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종사자 감정노동 심하지만 고통 해결에는 무감각…한양대병원 '감정노동 휴가' 도입 등 개선 움직임

병원노동자 상당수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병원노동자 상당수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친절해라, 친절해라, 친절해라. 병원은 그걸 끊임없이 강요하고, 직원들이 감정이 상해서 그것을 다스려줘야 하는데 그런게 없어요"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건의료분야 여성종사자 모성보호 등 인권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중에서>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 못지않게 힘든 일이 바로 '감정노동'이다. 어쩌면 감정노동에 따른 고통의 부피가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직업상 고객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이 좋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을 고객에게 보여주는 업무'를 의미한다.

감정노동은 '감정의 상품화'에 다를 바 없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로 판매, 유통, 음식, 관광직 종사자와 함께 간호 직종을 꼽는다. 최근 들어 병원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간호사의 감정노동 강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병원이 환자를 '고객'으로 인식하고 친절 서비스 경쟁을 벌이면서 간호사 등 병원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3~4월 두 달간 전국 11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950명의 병원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보면 병원 노동자의 감정노동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가량(47.6%)이 직장 내에서 불쾌한 언행(폭언 41.0%, 폭행 5.5%, 성폭력 1.1%)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자로는 환자 및 보호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폭언의 가해자로는 환자가 70.1%였고, 보호자가 65.6%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병원내 의사(36.5%), 상급자(29.1%), 동료(10.5%) 등의 순이었다.
 
폭행 가해자로도 환자가 83.7%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보호자(21.6%), 상급자(8.7%), 병원내 의사(3.5%), 동료(3.2%) 순으로 조사됐다.

가장 큰 문제는 감정노동에 노출된 당사자들이 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폭언을 경험했을 때 '참고 넘긴다'는 응답이 89.7%에 달했고, 폭행(58.6%), 성폭력(60.5%) 등도 경험자의 절반 이상이 적극적 대응보다는 참고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 수행에 따른 부담감도 크다. 실태조사에서 '자신의 기분과 관계없이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응답이 86.2%에 달했고,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일해야 한다'는 응답이 90.5%나 됐다.

보건의료노조는 "극심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질 낮은 수면으로 인한 만성 피로는 업무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이로 인한 업무상 재해의 발생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의료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하고 극심한 직무스트레스와 재해·질병에 노출되는 현실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병원 종사자 등의 감정노동을 체계적으로 돌보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산업간호협회는 지난 5월부터 고용노동부 및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를 위한 서포터즈단’을 구성해 사업장에 대한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다.

직업환경의학, 직업건강간호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된 감정노동 서포터즈단은 의료기관 종사자와 콜센터 상담원, 백화점 및 할인점의 판매원 등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병원 자체적으로 종사자의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한양대병원은 감정노동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 직원들의 인식전환을 위한 다양한 홍보활동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직원들을 위한 '감정노동 휴가'를 도입했다.

감정노동 휴가는 한양대병원 노사가 지난해 임단협 교섭을 통해 합의한 것이다.

올해 10월부터 시작된 감정노동 휴가는 신청자에 한해서 연간 1회 사용이 가능하고, 대상자는 고객접점 부서 과장급 이하 직원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감정노동 휴가는 부서장에게 보고 후 신청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며 "지난 10월부터 시행된 이후 최근까지 실제로 감정노동 휴가를 이용한 직원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병원은 지난달 18일 열린 ‘2016년 감정노동 우수사례 발표대회 및 힐링 프로그램 체험존’ 행사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 추진

한편 국회 차원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안'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감정노동자 보험법안 제정안은 기업의 지나친 친절 강요와 소비자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고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정안에 따르면 국가는 감정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감정노동자를 인격주체로서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확산시키는 시책을 마련하고, 사업주는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감정노동 종사자를 위한 복지시설 등을 마련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했다.

사용자와고객은 감정노동 종사자에게 폭언, 성적 수치심·굴욕감 등 느끼게 하는 행위 및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되지 않는 요구 를 해서는 안되며, 사용자에게 감정노동자보호를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했다.

또한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정책·제도 및 지원업무의 협력 등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소속으로 '감정노동자보호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유지현 전국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감정노동 보호 입법을 통해 환자와 노동자 그리고 병원 모두가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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