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협 정총서 의대정원 관련 논의 해달라"
의협 "의정합의 따라 코로나 안정화 후 원점서 재논의해야"
"애매한 문구 아전인수식 해석...실효성 있는 대책 논의해야"

[라포르시안]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진전이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9.4 의정합의문에 명시한대로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논의할 수 있다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의협 측에 의료계 차원의 의대정원 확대 논의를 공개적으로 요청해 주목받고 있다.

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달 30일 오후 의사협회와 개최한 '의료현안협의체' 제5차 회의에서 “지난 17년간 의대 정원이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필수의료를 비롯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인력 부족으로 일촉측발의 위기상황”이라며 “다음 달 의협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바람직한 인력 양성 방안이 무엇인지 심도 깊은 논의를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사실상 의협 정총에서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을 논의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의협 정총에 의대 정원 증원 방안이 안건으로 상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5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정총 주제는 대의원들이 확정하는데, (의대 정원 문제는) 원안에 포함돼 있지 않고, 의료계에서도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다”며 “해당 안건을 올릴 계획이나 논의에 대한 동기부여는 전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오히려 9.4 의정합의문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꺼낸 복지부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의협 관계자는 “의대 정원은 코로나19 안정화 선언 이후에 논의하자고 합의된 바가 있는데 복지부가 이를 깨고 지난 30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 전에 기습적으로 터뜨린 것”이라며 “일단 질러놓고 우리는 말했으니까 정책을 진행하겠다고 하면 소통이라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의대 정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장 의료현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의정합의에 대해 재고해서 논의해보자고 복지부가 제안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9.4 의정합의에서 언급한 의대 정원 확대 논의의 전제인 ‘코로나19 안정화’ 시점은 과연 언제일까. 의협은 코로나19 안정화 시점에 관해선 정부가 키를 쥐고 있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코로나19 안정화 시점의 기준을 의협에서 답을 줄 수는 없다. 정부가 선언을 해야 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발표와 국가별 방역 상황을 참조해서 사회적으로 코로나19 안정화를 결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선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정화를 선언하면 한시적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산업계 문제가 연계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의료계의 거센 반응을 감당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라며 “현재 의협에서 의대 정원은 정책적으로 제외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이미 안정화에 접어든 만큼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교수는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됐다 판단했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를 해제했고 실외 마스크 제한도 풀었다"며 "현재 코로나19 유행은 안정된 상태고 이 때문에 (의대 정원)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협에서)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은 반대를 위한 이유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임준 교수는 “의사인력 수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공중보건의사, 장학의제도, 공공임상교수제도, 파견 사업 등 여러 가지 정책을 해봤는데 마땅하지 않은 것 같다. 더 심각한 것은 PA(진료보조인력) 문제이다. 모든 것이 의사 수급과 관련한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단계적 의사 증원 정책을 유연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은 단기·중기·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라며 “의료계 일각에선 미래 인구 및 의사 수급 예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나중에 그런 문제 발생한다면 모니터링을 통한 미래 예측에 따라 의대 정원을 줄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2020년 9월 4일 의정합의 모습. 사진 왼쪽부터 최대집 의협회장, 박능후 복지부장관. <사진출처:보건복지부>
2020년 9월 4일 의정합의 모습. 사진 왼쪽부터 최대집 의협회장, 박능후 복지부장관. <사진출처:보건복지부>

의대정원 논의와 관련해 ‘코로나19 안정화’라는 단어에만 매몰되면 필수의료 강화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좌훈정 기획부회장은 “2020년 의정합의 당시 구체적 기간을 정하지 않고 코로나19 안정화라는 애매한 문구를 쓰다보니 답이 없는 상황”이라며 "당시 정부는 의대생 국시 거부나 전공의 파업 등의 사회적 파장을 빨리 줄이고 싶었을 것이고, 의협 집행부도 일단락을 짓고 싶다보니 서로 책임질 수 없는 워딩으로 합의가 된 것”이라고 했다.

좌 부회장은 “지금와서 코로나19 안정화라는 시점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결국 의·정이 각자 서로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코로나19가 국가적 방역이 필요한 질환으로, 코로나19가 예전보다 심각성이 줄었지만 아직까지 유행하고 있는 만큼 안정화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정부는 하루에 확진자 수가 몇 만 명 나올 때보다 낫지 않냐고 생각하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좌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19 안정화라는 애매한 워딩을 해석하려는 것은 서로 피곤한 일”이라며 “차라리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고자 했던 이유인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아닌 보건의료 현장에 있는 의료인력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근본적 해법을 주문했다.

좌 부회장은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해법이 안 된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다”라며 “의사 한 명 양성하는데 15년 이상 걸리는데 의대 정원을 증원해서 필수 의료인력이 언제 나오길 기다리겠나. 특히 확대 배출한 의대 정원 중에서도 필수의료를 전공할 사람이 희박할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실효성을 떠나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책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니 필수의료를 전공한 의사들이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나마 현장을 지키고 있는 필수의료 인력의 이탈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 해법 중 하나는 재원의 적절한 배치와 투입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좌 부회장은 “결국 모든 것이 재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수의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재원을 투입할 수 밖에 없다”며 “그런데 현재 재원이 필수의료 인력에게 제대로 투입되고 있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본질을 덮어놓고 당장 국민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며 “다소 언짢은 소리를 듣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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