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목적 약탈적 학회·저널 성행..."입증되지 않은 결과·불합리한 이론 등 정당화에 악용되기도"

[라포르시안] 최근 들어 가짜 학술지나 부실학회 활동이 과학계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참가비만 내면 제대로 된 심사 과정도 없이 학술대회 발표 기회를 제공하거나 논문을 실어주는 '가짜 학회'가 거대한 상업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와셋(WASET), 오믹스(Omics) 같은 '기업형 가짜 학회'가 성행할 정도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부실학회 활동 점검에 나섰다.

앞서 지난 9월 과기부와 교육부가 238개 대학, 4대 과학기술원 및 26개 과기출연(연)을 대상으로 와셋과 오믹스에 2014년부터 1208년까지 최근 5년 간 참가한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번이라도 와셋과 오믹스에 참가한 기관은 조사대상의 40%인 총 108개 기관에 달했고, 두 학회에 참가한 연구자 수는 총 1,317명(횟수 총 1,578회)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회 이상 참가자도 180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 사이에 부실학회 활동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가짜 학회나 저널에 의학 분야 연구자들이 참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부터 학술전문 검색엔진 회사나 세계인명사전 발간 기관이 국내외 의학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비용만 지불하면 인적사항의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등재해주는 '세계인명사전 등재 시장'이 형성돼 있을 정도니... <관련 기사: [네모난 뉴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전…세계인명사전 등재의 허술한 유혹>

이런 가운데 최근 발간된 대한의학회의 <e-뉴스레터> 99호에 눈길을 끄는 외부 기고글이 실렸다.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팀장이 쓴 '부실학술활동 :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김 연구팀장은 이 글에서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부실학술활동의 실태를 소개하고, 부실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대응 방안도 소개했다.

김 연구팀장은 "부실학술활동 문제와 관련해 최근에 많은 연구자들과 대학들이 다양한 질문을 하거나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며 "첫째는 부실학회를 판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무엇이냐 이고, 둘째는 연구자들이 안전하게 학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참에 연구재단에서 학술단체에 대한 화이트 리스트나 블랙 리스트를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2가지를 명확하게 답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공적 기관에서도 이 문제에 있어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활용이 커지면서 온라인 출판 방식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저널을 악용해 오믹스(OMICS Publishing Group) 같은 가짜학회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오믹스는 Srinibabu Gedela라는 인도인이 2008년에 설립한 약탈적 학술출판업자이다.

김 연구팀장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OA(Open Access) 학술운동이 널리 퍼지면서 이를 악용해 제대로 된 피어 리뷰(Peer Review) 없이 고액의 논문 게재료만 받아 챙기는 약탈적 학술출판업자들이 등장했다"며 "구체적으로 1990년 후반부터 학술출판의 성격이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논문의 저자에게 출판비를 받고 해당 논문은 온라인으로 개방하는 새로운 출판모델인 APCs(Article Processing Charges)가 도입되면서 이 모델을 악용하는 사례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국내·외적으로 부실학술활동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오믹스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OMICS는 다양한 분야의 수백 개의 온라인 저널과 컨퍼런스 시리즈를 운영하고 있고 OMICS 학술지는 동료심사를 거쳤으며 저명한 학자들이 편집을 하며, 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다른 학자나 과학 저널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는 2016년 8월에 OMICS가 부당한 방법으로 저널에 수록할 논문과 컨퍼런스 참여자를 모집했다고 미국 법원에 고소하면서 연구자들에게 약탈적 학술활동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FTC가 미국 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는 ▲OMICS는 제출된 논문들에 대해 동료심사를 하지 않았으며 저자에게 심사평을 거의 주지 않았고 필요 없는 편집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OMICS는 허락 없이 특정 학자를 저널의 편집자로 임명하였다 ▲ NIH는 OMICS의 출판 관행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우려가 있어 OMICS가 출판하는 어떤 저널도 PudMed에 색인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저자들은 OMIC의 출판비용은 출판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말했고 저자들이 그들의 논문을 철회하도록 요청한 후에도 OMICS는 무조건 그들의 논문을 출판했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문제는 부실학술단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된 정의가 없으며, 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는 점이다.

김 연구팀장은 "통상 정당한 저널이나 컨퍼런스처럼 보이게 하는 등 연구자를 속이고 연구자의 노력을 약탈해가기 때문에 이들 단체의 성격을 영어로 Predatory, Hijacked, Fake, Bogus, Questionable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공적기관이 부실학술단체 리스트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된바 없다"며 "현실적으로 법률적 근거 없이 공적기관에서 특정학술단체를 정상단체와 부실단체로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학술단체가 부실한지의 여부는 관련된 학계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FTC가 부실학술활동 관련해 2016년 6월에 연구자들에게 보낸 주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미국 FTC는 연구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부도덕한 학술출판업자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과장하거나 저명한 저널명과 유사한 저널명을 사용하여 자신을 합법적으로 보이게 한다.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려면 연구자 스스로 3가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FTC가 권고한 연구자 스스로에 던지는 3가지 질문은 ▲도서관 사서는 뭐라고 할까? ▲논문 게재료를 사전에 언급하고 있는가? ▲저널의 출판과정이 적절한가? 등이다.

김 연구팀장은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전국 대학 등에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게시한 캐나다 캘거리대학에서 발간한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 예방 가이드'와 연구재단이 제정한 '부실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 등 두 가지 자료를 반드시 정독해 볼 것"을 권고했다. <한국연구재단 부실학술활동 예방 가이드 바로 가기>

한편 캐나다 캘거리대학에서 발간한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 예방 가이드'는 약탈적 학술지와 그런 활동이 의심스러운 학회에 대한 명확한 개요와 이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담아 연구자 스스로 부실학술활동을 피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게끔 돕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약탈적 학술지·학회의 공통점은 ▲돈에 의한 동기 부여 ▲파렴치한 마케팅 ▲신뢰성 부족과 낮은 질이다.

약탈적 학술지·학회의 주요 목적은 지식의 발전, 새로운 과학적 연구 결과물의 공유 등이 아닌 돈을 버는 데 집중돼 있기 때문에 엄격한 피어 리뷰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대개 부실학술활동을 의심해야 한다.

약탈적 학술지나 학회의 운영자는 뻔뻔스러운 판촉에 치중하며, 예비저자에게 스팸메일 등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고, 과학 지식의 발전이나 저자의 평판을 높이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연구 및 학문에 대한 지적 기여를 최종 결과물로 보유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

캘거리대학은 이 가이드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부실 학술지·학회에 관여한 경험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일부는 공생적 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기도 한다"며 "특히 연구 및 학문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생각과 의심스러운 믿음을 지닌 가짜 과학자나 입증되지 않은 주장이나 결과, 불합리한 이론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약탈적 학술지나 학회를 악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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