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중소병의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의협·병협에 이달 17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교섭 요청

[라포르시안] #. 열악한 시설을 개선해달라고 했더니 갖은 이유를 들어 해고를 시키는 병원 #. 57세인 직원에게 어느날 갑자기 정년이 되었으니 퇴직하라고 하는 병원장 #. 10여 병상이 있는 의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인데 야간근무를 하고 있음에도 ‘당직근무’로 처리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면담을 하고 노동부에 진정을 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수당을 지급하는 병원. #. 코로나 전담병원 준비를 하는 기간은 일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를 주지 않거나 코로나 19로 환자가 줄었다는 이유로 일부 직종만 무급 휴직을 시키는 병원.
  
소규모 중소 병·의원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실제 사례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모성보호법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가 부재하는 환경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중소 병·의원 노동자에게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병원 노사간 사회적 교섭이 추진된다. '이른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교섭'이다. 다만 영세한 중소 병·의원을 대표한 사용자단체가 명확하지 않아 교섭이 성사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교섭을 추진하는 전국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지난 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보건의료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오명심 보건의료노조 인천지역지부장은 7년간 미조직 노동자 대상으로 상담을 해오면서 실제로 확인한 노동권 침해 사례를 전하면서 가장 많은 상담 사례는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였다고 했다. 

오명심 지부장은 "상담자의 대부분은 취업규칙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급여 명세서를 받지 못한다는 경우가 많아 중소병의원은 ‘원장 개인의 사유물’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나리 보건의료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7일까지 실시한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는 총 4,058명이 참여했다.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94%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무급휴가, 무급휴직, 연차휴가 강제 사용 등 휴가 관련 불이익을 받았다는 응답이 48.7%였다.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이 15%였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5%가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했다. 휴일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40.7%였다. 

임금명세서 미교부 비율도 16.3%로 나타났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은 임금명세서 미교부 비율이 26.9%에 달했다. 실태조사 관련한 심층면접에 참여한 한 중소병의원 노동자는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으니 확인해 볼 수가 없어요. 이번 달과 저번 달 오프수가 다른데 월급은 똑같아요”라고 했다. 

심지어 4대 사회보험에 미가입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회보험 미가입 비율은 3~4%로, 건강보험 미가입 응답자는 3%였고, ‘모르겠다’는 응답은 2.83%였다. 고용보험 미가입 응답자는 3.6%였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은 3.3%이다. 산재보험 미가입 응답자는 4%였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은 11.3%이다. 국민연금 미가입 응답자는 4.3%였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은 3.3%로 조사됐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회보험 미가입률이 높았는데, 건강보험 미가입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이 4.5%. 5인 이상 사업장은 2.4%였다. 고용보험 미가입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이 3.7%. 5인 이상 사업장은 3.1%로 나타났다. 산재보험 미가입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이 5.5%. 5인 이상 사업장은 3.1%였고,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이 4.9%. 5인 이상 사업장은 3.8%였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근로 계약서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36%에 달했다. 특히 '나는 지금 일하는 직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자 비율이 30%가 넘었으며, 이직하고 싶다는 응답도 53.6%에 달했다.
 
유나리 국장은 “병의원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권리”라며 “노동기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 상담창구 운영, 조직화를 추진할 계획이며,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를 대상으로 노동기본권 교섭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의협과 병협에 요청한 노동기본권 교섭 날짜는 7월 14일이다. 

유 국장은 "보건의료노조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가 노동기본권 교섭을 거부할 경우 국회 또는 기초의회·광역의회 차원에서 중소병원·의원의 노동기본권 미준수 실태조사를 추진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노동기본권 미준수와 법 위반을 시정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중소 병·의원 사업장 노동기본권과 사회적 보호 정책과제'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실태조사 응답 결과를 심층 분석한 결과 종사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코로나 19시기 경제 상황, 노동조건, 건강상태, 심리상태, 일상생활 영역에서 모두 5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회 및 관계부처가 기본적인 의무사항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모니터링해 5인 미만 등 중소 병의원 소속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및 사회안전망과 건강과 휴식권 등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관계부처에서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작은 사업장 표준임금제’나‘보건의료분야 표준임금 체계와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사회적 교섭이 실현되도록 법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노푸른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근로로기준법 11조를 개정하거나 시행령 7조를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범위를 축소해야 하며, 현행 법률 하에서도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인 사업장 감독과 시정조치가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산별 단체교섭 확대를 위해서 현재 국회에 두가지 법안이 제출된 상태"라며 "강은미 의원안의 경우 보건의료노조 교섭 요청처럼 초기업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경우 사용자도 그에 맞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또는 연합하여 교섭에 응할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적극적인 법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368만명에 이르고 단시간노동자 164만명, 기간제 노동자 417만명, 특수 고용노동자 220만명, 파견노동자 80만명 등 어림잡아 전체 노동자 2500만명의 절반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나아가 차별이 확산되고 있다”며 "아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 제11조와 노조법 제2조 개정 투쟁을 적극 벌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토론 말미에서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교섭권 여부에 대한 법적인 부분을 떠나서 의협과 병협이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나서는 것은 도덕적 책무"라며 "보건의료정책을 결정하는 각종 정부 위원회 등에서 의협과 병협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자단체로서 교섭에 나서는 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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