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건강을 삭감하는 민영화, 제대로 문제화하자

[라포르시안] 최근 여러 분야에서 민영화로 보이는 정책과 입법 논의가 활발히 추진 중이다. 먼저 전력 민영화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부채 증가를 이유로 자회사인 한전KDN 지분의 매각 방침을 밝힌 가운데 정부·여당은 전력망 사업을 민간 기업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스 민영화도 추진 중이다. 지난달 민간 에너지 대기업들에게 ‘제3자 판매’를 허용해 주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핵심은 한국가스공사가 전담해 온 도매 영역마저 민영화함으로써 가스 부문(수입, 도매, 소매)의 완전한 민영화를 이루는 것이다. 

올해 계속 논란이 되었던 철도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민간 업체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돌봄 부문의 민영화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주 발표된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서비스별 가격탄력제 도입이나 소득수준별 본인부담 차등화 등 사회서비스 영역의 시장화를 심화하는 내용의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래도 민영인데 더 철저한 돌봄 민영 체계로 가려는 형국이다.

보건의료도 그렇다. 바로 오늘, 시민사회가 “내 의료·건강정보 도둑법”이라고 명명한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개인의 민감한 건강·의료정보가 보험사 등 기업의 영리 추구에 활용될 수 있는 문이 크게 열린다.

이밖에 지난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내년 상반기에 성남시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을 추진하겠다는 성남시 계획도 모두 의료 민영화가 진행되는 여러 양상 중 하나다. 

스리슬쩍 이뤄지고 있는 공공기관 민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발표된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 따라 공공기관의 인력 감축과 공공기관 간 통폐합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서울시는 유일한 독립재단이었던 서울공공보건의료재단을 기능중복과 연구성과 부진, 경영효율성 저하 등을 이유로 서울의료원으로 통폐합하였다. 이제 전국의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은 모두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민영화를 부인하는 정부 프레임

이에 맞서는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민영화금지법 제정 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듯이, 이 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주류 언론의 외면, 그리고 경영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높인다는, 이른바 ‘개혁’과 ‘혁신’으로 포장한 정부발 담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등. 민영화 비판 여론이 약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민영화를 매각의 좁은 의미로 규정하고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정부의 프레이밍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략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등장하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계획을 의료 민영화로 규정하며 일어난 시민들의 거센 분노를 확인한 뒤 어느 정부도 ‘민영화’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정부의 이 프레임이 여전히 잘 ‘먹히는’ 까닭은 민영화 개념의 모호성과 포괄성에서 기인한다. 이는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단일한 정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영화 저지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민영화 개념을 분명히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겠다. 물론 우리의 관심은 엄밀한 학술적 정의를 찾는 데 있지 않다. 민영화의 역사적 용례를 살펴보면 이것이 고정불변의 가치중립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건강을 삭감하는 수동적 민영화

민영화는 어떤 정의를 선택하든 ‘공적(public)’, ‘사적(private)’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흔히 ‘공공에서 민간으로 자산과 서비스의 소유권과 운영권이 이전되는 것’을 뜻하는 민영화는 넓은 의미에서는 ‘기능(역할)의 이전’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두 영역 사이의 경계를 넘는 ‘과정’이라는 점이 민영화의 핵심 특성이다.

특히 민영화를 ‘연속체(continuum)’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도나 수준의 차이로 이해해야만 공공병원 매각, 민간보험의 건강보험 대체 등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해체할 수 있다. 또 의료, 돌봄 분야를 예로 들며 “이미 다 민영화된 게 아닌가?”라고 하는 익숙한 반론에 대응할 수 있다.

아울러 공공과 민간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경계선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에서 민간 병원 중 영리 병원만 ‘private hospital’로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듯이, 공공과 민간은 국가와 시대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여왔다. 

