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을 즉각 공포하라

[라포르시안] 노조법 2, 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지난 목요일(11월 9일)에 국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해고사태 이후 파업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47억 원의 손해배상액이 만들어낸 참담한 피해와 파탄을 다시 반복해서 안된다는 동료시민들의 각성이자 연대의 결과이다. 개정안은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실질 사용자와의 협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기업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힘의 불균형을 다소간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민의 힘 의원들이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탄핵소추안을 막기 위해 퇴장하며 야당 의원들만의 찬성으로 가결됐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산업현장의 혼란’을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고, 미리부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언급된다는 점들은 시행까지 험로를 예고한다.

노동자들의 정치화와 조직화를, 정당한 권리와 보상의 향유를 가로막는 국가와 자본의 시도는 끊임없다. 올 해에만 들어서도 근로시간 최대 주 69시간 개편 추진,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배제법안 발의, 강압수사에 의한 건설노조간부 분신사망 및 ‘건폭’몰이, 노동자파업 사전 불법규정, 노조에 대한 행정개입 강화, 야간집회금지 및 집회시위허가제 추진, 실업급여 축소개편 예고,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연장 등 전방위적인 조치들이 발표되었다.

1970년대 이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 개선,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조직적 권력 강화를 이루기 위해 투쟁해 온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본다면, 한마디로 노동세력에 대한 대대적 반동과 파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세력화를 막고, 하루 일과 후의 저녁뿐만 아니라 미래가 있는 장기적인 삶의 전망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이런 개악(改惡)의 목적은 명백하다. 중단없는 자본의 이익을 위한,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의 정당성 확보의 도구로서만 복무하는 노동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불안정성과 고용관계에서의 불균형을 심화시킴으로써 자본에 대한 노동의 열세를 항구적으로 공고히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에 대한 자본과 자본의 조력자(!)인 국가권력이 바라는 바다.         

법안의 제·개정 과정은 국가–경제–노동 권력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명시하는 전선이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 자체가 권력관계의 불평등 혹은 친연성을 잘 보여준다.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여건이 엄중”하기 때문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 국가권력이 누구와 관점을 같이 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노동권력을 포함하는 사회권력이 해야할 일은 이 노골적인 국가와 자본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부정의한 효과들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 개입하는 자들의 편중된 이익을 사회 전체로 정의롭게 재배치하는 원칙을 만들고,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국가권력과 자본은 노동에 대한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그리고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폭력과 공격을 통해 노동을 주변화하고, 그 가치를 절하시켜 왔다. 게다가 이제는 4차 산업 또는 플랫폼노동이란 형태를 통해 거대한 노동의 실재를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비가시화하고 분산되도록 만들고 있다. 이 과정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제도적 토대가 취약한 한국 노동권력이 더더욱 노동자 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이를 와해시킴으로써 계급적 단결과 권력화를 저해한다.

따라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성취해온 노동기본권에 대한 조악하고 반동적인 퇴행을 목도하면서, 우리에게 지금 다시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 정체성의 강화 그리고 생존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연대, 그리고 더 강력한 정치세력화임을 확인한다. 권력 관계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대항권력으로서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노동자들은 특권적 계급과의 분리 속에서 더욱 심화되는 자산 분배의 불평등과 소득불평등, 건강불평등과 지역불평등 등 각종 불평등한 삶을 감당하는 짐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권력은 노동자와 불평등을 지우면서 대신 소비자 정체성을 주입한다. 사적인 경제적 이익관계에 능통한 것이 독립적이고 현명한 주체의 유일한 기준으로 표상되고, 그것이 공동체가 기반하는 나머지 사회적 관계와 원칙까지 잠식하게 만들고 있다. 앞서의 무력적 억압과 다른 은밀하고 미시적인 노동억압이다. 이를 통해 집단적 우민화를 달성하는 것이 국가와 자본 권력이 바라는 바다. 이에 대하여 노동자와 시민사회권력은 그들과 다른 윤리적 가치와 민주적 공공성을 실천함으로써 시민의 권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은 1970년 전태일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항거한지 53주년 되는 날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넘는 동안 한국 사회는 매우 풍요롭고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변해왔지만, 그 토대가 여전히 노동자를 옥죄면서 노동자의 생명을 자본의 처분대로 무도하게 휘두를 수 있도록 한 덕분이라면 더 늦기 전에 ‘노란봉투법’은 즉각 공포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이에 반대한다면, 노동자 시민의 존엄과 존재를 부정하는 정권을 향해 연대하는 노동자들의 압도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개별노동자들은 취약하다. 우리가 연대의 확산을 통해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것만이 우리의 소중한 권리를 되찾고 우리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닐까?” 
(양형근, 쌍용차지부 조직실장)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2012~2014년 쌍용자동차 투쟁기록 사진집)>

참고문헌: 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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