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의대 교수 사직서 제출 현실화...외래진료 축소
의대 교수들 "의대 증원 정책 멈춰 달라" 호소
환자단체 "의·정 갈등 속 현실화되는 환자 피해 외면하지 말라"

[라포르시안]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꿔온 의과대학 교수들마저 사직 행렬에 나섰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에 정부가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예하면서 의료계와 대화에 나섰지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을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어 '의료개혁' 필요성을 강조해온 정부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공식 브리핑 때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채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를 대상으로 원칙대로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온 보건복지부로서도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어제(25일) 하루에만 여러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의견을 모아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곳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앞서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는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입학정원의 일방적 결정과 연이어 대학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정원 배분으로 촉발된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누적된 피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52 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는 금일부터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전공의와 학생을 비롯한 의료진에 대한 고위공직자의 겁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에 의한 입학정원과 정원배정 철회가 없는 한 이 위기는 해결될 수 없으며,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방재승 교수)는 지난 25일 오후 5시부터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 교수진이 참여하는 총회를 열고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또 성명서를 통해 "의대 증원 정책의 일방적인 추진은 의료 현장에 엄청난 혼란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과 의사들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지금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고, 추락하는 대한민국 의료를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과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지금의 의대 증원 정책을 즉시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지난 25일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해 서명한 교수 사직서를 이달 28일 일괄 제출키로 결정했다. 

고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같은날 전체 교수 총회를 통해 현 의료사태 해결 촉구를 위한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 교수 총회에는 고대 안암·구로·안산병원 교수들이 각 병원에서 참석하고 온라인으로 공동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고대의료원 교수 비대위는 사직서 결의 후,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의 주 52시간 근무 방침에 발맞춰 중증과 응급질환을 제외한 진료 축소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박평재 고대의료원 교수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으로 유발된 의료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천명한다”며 "학생 교육의 주체이지 당사자인 의과대학 교수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라고 했다.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오후 대학 측에 교수 433명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이날 오전에 낸 성명에서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초래된 지난 한 달간의 의료 파행으로 중환자와 응급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교수들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정부는 근거 없는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공의 공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 운영의 책임져온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 행렬에 동참하자 환자들의 불안과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전공의가 사라진 수련병원에서 그나마 교수와 전임의(전문의),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버텨주어 환자들도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환자 생명과 안전은 더는 보장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로 환자 피해가 하나둘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0일까지 9개 소속 환자단체 회원을 대상으로 환자 불편·피해 사례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31명의 환자가 진료 연기, 취소 등으로 인한 불편이나 불안, 피해를 실제로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계와 정부는 정말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되어서야 이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인가"라며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중심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당부했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교수는 집단 사직서 제출계획과 집단행동계획을 철회하고, 환자 곁에서 환자생명을 지켜야 한다"며 "전공의들은 먼저 조건없이 의료현장에 복귀하여 진료 정상화에 협력하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이 가시화된다면 의대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의 강대강 대치는 최악의 의료대란 상태로 치닫게 된다"며 "의료대란은 총선 득표용 게임이 아니라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대재앙"이라고 경고했다.

지금의 의료공백 사태가 지속할 경우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실천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의 조속한 복귀와 의대교수들의 진료 유지 등 진료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하며, 비상경영체제를 이유로 휴가사용을 강제하거나 임금을 체불하는 등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압박조치를 유보하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와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살리기 해법 마련을 위한 대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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