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위탁서 '소속기관'으로 변경 합의했지만 2년 넘게 안 지켜져

[라포르시안] '벌집 공장이 있던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었고 파티션으로 구분된 “닭장” 같은 상담석으로 변했다. 이제는 좁디좁은 상담석에서 미싱이 아닌 헤드셋을 쓰고 하루 종일 앉아 잠시도 쉴 틈 없이 몰려드는 민원전화를 받아낸다. 미싱을 돌리던 공순이는 실적 인센티브 경쟁, 연·반차 통제, 쉬는 시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까지도 초 단위로 관리하는 전자감시 속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아야 하는 비정규직이 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하루 파업 돌입 기자회견문 중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가 7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여성의 날' 하루파업에 돌입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는 건강보험 관련 각종 전화상담업무를 수행한다. 공단은 대국민 전화상담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전국 7개 지역, 12개 센터에서 1,600여명의 상담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자격관리와 부과징수, 급여, 건강검진,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1,060여가지 상담업무를 수행한다.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는 하루 평균 120건에 달하는 상담업무를 수행하며, 고객센터의 연간 상담 건수는 총 3,500만 여건에 달한다.  <관련 기사: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시간 3분 넘으면 질책..."민간위탁업체, 건수 채우기 혈안" >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이날 하루파업 돌입 관련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12개 민간위탁 업체에 나누어 운영하면서 2년에 한 번씩 입찰을 위해 경쟁시키고 위탁업체는 입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5만 원, 10만 원의 실적 인센티브를 걸고 상담노동자들을 극한의 콜 수 경쟁으로 내몬다"며 "한 콜이라도 더 받기 위해 동료들 간 상호경쟁과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까지 통제당하는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열악한 사업장이 건강보험고객센터"라고 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벗어나고자 2021년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3차례 파업 등을 거치며 민간위탁사무협의회를 통해 '건보공단의 소속기관 설립과 고용전환'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3년 가까이 되도록 단 1명의 상담사도 건보공단의 소속기관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여전히 민간위탁으로 남아있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건보공단은 2021년 사회적 합의 당시 건강보험 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은 '취약계층 비정규직 일자리의 질 개선이 목적'이라던 입장도 바꿔가며 마치 ‘시험도 안 보고 떼를 쓴다’고 치부하고 있다"며 "이러한 건보공단의 태도는 여성이 하는 노동이 미숙련의,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상담노동자들을 불공정한 요구를 하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고객센터지부는 "더 이상 콜 받는 기계로 살 수 없다"며 "115년 전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로 표출됐던 그때처럼 건강보험 상담사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하루 파업에 나선다. (소속기관 설립과 고용전환이라는) 약속한 사회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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