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효과도 없었던 대책 재탕 삼탕…“아동의 인권침해 문제…사회복지·의료·법률·지역사회 등 협력대응 필요”

[라포르시안]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보육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보육시설에서의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언론이고 정부고 마치 처음 겪는 일인 양 호들갑스럽다.  

부실한 보육정책이 아동학대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되자 보건복지부는 급하게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지난 27일 복지부가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은 ▲아동학대 처벌강화 및 신고활성화 ▲CCTV 설치 의무화 ▲부모참여 활성화 ▲원장․교사 자격관리 강화 ▲보육교사 근로여건 개선 ▲공공성 높은 보육인프라 확충 ▲수요자 맞춤형 보육․양육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부가 이번에 마련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은 처벌과 감시를 강화하는 것에 맞춰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연 이런 조치로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가 2010년 12월 '아동학대자 어린이집에 발 못 붙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 대책>복지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은 2010년 12월 인천 남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발표했던 대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시 복지부가 발표한 대책은 ▲영유아보육법령에 체벌 등 일체의 아동학대행위 금지 ▲아동학대자와 해당 어린이집, 보육 현장에서 퇴출 ▲아동학대 예방 교육 및 캠페인 전개, 학대 신고자 포상금 지급 ▲보육인력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격관리 강화 등이다. 복지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근절대책과 비교하면 공공성 높은 보육인프라 확충, 수요자 맞춤형 보육․양육 지원 등의 내용만 명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2010년 복지부 발표 이후 어떤 개선조치가 이뤄졌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근 잇따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이 들춰지는 것을 보면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동학대가 비단 보육시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란 점이다.  

통계 수치상으로만 봐도 아동학대의 최대 사각지대는 가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한해 동안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 6,796건의 발생장소를 보면 가정이 81.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복지시설 5.8%, 어린이집 3.4%, 집근처 1.2% 등의 순이었다.   전체 아동학대 사건의 100건 중에서 80건 꼴로 가정에서 부모 등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처럼 가정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학대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아동학대의 책임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반증한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좁게는 마을공동체, 보다 넓게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나서야만 아동학대 방지와 건강한 양육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그런 측면에서 이 문제를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와 처벌 강화로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새로운 규제이면서 또다른 아동학대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실성도 떨어진다.

아동학대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공보육 강화를 위한 인천보육포럼 등의 인천지역 시민단체는 성명을 통해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대책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중심 처방으로, 마치 예전엔 몰랐다는 듯 처벌위주의 처방을 쏟아내고 있다"며 "CCTV 설치나 시설폐쇄만이 만능이 아니다. 부실한 보육교사 양성체계를 허용한 것은 국가며 아동학대 신고 포상제 등 아동안전관련 규제 법률이 무산되거나 표류한 건 정치권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인천 아동폭행 사건이 알려진지 이틀만인 지난 16일 어린이집 현장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진 출처 : 보건복지부>아동학대는 '인권침해'로 인식해야

가장 시급한 건 인식의 전환이다.

아동학대를 어린이에 대한 신체적 폭력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탈피해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동학대'를 아동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의 건강, 생존, 발달 및 존엄성을 실제로 저해하거나 잠재적으로 해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 성적 위해, 방임 혹은 방임적 대우, 상업적 혹은 다른 형태의 착취가 아동에 대한 책임, 신뢰 혹은 권력 관계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우를 아동학대로 정의한다.  아동학대를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 방임, 상업적 착취, 신뢰나 권력 관계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모든 경우로 정의함으로써 이 문제가 사회구조적 결함에서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학대 문제에는 가정은 물론 유관기관, 지역사회, 전문가단체, 정부 등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맺고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의료전문가들도 이런 방식에 주목한다.

아시아·오세아니아의사회 연맹(CMAAO)은 2013년 10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28차 총회에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뉴델리 결의문'을 채택했다.  CMAAO는 결의문을 통해 의료인은 물론 각국 정부 및 유관단체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구체적인 실행원칙을 제시하고 시행을 적극 권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결의문은 "아동학대는 가정 뿐만 아니라 보육시설, 유치원 및 학교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피해가 의심되는 아동이 발견되면, 의사·의료전문인 그리고 의료종사자들은 해당 아동의 주위를 신중히 살피고 추가 피해자의 존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아동학대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의 확인과 대응 역시 복합적이기 때문에 학대받는 어린이 및 그 가족을 적절히 돕기 위해서는 의료, 간호, 법률, 사회복지를 포함한 여러 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MAAO는 특히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각국 정부에 ▲아동보호서비스를 위한 전용 예산 마련 ▲각급의 모든 인력을 대상으로 의무적 교육 실시 ▲각 부문간에 의뢰 및 개입이 적시에 일어날 수 있도록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제도의 운영 보장 등을 권고했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국가의 직접적 책임과 사회공동체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제도를 운영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CMAAO의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뉴델리 결의문 채택 과정에서 초안을 작성하고 결의문 채택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대한의사협회는 2006년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 지침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의협은 이 지침서에서 "부적절한 아동양육은 고의적으로 계획되어진 행위라기보다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 사회적․ 경제적 결핍, 지지체계 및 자원의 부족 등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며 "따라서 가족이 그들의 아동을 보호․ 양육하는데 있어서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지역사회에 알리고, 지역사회구성원들이 자기 지역사회내의 모든 아동들이 건전하게 양육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아동학대를 방지하고 건전한 양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처벌과 감시가 아니라 관심과 사회적 지원이란 점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5년 전 발표한 대책과 별 차이가 없는 복지부의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다.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녀사냥식, 실적위주의 대응이 아니라 진지하게 근본적인 해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부모, 시민단체, 전문가, 보육교직원,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민관협력기구를 구성해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상시적인 평가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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