근본적으로 민영화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공공과 민간의 역할과 관계에 관한 철학적 입장에 달려있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민영화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시장 우위를 내세워 사회 필수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민영화다. 민영화를 사영화(私營化)로 불러야 하는 까닭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흔히 제기되는 “좋은 민영화도 있지 않은가?”, “공익 단체와의 협력도 나쁘다고 할텐가?” 등의 질문은 민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속성과 문제화의 맥락을 간과한 데에서 비롯되는 오해다.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개념 정의가 유효할 듯 하다.

“사회 구성원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국가(공공)의 역할(의존도)을 축소하거나 민간(시장)의 역할(의존도)을 증대하는 모든 시도”

이러한 포괄적 정의에 따라 민영화를 유형화하면 우리에게 낯익은 정책들 상당수가 민영화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표 참고). 정부가 지방의료원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도 대체(철수)로서의 수동적 민영화로 볼 수 있다. 이는 지역 주민의 ‘건강 삭감’을 낳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다. 

민영화, 근본부터 문제화하기

한편 이 유형론은 에마뉴엘 사바스라는 신자유주의 이론가가 제시한 것이다. 그는 이미 시행된 민영화의 부정적 결과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민영화 자체가 반박되는 것을 막고자 포괄적 유형론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 민영화 정책이 실패했다면 민영화를 포기하고 재공영화할 게 아니라 더 ‘적합’한 유형의 민영화 방안을 선택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민영화를 넓게 이해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비판 여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영화가 왜 나쁜지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가 필요하다. 우리 연구소는 이를 위해 그동안 출판된, 민영화의 영향을 분석한 경험적 연구들을 고찰하였다(☞연구보고서: 바로가기). 

관련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민영화의 효과를 평가한 연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반면 인권과 삶의 질, 불평등 등 사람 중심 관점에서 결과를 분석한 연구들은 드문 편이었다. 즉, 민영화 연구 패러다임 자체도 신자유주의적 지식 생산 체제에 매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로 엇갈리는 연구결과들 속에서도 임금과 인력 감소, 불안정 고용 증가, 근무 시간과 업무량 증가와 같이 노동 조건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대체로 공통된 결론이었다. 적자를 줄이면서 서비스 ‘질’(주로 고객 만족도와 같이 단순화된 측정지표)을 개선했다고 하는 ‘좋은' 민영화의 은폐된 본질은 그 비용과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존의 경험적 연구만을 근거로 민영화를 비판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연구 대상이 된 국가와 시기에 따라 혼재된 결과가 보고되기도 하거니와 경제성 대(對) 불평등, 인권 등 무엇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상호 배타적 결론이 도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영화의 결과 뿐 아니라 민영화 자체에 대한 본질적 비판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예로 미국 정치철학자 키아라 코델리(Chiara Cordelli)의 주장을 참고할 수 있겠다. 그는 민영화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근거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정당성(legitimacy)’을 훼손하는 데서 찾는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민영화는 공적 기능을 사적 행위자에게 위임함으로써 그들의 일방적 의지에 시민들을 종속시키고 그 결과 호혜적 독립의 관계로 이해되는 평등한 자유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민영화된 국가’를 “자연상태로의 퇴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급진적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앞으로 이처럼 민영화 자체를 문제화하는 논의가 좀더 활발히 이뤄진다면 민영화가 이 사회에 속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통치술로서의 민영화

이처럼 민영화에 반대해야 할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비판 여론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한편, 효과적인 운동 전략에 대한 모색도 동반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정치경제라는 체제 차원의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분야에서 민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건 이 모두를 추동하는 공통의 구조와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와 메커니즘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를 바꿔내는 게 민영화 저지 투쟁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정부가 민영화에 더 적극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상저하고’라는 낙관적 경기 전망이 실망과 절망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구조개혁, 경영혁신 등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즉 통치 차원의 필요인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통치술로서의 민영화가 유효한 이유는, 앞서 말한 신자유주의 이념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무능과 비효율로 경제가 어려우니 그 역할을 최대한 민간에 넘기라는 주문에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통치술로서 민영화의 필요성은 더 커질지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할 수 있을지, 특히 민영화를 필두로 시민사회의 분산된 힘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논의, 연대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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