이 오는 15일 열린다.

지난 3차 변론이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을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4차 변론의 핵심 쟁점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규명한 역학적 증거를 근거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역학(疫學, epidemiology)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담배소송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수렴과 토론과정을 거치고, 양 학회 이사진의 동의 아래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에 대한 의견서를 13일 발표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민감한 소송전에서 의학회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예방의학회와 역학회가 공동으로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의견을 도출하고 입장을 표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담배소송에서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고, 특히 양 학회의 핵심 연구 기반인 역학 연구결과의 활용을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송 대상에 포함된 한 담배회사는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 "역학은 인간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서 개별 환자에 대해서는 그 질병발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중략)이 점은 역학 자체에 내재하는 필연적 한계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졸지에 담배회사로부터 학문적 한계를 규정당한 셈이다.

"질병을 특이성과 비특이성 질환으로 구분? 그런건 어디에도 없다!"이런 점이 예방의학화와 역학회를 자극했고, 공동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견서를 발표하게끔 이끌었다. 

양 학회의 특별위원회는 의견서를 통해 우리나라 대법원이 채택하고 있는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이라는 질병 구분은 학문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별위원회는 "우리나라 대법원은 질병을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으로 구분하고 폐암을 비특이성 질환에 포함시키고 있다"며 "특이성 질환은 하나의 요인에 의해 발생해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대응하는 질환인 반면 비특이성 질환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질환 구분은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양 학회의 공동된 의견이다.

"단일 원인에 의한 필요충분조건을 가지는 질환은 없다"는 것이다.

특별위원회는 "담배회사 측에 의해 특이성 질환의 사례로 열거되고 있는 결핵이나 콜레라 역시 특정 병원체 감염이라는 요인뿐만 아니라 면역과 영양상태와 같은 감염자 요인과 위생조건, 병원체의 생존환경과 같은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해 발생한다"며 "그런 점에서 특이성, 비특이성 질환 구분이 이론적 타당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제시하는 것처럼 특이성 질병에 대한 정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병인(원인)과 질병 발병(결과)이 명확하게 대응’하는 질병으로 규정하더라도 이번 담배소송에서 다뤄지는 소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후두암, 그리고 흡연력이 20갑년 이상이면서 흡연기간이 30년 이상인 환자의 경우 ‘특이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소세포 폐암과 편평상피세포 폐암 등의 '상대위험도'와 '기여위험분율'을 보더라도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상대위험도는 '특정 위험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의 질병 발생률을 비'를 의미하며, 기여위험분율은 '질병 발생률 중에서 특정 원인의 노출이 기여한 정도(분율)'를 뜻한다.

특별위원회는 "현재의 담배소송 대상 암종은 기존 담배소송의 암종과 달라 폐암 발생에 대한 흡연의 인과적 기여 위험분율은 80%~90% 이상으로 매우 높다"며 "기존 국내 연구결과를 토대로 할 때 비흡연자 대비 현재흡연자의 소세포 폐암 발생의 상대위험도는 21.7배, 편평상피세포 폐암 발생의 상대위험도는 11.7배였고, 후두암의 경우 비흡연자 대비 흡연자는 후두암 상대위험도가 5.4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를 이용해 소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폐암, 그리고 후두암에 대한 흡연자의 폐암 발생 기여위험분율을 계산하면 각각 95.4%, 91.5%, 그리고 81.5%로 나타났다.

이번 담배소송에서 적용하는 것처럼 폐암을 세포조직학적 분류로 나누지 않고 전체 폐암으로 연구한 경우에 보고된 흡연의 상대위험도 범위(2.5~5.0), 기여위험분율의 범위(53%~70%)와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치다.

특별위원회는 집단에서 관찰된 역학 연구결과를 개인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담배회사 측의 주장도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별위원회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인구집단 대상 연구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 개인 환자에서의 관찰 결과, 실험실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라며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인구집단에서 나왔으므로 개인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담배회사측의 주장이 실천적으로도 큰 문제를 지닌다"고 했다.

담배회사들의 이런 주장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 상관관계를 근거로 개인에게 금연을 권고하는 게 무의미한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강도높은 비판과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특별위원회는 "역학적 연구로 얻은 결론을 단순히 ‘개인에게 적용할 수 없는 통계’라고 규정하거나 ‘역학의 한계’를 주장하는 것은 질병의 인과성을 규명하기 위한 역학자들의 광범한 지적 활동을 폄하하는 것이고, 예방의학의 본질적인 임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면서 흡연과 폐암에 대한 역학 연구 결과를 인과성의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시도는 일부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우리 사회 모든 사람의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노력에 심각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과학적·학문적 진실이 왜곡되고 부정되는 것을 막고, 국민건강에 큰 피해를 입혀온 원인을 없애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데 담배 소송이 중요한 계기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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